2013. 4. 4.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병마용이 발견된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진시황릉 서쪽에서는 청동기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이곳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행정관을 태운 실물의 절반 크기의 마차라네요.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의 모습이었다 합니다.
마차를 끄는 말은 모두 네 마리로 말의 머리부분에는 금과 은으로 장식했으며 마차는 차일을 둘렀다 합니다.
동주 시대의 차마갱에서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보았는데 진시황은 겸손하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탔나요?
진시황은 죽는 순간에도 순행 길에서 죽었듯이 평소 자주 순행 길에 올라 전국을 여러 번
돌아다녔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는 늘 암살 위험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궁전 안에서도 자객 형가에게 암살당하려는 위기도 겨우 모면했는걸요.
그리고 아방궁에는 들어가는 문에 쇠로 된 무기가 저절로 문에 달라붙게 자석으로 만들었다잖아요.
말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말꼬리를 묶어놓았네요.
아마도 말이 달릴 때 꼬리가 방해하나 봅니다.
병마용의 말꼬리는 모두 저런 모습입니다.
말이 꼬리를 움직이지만, 그러나 가끔은 말꼬리가 말을 움직이는 예도 있지요.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잖아요.
암살의 위험...
그런데 순행길이라면 더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겠어요?
그때 어디 형가뿐이겠어요?
축의 명인이라는 형가의 친구 고점리가 진시황을 암살하려 떠나는 형가를 역수라는 강가까지 배웅하며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 물은 차구나)
壮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형가의 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의 친구였던 축의 명인 고점리까지 후일 다시 진시황
암살 시도를 했다잖아요.
친구사이에 "자네 먼저 내 먼저" 하며 하나의 목표로 덤벼들었으니 진시황 영정은
언제나 불안한 생활을 하지 않았겠어요?
왜 친구까지 나서서 사람 힘들게 했나 모르겠어요.
청동으로 만든 말도 꼬리를 묶었습니다.
그때 형가가 지도 속에 칼을 숨겨 멱을 따자고 덤벼들었을 때 영정은 얼마나 식겁했겠어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왕궁의 기둥을 잡고 빙빙 돌며 형가의 비수를 피하려는데 사실 쌌을 겁니다.
뭘요?
왜 있잖아요.
사람이 놀라 식겁하면 오줌을 싼다고 하잖아요.
위의 도용의 얼굴 표정을 보세요.
그때 진시황이 오줌 싼 일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시침 떼는 표정을...
보일 듯 말 듯한 저 오묘한 미소 속에 숨긴 뜻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사마천의 사기에는 오줌 쌌다는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마천이 몰라서 그랬을 거예요.
진시황이 그때 입었던 옷은 기능성 용포였잖아요.
왜 그 유명한 방수, 방풍, 속건 그리고 투습의 4대 기능이 있는 무슨 텍스라는 옷 말입니다.
요즈음에는 산에 가는 일이 그런 기능성 옷을 입기 위한 것이라 하더군요.
그 옷이 아니었으면 온 동네 소문이 쫘아아악 났겠지만, 그 옷 때문에 오줌 저렸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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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열전 - 형가 1
오늘부터 며칠간 자객 중 그래도 역사에 기억되는 형가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아볼까 합니다. 형가(荊軻)는 진나라 시황제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풍운아입니다. 시황제가 누굽니까? 바로 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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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거가 있기에 순행 길에서도 늘 똑같이 생긴 마차가 여러 대 같이 움직이며
암살에 철저한 대비를 했다 하네요.
천하를 손아귀에 움켜쥔 진시황 영정이 늘상 암살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니 한편 연민의 정도 느껴지네요.
뭐... 요즈음 나라마다 최고 권력자가 이동할 때도 그렇게 하기는 하지요.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런 걱정 하지 않고 다니니까요.
아래 도용을 보니 佳人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이 아닌가요?
그런데 세상 일을 가만히 보면 아아러니하게도 약간 비정상적인 지도자일 때 유물이 더 많습니다.
일반인이 보았을 때 좋게 말해 기인으로 보이면 자기 치적을 자랑하려고 많은 유물을 만드나 봅니다.
민초를 편하게 해준 지도자는 사실, 별로 유물을 남기지 못합니다.
결국, 미친 지도자는 민초의 땀이 필요했고 나아가 눈물을 흘리라 했고 마지막으로 목숨마저 내놓으라 했나 봅니다.
민초의 삶이 안중에도 없어야 하나 봅니다.
민초란 국가를 위해 부름 받고 동원되어 만리장성이나 쌓고 전쟁에 동원되어 싸우다 어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들판에서 조용히 눈을 감나 봅니다.
진시황은 기억해도 그런 민초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란 모름지기 민초에게 행복을 파는 장사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미친 광기의 기인이 있어야 더 많은 유물을 남기니...
그리고 후세 사람은 그런 유물에 더 열광하고 말입니다.
유물전시관에는 제법 값나갈 만한 유물이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지루했던 서안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까 합니다.
내일은 서안을 떠나며 두리번거렸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내일부터 삼국지 이야기 중 가장 숨 막히게 했던 곳으로 가보렵니다.
공명이 북벌을 결정하고 일차 공격지점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오늘까지 우리가 머물렀던 장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촉한의 도읍인 청두에서 장안으로 오는 길은 너무 험하고 힘들어 공명은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했지만,
결국, 장안에 이르지 못하고 오장원이라는 곳에서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면 바로 공명의 북벌이 아닐까요?
그래서 내일은 오장원으로 가렵니다.
그해 가을 공명이 숨을 거둔 오장원 말입니다.
함께 가시기를 원하시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그러시면 오장원에서 벌어진 가을의 전설을 두리번거리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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