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탑 광장 분수쇼.

2013. 3. 19.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시안역에서 대안탑 광장 앞에 내려 광장을 끼고 뒤로 대안탑 남쪽 광장 쪽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 숙소가 여러 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몇 곳을 다니다 보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관광의 도시 시안에서도 이렇게 외국인에 대해 숙박거부를 하나요?

언제까지 이렇게 내외국인을 차별할 건가요?

시진핑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숙소의 위치는 대안탑 광장을 등지고 왼쪽을 보면 작은 빈관이 여러 개 보입니다.

그 길로 들어가면 숙소가 무척 많습니다.

뒤로 조금 더 들어가니 외국인도 좋다고 하네요.

그러니 비슷한 곳일지라도 여러 곳에 들려보면 외국인을 받아주는 곳이 있고

주숙등기가 귀찮아 거절하는 집이 있습니다.

숙소가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깨끗하네요.

 

하루에 80원씩 2박을 하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근처의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

대안탑 광장으로 갑니다.

숙박은 외국인을 차별해도 식당은 하지 않는 게 신기하네요.

대안탑 분수 쇼는 밤 8시 30분부터 시작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6시부터 많은 사람이 붐빕니다.

특히 전망이 제일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안탑 쪽은 이미 많은 사람이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분수쇼는 시작하지 않고 있네요.

우리도 여느 사람들처럼 광장 주변 산책을 합니다. 

10월 말, 시안의 밤은 제법 쌀쌀합니다.

 

삼각대도 없이 야경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영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 흔들려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이 또한 우리 일정 중의 일이라 몇 장 올려봅니다.

우리의 배낭여행 일정상 삼각대는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장기간 어깨에 메고 다니다 보면 카메라도 무거워 어깨가 아파요.

사진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있고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분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물줄기를 이리저리 뿜어냅니다.

 

날씨가 쌀쌀해 그 느낌은 반감되나 한여름 더울 때는 시원한 분수가

아주 멋지게 느껴지실 겁니다.

매일 저녁 분수 쇼를 한다고 하니 시안을 오신 분이라면

밤에 여기는 꼭 들려볼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왜?

무료니까.

그리고 중국답게 디따 크니까.

너무 어둡기에 단 카메라에 삼각대는 있어야 만족할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의 시작은 환관의 득세로 시작되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황제는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고 정치는 환관이 좌지우지하다 보니

점차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민심은 멀어지고...

환관이 삼국지연의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입니다.

사실, 환관의 득세란 어린 나이에 황상의 자리에 오른 황제 때문이겠지요.

대체로 천하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는 일은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기에

외척도, 환관도 욕심을 부리나 봅니다.

 

이런 어지러운 일이 계속되면 여기저기서 난이 일어납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고요.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집안에서만 들리다가 점차 담을 넘어 밖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모두가 영웅놀이를 하려 합니다.

그중에서도 장각을 중심으로 한 황건의 난과 한중의 장로를 중심으로 한

오두미도라는 난이 제법 컸던 모양입니다.

장각은 처음부터 난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장로는 한중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지리적으로 진령산맥이 중원과 구분하였기에

지역적으로 작은 규모였으나 장각을 중심으로 일어난 황건의 난은 그 규모가

대단해 한나라까지 삼킬 기세였다네요.

규모가 커지면 황실에서도 불안감을 느끼죠.

이때부터는 정치를 잘못했다는 생각보다 폭도니 난이니 하며 무자비한 탑압을 하기 시작합니다.

구국의 일념으로...

 

황건의 난은 처음에는 태평도라는 종교단체로 시작했지만, 특히 아픈 사람을 치료하며

그 치료법이 비록, 맹랑한 치료법이지만, 신기하게 병이 낫는 경우가 생기자

그야말로 그 휘하에 구름처럼 민초가 모여들었다 합니다.

장각이 생각해도 신기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의구심을 가졌지만, 주변의 추종자가 하늘이 내렸다느니 뭐니 하면 자신을 믿게 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디게 쑥스러운 일이잖아요.

 

이러면 저절로 장각은 하기 싫어도 신이 됩니다.

일부가 개념있다느니 뭐니 하면 정말 개념있는지 알고 더 하게 되지요.

점점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나라가 어지러운 일에 간여하게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추종하는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들었을 겁니다.

 

우선 휘하에 36명을 선발해 36방이라고 하고 그 아래 신도 수가 만여 명 모이면

대방이라는 호칭을 주었다네요.

그보다 적은 6-7천 명 정도면 소방이라고 불렀고요.

처음에는 나라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봉기만 하는 수준으로 시작했으나 그 모의가 발각되고

일부 처형되자 드디어 자구책으로 스스로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네요.

 

장각을 따르는 사람은 머리에 노란 수건을 두르게 함으로 황건적이라 불렀나 봅니다.

두 세력이 마주치니 처음에는 황건적이 우세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황보승과 조조가 합세하여 장사에서 황건적 수만 명을 무찌르면서 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관군으로 넘어왔다네요.

 

결국, 장각은 병으로 죽고 관군에 의해 황건적은 소탕되며 장각의 시신은

부관참시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합니다.

남의 병은 고치며 자신의 병은 고치기 어려웠나 봅니다.

장각이 일으킨 황건의 난은 우리가 읽는 삼국지연의의 아주 중요한 시발점 중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겁니다.

만약, 장각의 난이 성공했더라면 삼국지라는 이야기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세상의 역사란 이렇게 새로 탄생되나 봅니다.

 

장각은 창천이사황천당립세재갑자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민초를 규합했다 합니다.

이 말은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해지리라"는 의미라 하네요.

 

푸른 것은 무엇이고 또 노란 것은 무엇입니까?

황건을 두르고 꾸었던 꿈은 또 무엇입니까?

모두가 세월이 지나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난을 일으켜도 마케팅을 해야 더 폼 난다는 말인가요?

따르는 자에게 믿음을 주고 그게 정의라는 것과 목표한 세상을 살짝 보여주는 게 바로

장각의 마케팅 전략이었나 보네요.

 

결국, 난은 제압되었지만, 이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이들을 제압하려고 불러들인 지방 군벌의 힘이 강해진 거죠.

당시 황궁의 힘은 내시가 좌지우지했고 황제란 허울뿐인 황제라...

난을 제압하기 위해 지방마다 군벌이 군사를 키웠기에 이 군사의 힘이 황궁을 능가하며

난이 평정된 후에도 군사를 해체하지 않고 점차 자기만의 세력을 경쟁적으로 키워갑니다.

 

젠장,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셈입니다.

황건적의 난은 민초가 농기구 대신 창칼을 들었지만,

군벌은 제대로 된 무기와 훈련을 받은 무리입니다.

중앙정부는 힘이 약화하고 원소나 동탁, 또는 조조가 이제부터 두각을 나타낸다는 말일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군대로 힘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부터 영웅놀이에 빠지고 싶었던 겁니다.

 

이런 여러 군벌이 결국, 황제도 납치하고 마음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하며 황제연습에 들어갑니다.

동탁이나 원소와 그의 동생 원술마저 황제연습을 했던 사람들이죠.

원소와 원술 형제는 워낙 타고난 배경이 좋았기에 두 형제는 서로 힘만 합했다면

큰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요?

 

원소가 형이고 원술이 동생이지만 원술이 적자고 원소는 첩의 자식이라 두 형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 모두 조조에게 아픈 시련을 겪고 황제의 꿈은 개꿈으로 끝나고 말았다네요.

결국, 원소는 조조보다 강한 조직이 있었지만, 관도대전에서 조조에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조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지요.

 

뭐... 원소가 승리했다고 삼국지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

조조 자리에 원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세력들이 서로 치고받고를 하며 마지막에는 세 조직만 남게 되어 이들이

바로 삼국지라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를 만들게 되었다네요.

아래 영상은 대안탑 분수 쇼를 휴대전화로 찍어보았습니다.

클릭하셔서 잠시 대안탑의 분수 쇼를 즐겨보세요.

 

시안에 왔으니 오늘은 코~ 자고 내일은 옛날 장안으로 잠시 돌아가 그때 여기에

있었던 동탁과 여포 그리고 왕윤과 초선을 만나보렵니다.

왕윤은 중국의 사대 미녀 중 하나라는 폐월 초선을 앞세워 동탁과 여포를 미인계와

연환계로 통쾌하게 박살 내는 모습을 곁눈질하렵니다.

초선은 실제로 있었던 여인이 아니라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만든 가공의 여인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바로 북쪽을 평정하고 황제를 옆에 둔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조조가 있었고

나중에 위나라를 세운 조비가 있었고 남동쪽에는 오랜 호족출신인 손 서방네 일가가 있어

손견, 손책, 손권으로 이어지는 오나라가 있습니다.

그다음이 내츄럴 슈즈 짚신장수 출신으로 삼국지연의의 주연배우 대접을 받고 제일 많은

개런티도 받은 촉한의 유비가 있었지요.

물론 그의 아들 유선도 황제가 되었지만, 결국, 위나라의 공격에 사라지며

삼국지의 이야기도 파장되었을 겁니다.

이 세 세력 간의 이야기가 바로 삼국지연의의 줄거리라고 봐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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