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나그네는 길에서도 울지 않고 자알 다닙니다.
이런 길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걸어 본다면 더 좋습니다.
기웃거리며 두리번거려도 좋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이렇게 걷어가며 두리번거린다는 일은 우리 부부를 무척 설레게 합니다.
비록 낯선 곳이지만, 이런 길을 호젓하게 걷는다는 일은 여행 중에도 무척 기분이 좋은 곳입니다.
여행은 결국, 길을 걷는 일이 아니겠어요?
여행길은 바로 우리의 삶과 같은 인생의 길이니까요.
이 모퉁이 돌아가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저 모퉁이 돌면 또 어떤 세상일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더욱 궁금하고 설렙니다.
우리 살아가며 늘 장래에 대한 설렘도 이와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요?
내일은 또 어떤 세상이 열릴까 궁금해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언제나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저들은 무척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이 허리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하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 그 또한 고개가 저절로 끄덕이게 되지요.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바위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그 틈 사이에 허리 건강을 기원하며 나무를 끼워 넣습니다.
작은 부처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지요.
나한동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석불을 볼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그저 석벽만 있으면 이곳은 무조건 파고 들어가 신을 모셨나 봅니다.
이 동네 신은 이렇게 파고들기를 즐겼나 봅니다.
신도 인간이 사는 방법대로 살아가나 봅니다.
여기도 모르면 그냥 지나칠 것 같습니다.
방금 관음천에서 시주한 덕분에 돌아가면 뭐가 있다는 말을 제스처로만 알아듣고 사찰 건물을 돌아 더 들어왔더니
여기도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고 이름조차 제자동(梯子洞)이네요.
이런 건축양식을 애각식(崖閣式) 동굴이라 하나 봅니다.
지연현상을 최대로 이용한 방법이네요.
석벽을 파고 들어가 그 사이에 누각의 받침을 만들어 끼우고 그 위에 건물을 앉혔습니다.
석련동, 삼불동, 석가동 등이 있고 동굴 안에는 머리카락으로 보아 선인의 조소상으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바닥은 바위를 뚫어 끼운 횡목에 지탱하네요.
청나라 때 서법가인 왕료망의 모습도 만들어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명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주원장의 자손도 만들었답니다.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제법 널리 알려진 사람의 조소상도 만들어 모셨답니다.
이곳의 석불은 주로 명나라 때 조성한 것이라 합니다.
이제 여기를 떠나 또 다른 곳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우리 함께 떠나실까요?
위의 사진에 보인 사람은 佳人이지 조소상이 아닙니다.
잠시 길을 걷다 보니 사리탑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석가모니를 화장했을 때 나왔겠지만, 요즈음은 오랜 수행을 한 고승을 화장했을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무슨 훈장처럼 생각되어가는 듯하여 씁쓸합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만 보려고 하는 세태가 우리를 슬프게 하네요.
언제 부처가 사리 숫자로 줄을 서라 했습니까?
여기는 사립탑을 모신 곳도 역시 절벽 사이에 생긴 공간입니다.
이 동네는 무조건 무조건인가 봅니다.
그래서 여기를 사리탑을 모셨다고 해 사리애(舍利崖)라고 한답니다.
그런 이름은 佳人도 생각할 수 있네요.
건물 하나가 보여 들어가 봅니다.
천수관음전이라고 합니다.
가운대 천수관음이 보이고 왼쪽에 18비관음이라는 준시보살이 보이고 오른쪽에 6비관음인 여의타보살이 보입니다.
먼지나 털면 안 될까요?
얼마나 청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어 저리도 먼지가 많을까요?
그다음에 보이는 게 천불애라는 곳입니다.
북위 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해 송, 원, 명대에 이르며 계속 중수했던 모양입니다.
북위는 부처를 중국에 알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나라를 세웠나 봅니다.
담요의 말에 5대조부터 미륵이었다는 말에 왕은 자신도 부처라고 생각해 국교를 불교로 바꾼 후
나라의 모든 역량을 이렇게 석굴 만드는 일에 매진했나 봅니다.
높이가 7.5m이며 길이가 23.1m로 제법 크게 만들었습니다.
감실을 만들어 그 안에 부처를 모셨을 텐데...
지금도 남아있는 작은 감실이 모두 15개가 남았다 하네요.
여기에 만든 석불의 숫자가 모두 천여 개가 넘었다 합니다.
여기에 만든 방식은 맥적산 133굴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럼 맥적산 석굴은?
여기와 같은 방법이라 할 건가요?
천불애는 많은 석불이 있어 천불애라는 이름을 정했을 텐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잔해만 남았습니다.
세월은 부처마저 사라지게 하나 봅니다.
아닌가요?
부처의 다음 화신인 칼키가 번호표를 받아들고 기다리기라도 하나요?
아니?
눈으로만 보아야 부처가 보입니까?
누구나 마음속의 부처를 지니고 살아가지 않나요?
선인애에도 많은 석불이 있지만, 보존상태는 맥적산만 못합니다.
그래도 남은 모습만 보더라도 무척 아름다웠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연꽃 위에 올라선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마치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듯하군요.
아래까지 내려왔나 봅니다.
잠시 뒤를 돌아봅니다.
봉우리 하나가 보이네요.
바로 옥황대제를 모신 사당이 꼭대기에 있는 옥황봉이라는 봉우리로 선인애에서 모두 저런 봉우리가
다섯 개가 있다고 하며 그중 제일 잘난 봉우리가 바로 아까 우리가 올랐던 저 봉우리라고 하네요.
앞으로는 오를 수 없고 뒤로 계단을 만들어 오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절벽 중간에는 열반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아래에 있는 선인호라는 호수까지 내려왔네요.
지금 시각이 2시 40분으로 11시 30분경에 들어왔으니 3시간 정도 구경했네요.
그렇다면 거의 다 보았다는 말일 겁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천수 기차역까지 나가렵니다.(8원/1인)
그러니 천수를 오시면 일찍 맥적산과 여기 선인애를 함께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버스로도 이동 가능한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월은 부처의 모습도 사라지게 합니다.
부처가 사라지면 이제 다음 세상인 백마 탄 초인인 칼키가 온다 했습니다.
세상이 혼탁하면 다음 세상이 온다 했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슈누도 포기한 세상입니까?
아니면 아직 살만한 그런 세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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