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4.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이야기가 있는 가정을 구경합니다.
위의 사진은 실가정(失街亭)이라는 벽화 그림을 찍은 사진으로 마속이
가정전투에 패하고 장합에 쫓겨 도망가는 모습입니다.
228년 공명의 1차 북벌은 전투 초반에는 촉에 유리하게 진행되었는데 공명은 이곳
천수와 안정, 남안을 정리하고 이제 장안으로 들어가는 꿈도 그리게 되었습니다.
왜?
승승장구 중이었으니까요.
유비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삼고초려를 하며 자신을 초빙하려고 한 선제 유비의
꿈을 이제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위군도 공명의 촉군을 막기 위해 조진, 장합등을 보내 막으라 합니다.
이제 한 걸음씩 마속이 진을 쳤다는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가정 전투장 토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숭복사라는 사찰을 지나 올라가도 되네요.
사찰 주변으로도 여기저기 토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절을 기웃거리며 구경합니다.
절이라 하지만, 도인을 모신 도교 사원으로 보였습니다.
공명은 우선 위군이 가정을 통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를 파견하며 누구를
대장으로 삼을까 고민하고 이때 마량의 동생 마속이 나서서 공을 세우려 하자
젊은 세력인 참군에 불과하지만, 2만 5천 명의 군사를 주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나
많은 사람은 경험이 풍부한 위연이나 오의를 추천합니다.
여기서 공명의 결정적인 패착이 나오지요.
바로 공명은 주변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마속으로 결정하고 미덥지 못해
왕평을 참모로 데려가라 하고 그곳에서의 일은 좁은 통로와도 같은 산골짜기를
점령하여 위나라 군사의 통과를 막는 일입니다.
이 골짜기는 바로 양평관이라는 군사적 요충지로 통하는 길목이며
공명의 촉한군에게는 숨통과도 같은 곳입니다.
숨통을 차지해 내 숨통은 열고 상대의 숨통을 조인다면
승리는 저절로 따라오지 않겠어요?
이런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입가에 저절로...
이로써 뒤를 지키고 식량 루트도 확보하고 공명은 드디어 위나라의 주력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미성이 보이는 사곡으로 촉의 본대를 움직여 결전을 준비합니다.
이제 삼국지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벌어지려는 순간입니다.
바로 공명과 중달의 지략싸움이 벌어집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뭡니까?
우리는 옛날로 돌아가 마속의 진을 찾아 올라가는데 오토바이의 출현이라니?
우리가 산 위의 토성으로 올라간다고 마속에 알리려고
전령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나요?
우리의 방문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했거늘...
그때 마속이 타던 오토바이인가요?
오토바이를 탄 전령만 있는 게 아닙니다.
벌써 여기저기 봉화로 우리의 출현을 알리기 시작하나 봅니다.
우리가 위나라 장합의 군사도 아닌데...
제법 많이 걸어 올라왔네요.
잠시 쉬며 목도 축이고 뒤를 내려다봅니다.
물이란 이렇게 잠시 산에 올라와도 마시고 싶은데...
전투 중에는 오죽하겠습니까?
가정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보입니다.
날씨는 늘 그렇게 운무에 싸여있지만, 오늘은 제법 시야가 멀리까지 트여있네요.
요동과 비슷한 토굴이 보입니다.
언제 토굴을 파고 사람이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람은 살지 않고
그냥 버려져 있습니다.
혹시 여기가 마속이 머물던 영채는 아닐까요?
아니면 군량미를 보관한 창고일는지...
그냥 맹숭거리며 올라가는 것보다 이런 곳은 쓸데없는 생각일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며 오르면 더 즐겁습니다.
30분 이상을 헐떡거리며 오르다 보니 앞에 산 위의 성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잠시 서서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모르겠어요.
아무도 찾지 않은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한데
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러나 말이죠~
여행이란 이렇게 엉뚱한 짓도 하며 다녀야 그게 기억에 오래 남는 일이지요.
지금 사진 속에 올라가는 사람은 마속이 아니고 佳人 친구입니다.
어이! 친구~
빨리 가지 마시게나~
혼자 빨리 올라가다 공명에 걸려 또 목이라도 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혼자 빨리 올라가시나?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공명의 지시인 골짜기를 막아 통로를 허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산 위에 진을 칩니다.
부장인 왕평은 극구 말리지만 마속은 그의 얄팍한 재주만 믿고
그대로 산 위로 올라갑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그쵸?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 적과의 교전이 벌어지면, 산 위에서 치고 내려오는 게
전투에서는 유리한 게야!"라고 하네요.
꼴에 병법을 조금이나마 냄새라도 맡았다고...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명의 말한 작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말입니다.
공명은 적의 통로만 지키라는 지시였고 마속은 적을 섬멸해 공을 세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습니까?
바로 이런 경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지키는 것으로는 공을 쌓는 일이 어렵다 여겼나요?
중동의 축구가 지키려고 할 때 하는 침대 축구가 요즈음 더 발전해
시체놀이로 일취월장했더군요.
마속은 중동 축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했나 봅니다.
이제 정상의 성채까지 올라왔습니다.
왕평은 할 수 없이 자기 병사를 달라고 하여 5천 명을 이끌고 마속과 헤어져
여기 가정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답니다.
여기서 공명의 생각과 마속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명은 마속에 가정의 길목을 지키라는 명령이었고 마속은 공을 세우려는 생각이
앞섰기에 지키기보다는 통과하려는 적을 산 위에서 내려 닥치며
섬멸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작전을 지시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
이런 엉뚱한 일이 생기나 봅니다.
이제 정상에 다 올랐습니다.
그러나 제일 위에는 토성을 쌓았고 토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터널을 통해야 합니다.
지금은 돌보는 사람마저 없나 봅니다.
무너지기 직전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한때는 평안하기를 바랐나 봅니다.
이름을 평안보(平安堡)라고 정했네요.
평안해지는 작은 성이라는 의미인 듯합니다.
전쟁을 준비하며 만든 둔보에 평안을 기원한 이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쟁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누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는 힘을 앞세워 민초에게 목숨을 걸라고 합니다.
젠장! 민초란 바로 힘 있는 자의 소모품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지들끼리 하는 영웅놀이에 말입니다.
왜 맨날 불바다 놀이만 합니까?
터널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전쟁을 준비하며 쌓은 성이지만, 사람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원했나 봅니다.
누구나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며 미리 대비하며 만드는 이런 구조물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파괴보다 인성 파괴가 더 무서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은 정녕 꿈의 세상인가요?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터널 가운데에는
위의 사진처럼 좁은 공간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토성을 드나드는 사람을 체크하는 병사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겨우 사람 하나 정도 서 있을 아주 좁은 공간입니다.
드디어 촉군이 진을 친 가정에 위군이 도착하고 중달은 아들 사마소에게 적의
주둔상황을 알아보는 정탐을 맡겨보니 얼라리요?
마속이 군대를 산 위로 끌고 올라가 그곳에 진을 쳤더랍니다.
보고를 받는 순간 사마의는 아연실색합니다.
울 마눌님이 정탐해도 산 위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도 성채 위에는 이렇게 토성을 쌓아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부서져 버렸지만....
사마의는 잠시 고민을 합니다.
이것은 공명의 다른 의도가 있지나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도대체 병법 어느 구절에 이런 방어책이 나온단 말인가요?
사마의 중달은 군사로 하여금 산 아래를 봉쇄해 버립니다.
방어해 적을 봉쇄하라고 보냈던 마속의 군사가 오히려 적에게 봉쇄 돼 버렸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오히려 중달이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속으로 공명도 별 게 아니라고 비웃었을 겁니다.
그러면 산 위에 진을 친 군사는 물의 공급과 식량공급이 막히면 자연히 사기가
떨어지고 사기가 떨어지면 야밤에 도주하는 병사가 늘어나고 그러면 2만 명의 군사는
열흘만 지나도 2천 명도 남지 않은 허수아비 군대가 됩니다.
아니군요?
여기는 수수밭이 있기에 수수 아비 군대가 되겠군요.
지금 여기에 보이는 수숫대는 마치 마속의 군사처럼 물이 없어
모두 말라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게 없으니 이렇게 수숫대처럼 말라 비틀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이곳 정상에 있는 성채 안의 넓이는 약 300평 정도의 크기로 보였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흐르자 마속의 군사는 갈증과 배고픔에 하나씩 투항하거나 야밤을
이용해 도망하게 되고 나머지 남은 군사도 산 아래에서 불을 놓아버리자마자
마른 장작 타듯이 온 산에 불이 붙어 마속의 남은 군사마저 궤멸당하고 마속은
몇몇의 군사만 대동하고 산을 넘어 도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을 보니 아직도 두 사람이 여기에 남아 서성입니다.
마속의 철수명령을 기다리며...
도망하던 마속은 위연을 만나 억울한 생각에 다시 뒤를 쫓아온 장합의 군대와
맞서보지만, 그것은 오기에 불과한 만용이었습니다.
이미 사기가 땅에 떨어진 마속의 군대는 지리멸렬...
이런 걸 꼴값 떤다고 해도 될 겁니다.
간신히 왕평의 구원군이 도착하며 겨우 목숨만 건져 한중의 숨통인 양평관마저
함락당할까 두려워 남은 군사를 이끌고 양평관으로 후퇴하게 되었답니다.
이게 바로 가정전투의 전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큰 뜻을 품는 자 큰 고통을 느낀다 했습니다.
마속의 목을 베는 공명이 왜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아끼는 수하의 목을 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공명은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큰 고통을 혼자 안고 가야 했습니다.
누가 이런 공명의 고통을 알아주겠습니까?
바로 여러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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