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4. 08:00ㆍ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곽량촌 여행은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곳을 가게 되었고,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록,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그 사내는 우리 부부에게 아주 감동적인 곳을 소개한 셈입니다.
이런 길을 걸었다는 일은 무척 기억에 남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길은 그냥 걷는 겁니다.
이렇게 터벅터벅 걷다 보면 부부 사이에 몰랐던 마음마저 보입니다.
평소 하지 못했던 말까지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세상과 나를 소통시킬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도 교통 하게 합니다.
우리 부부는 여행 중 가능하면 많이 걸어 다니려 합니다.
이런 모습을 차로 빨리 이동하면 기억 속에 깊이 남겨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이었다 하면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나이에 우리가 걸었던 곳은
나중에 다시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며 마음에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걸어가며 느끼는 감정은 차를 타고 가며 보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장서서 걷다가 잠시 뒤도 돌아보며 걷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물끄러미 佳人만 바라보며 따라오는 삶의 동반자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 속에는 멋진 풍경과 오버랩되는 마눌님의 모습은 지금껏 함께 살며 종종거리고
살아왔던 그런 생활 속에 찌든 마눌님이 아니라 어떤 때는
예술 작품 속의 여인으로 보이기도 하답니다.
거짓말이라 고요?
일단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그러면 미소 한번 싱긋 짓고 다시 길을 걷는 겁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더 많이 바라보고 더 많이 미소 짓고 싶습니다.
이제 백수가 되니 경제적으로는 능력이 되지 않아 그냥 돈도 들지 않는 미소로 대신하렵니다.
우리 부부는 만선산 셔틀버스 타는 곳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알려준 덕분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종점인 난핑까지 올라왔습니다.
물론 요금을 더 내지 않고 말입니다.
게다가 난핑촌도 아울러 공짜로 구경할 수 있잖아요.
덕분에 말입니다.
버스는 난핑촌으로 들어가니 그곳이 종점인가 봅니다.
버스 안내양은 기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온다고 사라집니다.
아마도 이 동네 사람인가 보네요.
이곳에서 1박을 한다면 여기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이 있나 봅니다.
2-3km 거리에 흑룡담, 단분구, 남마암 등...
일월성이라는 곳은 0.1km랍니다.
그러면 바로 코 앞에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어제 우리 부부가 경구 대문을 통과할 때 표를 사지 않고 버스 뒷자리에 누워 들어오며
30원이나 저렴하게 안내양에게 직접 건넨 돈은 바로 이 마을 사람의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여행 경비를 절약하고 이곳 주민도 도움이 되고 주숙 등기도 하지 않았으니
중국 정부는 우리 부부가 이곳에 온 일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가끔 중국 정부도 모르는 곳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다니기도 합니다.
물론 주숙등기도 하지 않는 오지마을이었잖아요.
30원의 절약은 궈량촌에서 하루 방값이었으니 얼마나 큰돈입니까?
중국 정부에서 주민이 목숨을 바치며 손으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성으로 돌을 깨며
절벽에 장랑을 만들 때 한 일이 무엇이길래 꼬박꼬박 입장료를 받아 챙기는 겁니까?
정부란 주민의 목숨을 담보로 만든 이런곳에 입구에 사무실을 만들고
입장료만 챙기는 앵벌이입니까?
물론, 그 돈이 나라를 위해 사용되겠지만...
버스가 서 있는 시간에 혼자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이 마을에도 구경할 만한 곳이 무척 많군요?
숙소도 제법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도 관광지인가 봅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며칠 쉬었다가 가고 싶네요.
이 길로 올라가면 궈량촌으로도 연결이 되고 여러 곳을 볼 수 있나 봅니다.
드디어 일월성석이라는 돌을 찾았습니다.
1994년 마을의 한 농부가 밭은 갈다가 발견한 일월성석(日月星石)은 자연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마치 누가 직접 조각칼로 새겨 만든 듯
선명한 모습으로 해, 달, 별을 보여줍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요.
중국인데 왜 농부가 밭을 일구다 발견했다 하나요?
어느 날 용이 이곳을 지나다 떨어뜨렸다 하거나 여기가 만선산이니 신선이 밤에 나타나
어디를 찾아보라 해서 찾았다 하지...
중국도 때로는 되게 순진한 면도 있어요. 그쵸?
마을 사람들은 큰돈을 주겠다는 외부사람의 제안을 거부하고 이 돌을 정자까지 지어
마을의 보물로 모시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돌의 기운을 축복처럼 받으며 이 마을도 행운이 찾아오지 않겠어요?
그리고 만선산의 산신도 해피 해피해지겠지요.
덕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신비한 돌판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삼겹살 돌 구이판이 생각나신다고요?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으라 할까요?
여행이란 이렇게 기다리다 들어왔다 나갈 버스를 타고도 신기한 돌판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불역낙호아~ 아닌가요?
그런데 그 뒤로 장군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장군봉이라면 북한에도 많이 있지요.
북한은 누구를 흠모하여 봉우리가 솟아올랐겠지만, 이곳은 어떤 이유일까요?
물론, 안개가 심하게 끼어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위의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바라보시고 넘어가시죠?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봉우리가 보이고 그 봉우리 위로 절굿공이처럼 생긴
또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모습의 바위라면 당연히 전설이 있을 겁니다.
물어볼까요?
원래 봉우리 높이는 89m라네요.
그런데 그 위에 20여 m 가 어느 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불쑥 솟았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신비로운 일이 많이 생긴 나라라 佳人도 더는 놀라지도 않고
묻고 따지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아주 순진한 이야기니까요.
서한 말년에 이(义 : 義)군의 유명한 지도자인 판총(樊崇 : 번숭)이 이끄는 군대가 이곳 산 위에서
적에 의해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적군에 포위당해 군사를 대부분 잃었고 먹을 양식마저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고 산이 떠나가라 큰소리 웃고는(仰天長笑) 머리를 절벽에 부딪혀
장렬한 죽음을 택했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고 코너에 몰리면 헛것이 보이고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이면 실성하지요.
여기까지는 전혀 중국답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왜?
실성한 사람이라니까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중국틱한 이야기가 이 마을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죽은 판총의 몸이 돌이 되어 우리가 본 이 봉우리 위에 우뚝 솟았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사람의 몸에 사리가 나오고 담석이나 요로결석으로 몸 안에 돌이 생긴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 알고 있지만, 저렇게 사람의 수십 배나 되는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올라가기도 어려운 저 가파른 곳에 죽어 바위가 되어 올라갔답니다.
그곳도 올라가 눕지도 않고 곧추선 자세로 우뚝 섰답니다.
중국도 부끄러운 이야기라 지금 안개로 숨기고 감추었지요? 그쵸?
아무 생각 없이 솟은 바위가 이 이야기가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그 모습조차 佳人에 숨기고 싶어
저렇게 운무 속에 숨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 이야기는 농민군 장수는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고 항복은 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후세 사람에게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라 하네요.
아! 이런~ 이제 여러분도 이런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佳人의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 일대는 구조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암석의 연대는
12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네요.
풍부한 산화철 성분 때문에 붉은 색조를 띄는 석영 사암들은 저마다 독특한 줄무늬를 보여줍니다.
부드러운 잔물결이 뚜렷한 파도석들도 쉽게 발견된다고 하네요.
이 지방도 운대산처럼 오래전 바닷속에 있었다는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셈입니다.
정말 우연히 약속한 삐끼가 우리를 버리고 달아나 화딱지가 나서 찾아 나선 곳이지만,
이번 우리 부부의 한 달 여행의 여정 중 가장 멋진 곳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네요.
여행이란 이렇게 우연히 기대도 하지 않고 찾아간 곳이 대박이 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워낙 오지에 숨어있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만선산의 신선과 헤어져야 합니다.
신선이야 우리와 헤어짐이 서글퍼 운무로 만선산을 가득 덮고 있지만,
우리는 과감히 뿌리치고 다음에 갈 곳을 향하여 길을 걷습니다.
혹시 이곳을 개인적으로 방문하고자 하시는 분은 위의 버스 시간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 골짜기를 벗어나는 버스는 유일하게 이런 버스 외에는 없습니다.
후이시엔과 신시앙으로만 나가는 버스로 그곳에만 나가면 뤄양이나 정저우 등 주변 대도시로
연결되기에 우리 부부처럼 초작에 있는 운대산을 보고 그대로 따라오셔도 좋고
뤄양에서 하루에 두 번 후이시엔으로 오는 버스를 타시고 오셔도 됩니다.
물론 정저우나 뤄양에서 신시앙으로는 더 많은 버스가 운행된다 합니다.
그러나 신시앙에서는 이곳으로는 하루 3번만 운행하지만,
그 버스는 후이시엔을 거쳐 들어오기에 후이시엔에서는 하루 일곱 차례나 운행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부부의 여행은 참 두서없이 진행합니다.
가다가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잠시 옆길로도 들렀다 가고...
그러다 보니 원래 계획한 곳을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뤄양에서 소림사로의 여행은 시간 때문에 이번에 접어야겠습니다.
물론 관우가 잠든 관림이나 다른 곳도 대부분 생략하고 뤄양도 잠시만 들렀다 가야 하겠어요.
또 정저우에서 계획한 황허 풍경구도 취소하고 가야 하겠네요.
우리의 삶이 계획했다고 그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여행도 그렇잖아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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