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1.500년전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2012. 6. 16.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산의 한쪽 면은 모두 굴을 파 그 안에 부처를 모셨고 그것도 부족해 석벽에는 감실을 만들어 부처나 탑을

새기도 했고 대부분의 석굴 앞에는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연구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불교에 대하여 아는 것도 없는 무지렁이인 우리 부부가 자세히 본들

아는 것은 무엇이고 느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냥 전부 퉁~ 쳐서 석굴이고 그 안팎으로 조각상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곳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것이 신앙의 힘이고 믿음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만 압니다.

이곳은 돌에 새긴 조각, 글을 쓴 서법, 석불이나 탑 등 종합예술의 현장이라 합니다.

 

만수교를 건너면 동산이라 부르는 돌산이 있고 그 돌산 여기저기를 석굴로 만들고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상은 조금 전 서산석굴에서 본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만들다 만 것도 있고 아마추어가 보아도 예술성도 많이 떨어지는 것도 보입니다.

견습생이 연습을 위해 만들었으면 어떻습니까?

연습생의 신화를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이제 伊水를 건너가는 만수교라는 다리를 지나 방금 본 석굴을 뒤돌아 바라봅니다.

그 느낌이란...

오늘은 역시 날씨 탓으로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네요.

우리 부부가 슬퍼하는 일은 바로 이런 일뿐입니다.

그래도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니 대단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강의 동쪽에 난 동산 석굴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동산 석굴은 아마도 인턴 석공이 연습했던 곳인가 봅니다.

위의 사진처럼 석굴을 뚫으려고 마름질하듯 크기를 정하다 만 곳도 보입니다.

석벽을 파고 지붕을 돌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볼 때 제법 제대로 만들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용문석굴 건너편 강가에 있는 향산(香山)은 석굴의 수도 적지만,

석굴 형태도 수습사원이 습작으로 만들다 팽개쳐놓은 듯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한 석공도 있었나 봅니다.

제법 솜씨가 좋아 이곳에서 발탁되어 메이저 리그인 서산 석굴로 건너가 장인의 솜씨를 뽐낸 석공도 있었을 겁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장인처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모두 초보운전으로 시작했고 장인 누구나 수습생으로 시작했습니다.

 

마치 여기서 연습한 훈련생이 기술을 익혀 마에스트로가 되면 자격증을 받고 건너편으로 넘어가

제대로 된 석굴을 만들었나 봅니다.

이 두 곳을 구분하기 위해 아까 보고 온 석굴을 서산 석굴이라 하고 이곳이 동산 석굴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동산 석굴은 급이 다른 초보들의 놀이터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제 이곳도 기왕 건너온 김에 제대로 만든 몇 곳을 보고 가렵니다.

비록, 여기도 돌산이지만, 제법 가을 냄새가 나네요.

나뭇잎이 가을의 한가운데로 달려간다고 색깔마저 변해갑니다.

가을은 돌산도 예쁘게 치장하는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사방정토사변감(四方淨土變龕)이라는 곳부터 보렵니다.

이곳은 당나라 때 만든 것으로 석굴을 파고 석굴 속에 부처를 만들지 않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벽에다 만들었습니다.

이 석공은 아마도 굴을 파는 교육은 받지 못하고 조각부터 배웠나 봅니다.

 

얼굴만 훼손되었다는 것은 누가 일부러 훼손했다는 뜻일 겁니다.

벽면에는 가부좌한 아미타불이 있고 그 옆으로는 보살도 보입니다.

많은 부처의 얼굴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제일 먼저 부처의 얼굴이 사라지는 겐 가요?

부처가 사라지면 그다음 세상은 누가 인간 세계를 보호할까요?

비슈누가 아홉 번째 변했다는 부처 다음으로 열 번째 화신은 칼키라 했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각도 보이고 가루다라는 비조(飛鳥)와 비파라는 악기 등을 만들었습니다.

주제는 아미타불이 중심이고 서방 극락세계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천수천안관음감(千手千眼觀音龕)입니다.

이 감실은 당나라 때 만든 것으로 벽면에 조각한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보살로 당나라 때의 밀종을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시대에 이런 밀교가 한때 유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은 눈이 천 개나 되기에 세상 어느 곳이나 볼 수 있고 손 또한 천 개나 되기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누가 보지 않는다고, 알지 못한다고 숨어서 나쁜 짓을 해도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은 죄다 알고 있습니다.

빠떼루는 민초만 받는 게 아니고 수도자도 받습니다.

만약, 빠떼루 자세에 들어가 천 개의 손을 뿌리치고 나올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뻘짓하는 자들이여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팔이 두렵지 아니한가?

요즈음 중국 정부에서는 여기에 착안해 전 인민의 얼굴을 감식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민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어 국가에 반항하거나 국가의 지시를 어기는 사람은 바로 적발해 혼을 낸다고 하지요.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가제트의 팔이 생각납니다.

佳人은 부끄럽게도 이런 곳에 가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나나 모르겠습니다.

천수 천안이라 하기에 정말 천 개나 되는지 묻고 따지려 했으나 주변에 아무도 없더군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게 만든 손 외에 그 옆으로 잔물결처럼 만든 무수한 손이 보이는군요?

그리고 그 손바닥에는 눈이 하나씩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정말 천 개냐고 따지려 했지만, 여기 서서 꼼짝도 하지 말고 모두 세어보라고 할까 봐 그냥 가기로

해야지 저걸 모두 세다가는 오늘 날밤을 세도 다 못 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고평군왕동(高平郡王洞)입니다.

이 석굴은 당 무주 시기에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무측천의 생질인 무중규룰 위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젠장, 생질도 힘 있는 자의 생질이 되면 이렇게 석불을 만들어 만수무강을 축원해주었나 봅니다.

 

두 개의 굴로 만들었고 정면으로 1 불, 2 제자, 2 보살로 5 존상으로 조각했답니다.

존귀한 사람을 위해 만들다 보니 너무 아부성이 강한 듯합니다.

5 존상을 바닥에 두지 않고 새털처럼 가볍게 연꽃 위로 올렸습니다.

이거 너무 띄어주는 거 아닙니까?

공연히 콧구멍으로 바람만 잔뜩 들어가 나중에 거꾸로 곤두박질칠지 모릅니다.

 

굴 밖으로는 양쪽에 역사가 있습니다.

세상에 머리 나쁘고 힘만 쓰는 역사는 늘 같은 자세만 취하고 있습니다.

그냥 바른 자세로 서 있다고 누가 뭐라 합니까?

쟤들은 늘 오버액션을 하듯 과도하게 허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역사의 힘은 허리에서 나오나 봅니다.

사내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이제 동산을 내려오며 보니 이곳에도 많은 석굴이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불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쇠문을 만들어 막아놓았고 문패 하나 붙여놓지 않아 이게 무언지 알 수 조차 없습니다.

설명서를 붙인다 한들 그래 봐야 또 1 불에 2 제자에 2 보살이라고 할 겁니다.

차라리 무명굴이라 하고 싶습니다.

석굴 이름을 알았다고 우리 삶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요.

 

벽감 속, 연꽃 좌대 위에 선 모습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저리도 옷자락에서 풍기는 자태가 고운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얼굴은 누가 훼손했지만...

이곳은 이름조차 없는 곳입니다.

비록 이름도 없는 무명굴이지만, 그 고운 자태만은 다른 유명굴에 비해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곳에 있지만, 무지렁이 佳人의 발길을 머물게 한 고운 옷자락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게 합니다.

 

이 자리에서 천 오백 년 전에 이 조각을 만든 석공과 교감해보려 합니다.

석공은 정을 들어 토닥거리며 벽을 파고 들어갔으며 자기가 생각한 이상을 하나씩 현실로 나타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돌이었지만, 석공의 손이 스치고 지나가니 돌은 생명력을 얻어 그 자태를 나타냅니다.

비록, 지금은 이 석불은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그냥 방치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여행 중 이런 호사를 누리는 일은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바로 자유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천장은 그을음으로 까매졌지만, 눈길을 아래로 돌려 연화 문양의 좌대를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석공은 1.500여 년 전 이 석불을 만들 때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어 만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며 예전 사람과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유적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적은 우리 또한 보호하고 아껴서 우리 후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비록 어느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석공과 잠시 서서 교감해보려 했습니다. 

석공이 무엇을 말하려 한지 들여다보며 대화해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냥 보고 지나치면 알 수 없지만, 가만히 서서 귀 기울여 보면 아마도 1.500년 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굵은 땀방울은 흘리며 정을 들어 한 땀 한 땀 쪼아가며 석불을 만들며 내 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정말 숨소리가 들립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가다가 우두커니 서서 옛날 사람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佳人이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쓸쓸히 발걸음을 옮겨버렸습니다.

그 거친 숨소리는 높은 언덕을 헉헉거리며 올라온 佳人의 숨소리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