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0.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10월 23일 여행 13일째
지난밤은 정전까지 되어 촛불을 켜고 지냈습니다.
밤새도록 촛불에 희미하게 비치는 마눌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잠이 들었습니다.
사랑이란 희미한 촛불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방에는 화장실은 물론 세면실도 없습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니 마당에 계시던 주인장 노인이 웃으며 아침인사를 합니다.
간밤에 추었던 일도 불편했던 일도 주인장 노인의 미소로 모두 춘삼월 봄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얼른 더운물을 떠다 주시며 세수하라 하네요.
이곳은 아침부터 마음 따뜻한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 물은 혹시 황허에서 바로 길어올려 데운 물이 틀림없을 겁니다.
따뜻한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정성을 데운 물이잖아요. 그쵸?
이렇게 말도 통하지 않고 이름조차 생소한 곳에서 이른 아침 얼굴을 마주하며
짓는 미소는 지난밤 추웠던 생각을 잊게 합니다.
여행의 참맛은 바로 이런 훈훈한 인정을 느끼는 일로 시작되며 완성됩니다.
마을 구경을 나섭니다.
이곳도 예외 없이 아침 안개가 자욱합니다.
왜 아니겠어요?
바로 황허가 옆으로 흐르는걸요.
황허를 가득 덮은 아침 안개를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아침 산책을 나섭니다.
그런데 어디서 연락을 받고 왔는지 동네 멍멍이들이 모두 길 안내를 하겠다고
나서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주 신이 났습니다.
이 동네는 쟤들 나와바리라는 말이 아닐까요?
이 동네는 손님 대접을 이렇게 개를 앞세워 하나 봅니다.
아침부터 이름조차 생소한 중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목 줄조차 없는 개와의 동행이라...
동네 개를 따라 아침 산책 즐겨 보셨수?
우리 부부 해 봤수~
아침 7시에 일어나 다리를 건너 건너편 마을로 걸어봅니다.
오늘 아침 치커우를 출발하는 버스가 줄줄이 서 있네요.
잠시 서서 리스(離石)행 버스 시간을 알아봅니다.
아침 시간에는 리스로 나가는 버스가 자주 있습니다.
다리 위에는 노구교처럼 사자를 만들어 올려놓았는데 어디 붕어빵 기계로 찍어온 듯합니다.
다리 위에 사자 조각만 올리면 노구교가 될까요?
길가의 가로수에는 대부분 이렇게 웅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 혹시나 내리는 빗물이 밖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지방을 버스로 오다 보니 모두 가로수에 테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시 마을 안으로 걸어봅니다.
우리에게는 버스 출발시각까지 약 1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습니다.
약국인가 봅니다.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두리번거리니 아침 빵을 굽는 집도 있어 기웃거려 봅니다.
우리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빵과 미역국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습니다.
여행 중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국으로 만들어 먹는 제품이
우리나라에는 많습니다.
간단하고 가볍기에 준비하여 다니시면 입맛이 없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곳에서는
그냥 빵과 함께 더운물에 풀어 먹으면 한 끼 식사로 거뜬합니다.
입맛이 까다로우신 분은 미리 챙겨가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기차 안에서도, 아무리 시골구석이라도 뜨거운 물은
언제나 무료로 공급되는 나라입니다.
이곳처럼 황허 기슭에 있는 수백 년 전의 마을에도 뜨거운 물을 무료로 줍니다.
색깔마저 바래져 희미해져 가는 어느 마을일지라도 말입니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뜨거운 물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아마도 기물점인가 봅니다.
동으로 만든 제품을 창에다 진열하여 놓았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마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헐~ 골목길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생활도구를 바라보고 예술을 논하는 佳人이
아마도 잠시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되네요.
왼쪽의 제기는 향로와 촛대로 보이는군요?
이런 제품이 예전에 이곳을 통하여 많이 유통되었을 것 같습니다.
황허를 통하여 배에 실려온 다른 지방의 물건이 이 마을을 통해 진상의 손으로 들어가고
다시 다른 곳에서 생산한 물건이 진상의 손을 거쳐 이곳을 통해 배에 실려
황허를 따라 여러 지방으로 실려갔을 겁니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치과도 있네요.
중국도 다녀보니 아과(牙科)라고 쓴 곳이 무척 많습니다.
아(牙)란 우리에게는 어금니라는 단어인데 치과 중에서도 어금니만
전공한 사람이 하는 곳인가요?
또 오른쪽과 왼쪽의 어금니가 있는데 어느 쪽을 전공했을까요.
위아래도 있군요?
고깃간인 육포입니다.
육포가 있는 골목 입구에서는 생고기를 아침에 가져다 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게 동남아도 물론 중국도 아침에는 이렇게
생고기를 파는 곳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비위생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냉동한 게 아니기에 신선하게
바로 파는 것이 더 맛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치커우를 떠날 시간입니다.
여행에서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런 곳은 며칠 쉬며
주변 마을까지 천천히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8시에 배낭을 둘러매고 버스를 탑니다.
오늘 우리 부부가 갈 곳은 핑야오 고성입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떠날 때면 언제나 서운하고 아쉽습니다.
우리 부부가 일찍 서두르는 이유는 오늘 목적지인 핑야오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리스에서 온 젊은이에게 얻은 정보로는 핑야오로 가는 버스는
리스에서 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 정보가 없었다면 타이위안으로 한참을 다시 나갈 뻔했네요.
그러면 시간마저 엄청 많이 걸렸겠지요?
이제 엄청난 황토고원을 지나게 됩니다.
오늘 리스로 가는 버스는 어제 왔던 길이 아니라 중간으로 바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장관입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길도 지나가 봅니다.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오늘 날씨가 짙은 안개로 말미암아 황토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을 사진이라 선명하지도 않고요.
지금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황토 고원입니다.
아쉬운 것은 차를 세워 멋진 황토 계곡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아래로는 아슬아슬한 깊은 계곡이 있는 칼날 능선을 버스가 지나기도 합니다.
돌이 아니라 황토이기에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혹시 이 근처를 지나실 경우가 있다면 이 길로 달려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작은 짝퉁 그랜드 캐니언~
정말 오랜 세월 북서쪽으로부터 날아온 황사가 이 지역을 이렇게
황토 고원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황토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지만 100m도 더 되는 곳도 있답니다.
약한 부분은 서서히 쓸려 내려가며 이 고원에는 골짜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그 황토 속을 숟가락 하나로 파고 들어가 살았나 봅니다.
여기저기 만산홍엽
누가 여기다 이렇게 물감을 뿌렸는가?
머나먼 길 찾아가도 반길 이 없겠지만,
오늘도 나그네는 고단한 길 찾아 나서네....
바람 불면 바람 불어 좋고
햇볕이 내리쬐면 햇볕이 좋습니다.
오늘같이 구름 낀 날은 구름이 끼어 좋고
비라도 내린다면 시름까지 씻어주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가면, 함께 갈 수 있어 좋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은 호젓해서 좋습니다.
부부 둘만이 떠나는 여행은 여보 당신이 함께하기에 그대로가 좋습니다.
여행길은
그냥 이렇게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게 좋아
떠난 길이 아니었나요?
그냥 길이 좋아 세상이 모두 좋습니다.
세상은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지만,
사람은 같은 세상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세상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던가요?
우리가 늘 세상을 향해 투덜거리며 살잖아요. 그쵸?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욕심이 있다는 말일 겁니다.
그래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지니고 사는 겁니다.
비록 험한 세상이라 많은 사람이 말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도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서로 마주 보고 미소라도 지을 수 있다면 세상이 모두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여행 이야기를 읽고 빙그레 미소 지을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잖아요.
여보야~
우리 이렇게 남은 세월 둘이 함께 걸어가자~
난 당신을 위해 언제나 미소 지을 준비가 되어있거든~
난 당신의 든든한 응원군이잖아~
당신은 내 후원군이고...
자갈길을 걷더라도 손을 잡아 체온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갈길은 융단을 깔아놓은 길처럼 편안한 길이 될 것입니다.
나이 든 부부란 두 사람이 지금까지 만든 길로 걷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는 자갈밭을 만들어 놓았고 어떤 이는 진흙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힘을 모아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면,
지금은 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는 자갈밭을 만들고 꽃길이기를 바라고 누구는 평생 동안 진흙길을 만들어 놓고
지금에서야 꽃이 피지 않는 척박한 길이라 투덜거립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길입니다.
손을 잡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만 있어도 행복입니다.
행복은 손끝으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함께 여행한다는 일은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다시 한번 미소 짓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월이 흘러간다고 어디 세월이 덧없는 것이런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측하기 어려우니 그게 바로 덧없는 게지요.
아무리 짙은 물안개가 끼었더라도 사실 바람 한번 불고 나면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 아닐까?
여보!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거야.
그래도 그런 덧없는 삶 중에 우리가 이렇게 함께 걸어간다는 일은 행복한 일이거든~
동행...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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