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8.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부락산(富樂山)은 미엔양시내의 유명관광지로 촉한 삼국문화관광의
중요한 곳이라 해야 할 겁니다.
부락산은 대형원림공원으로 공원 내에 있는 부락당에는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올 때
서천의 수장인 유장이 유비를 위해 무수한 날을 날밤 새우며
성대한 연회를 베푼 장면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100일 동안이라고 했던가요?
정말 오랜 시간을 '부어라 마셔라' 했나 봅니다.
바로 그런 곳이 여기 부락산의 부락당이라는 곳입니다.
여기는 유비의 꿈이 실현되는 꿈의 도시 미엔양입니다.
누구에게는 꿈이 실현되는 일이지만, 반대로 또 다른 사람에는 꿈이 좌절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상대가 불행해지는 만큼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뿐만 아니라 삼국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조각으로 또는 그림으로 만들어
도원결의부터 시작하여 유비가 서천을 근거지로 해서 삼국정립의 국면을
형성하기까지의 수많은 이야기를 재연해 놓았습니다.
원래 이런 곳에 남은 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이야기 속에만 남은 그런 곳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부락산 위에 있는 부락각은 무한의 황학루와 비견할 정도로 유명한 누각이라 하네요.
물론 여기서만 하는 소리겠지만...
만약, 황학루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어쩌겠어요?
이제 하나씩 구경하려고 합니다.
산 위로 오르는 길에 거대한 석벽을 만들고 거기에 당시의 일화를 새겨놓았습니다.
바로 유비가 군사를 이끌고 촉의 땅에 처음 군진을 꾸민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제일 가운데 크게 만든 모습부터 구경합니다.
아래는 완전히 니나노 판이 벌어졌고 위에는 두 사내가 마주 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부성회라는 것으로 항우가 유방을 초대한 홍문연과 비교되는 연회라 합니다.
그 홍문연이라는 연회가 단순히 먹고 마시기 위한 일이 아니었잖아요.
정적을 살해하기 위한 암수가 있는 연회가 아니겠어요?
유장은 지금의 청두인 익주에 있다가 유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이리로 달려와
웰컴 파티를 100일간이나 열어준 곳이 바로 여기라 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좋은 인연으로 만나 악연으로 끝을 내는 슬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엇이 이들 종친을 원수로 만들었을까요?
누구의 잘못일까요?
미엔양은 유장에게는 멘붕을 만든 곳입니다.
여우 피하려고 호랑이 끌어들였으니까요.
누구를 탓하시렵니까?
모두가 내탓인 것을...
천하에 인의로 널리 이름을 떨친 유비가 종친의 땅에 들어와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는 연습을 해 성공한 곳이 바로 여기라네요.
잠시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장송은 한중의 장로가 서천을 넘본다는 소문에 조조에 지원을 요청하려고 갔지만,
조조에게 퇴짜만 맞았나요?
젠장, 곤장까지 맞고 돌아오는 길에 유비가 있다는 징저우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려
유비를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장송은 대번에 유비의 됨됨이를 알아보았다네요.
원래 자기에 잘해주면 그 상대가 훌륭한 사람임이 이때도 증명이 됩니다.
이 말은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보다 유비의 사람됨이 뛰어나다는 말이고
유비가 서천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물론, 이 또한 작가가 유비 영웅화 작업의 일환일 겁니다.
사람에 도취한 장송은 보물과 같은 지금의 구글지도보다 더 정확한
사천지리도(四川地利圖)와 익주를 취할 방도까지 알려줍니다.
나라를 구하러 보낸 장송이 지금 나라를 절단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도 속에는 도로는 물론 마을이나 군사가 주둔한 곳과 인구숫자는 물론
특산물까지 자세히 기록한 특급 문서입니다.
나중에 익주로 돌아온 장송은 한중 장로(張魯)의 세력이 서천을 넘보지 못하도록
유비의 도움을 받자고 유장을 설득하여 유비가 서천에 주둔할 수 있도록
허락까지 받아 냅니다.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나라를 구하러 갔다온 장송이 나라를 유비에 넘기려는 수작이 아니겠어요?
장송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뒤 유비는 처음에는 서천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는 일에 망설입니다.
물론, 말로만이겠지만요.
종친인 유장을 치는 것은 여태껏 인의를 중시한 자신의 전략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그놈의 인의...
말은 인의를 들먹이지만, 행동은 아니잖아요?
말을 그렇게 하지만, 유비가 장송의 간절한 부탁으로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처음 서천 땅에 발을 디밉니다.
그때가 건안 16년으로 221년이었을 겁니다.
오랜 행군으로 모든 군사가 지쳤죠.
옆에서 지켜보는 佳人 또한 지쳤으니까요.
바로 한중의 장로와 싸우기보다는 우선 군사의 휴식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여기다 군사를 주둔시키고 유장은 서천의 군사와 군량을 유비에게 보태게 됩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군사적으로 허약한 서천은 산전수전 다 겪은
유비의 군사에 날개를 달아준 셈입니다.
유비가 이끌고 이곳으로 온 군사는 그야말로 싸움의 달인들입니다.
지금까지 전투 한 번 하지 않고 지냈던 유장의 군사는 눈만 크게 떠도
오줌 지릴 정도의 순한 군사들이죠.
뭐 예비군도 아닌 민방위 수준의 군사력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반면 유비는 그동안 조조와 싸우고 손권과 싸운 역전의 용사가 바로
유비가 이끌고 들어온 군사들입니다.
피곤한 군사와 유비를 위해 유장은 바로 이곳에서 거대한 연회를 베풀게 되었다네요.
이제 유장은 먼 행군에 지친 유비와 그 군사를 위로한다고 대규모 연회를
배플게 되고 이때 장송은 법정에게 유비와 그의 군사 방통(龐統)에 이야기하여
곧바로 여기서 유장을 치라고 알립니다.
바로 부성의 연회자리에서 말입니다.
홍문연에서 항우가 유방을 초청해 죽이려 했던 것을 이번에는
초대받은 자가 오히려 주최자를 죽이려 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이런 기회가 오는 게 아니지요.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유비는 "이는 중대한 일이므로 서둘러서는 안 되오.
게다가 난 유장과는 같은 종친으로 후세에 명예롭지 못한 사건을
만들고 싶지는 않소!"라고 말했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유비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속마음과 다른 말과 표정 말입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뒤에 칼을 숨기고 손을 뻗어
손잡이에 칼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바로 위연입니다.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유장의 멱을 따려고 말입니다.
가운데는 황충으로 보이고 왼쪽은 바로 방통일 겁니다.
위연은 후에 북벌과정에서 공명과 사사건건 대립하다 공명이 오장원에서 죽은 후
퇴각하는 과정에 모반을 꾀하다 한중의 고호두교에서 마대의 칼을 받고
그자리에서 죽은 비운의 장수죠.
다시 방통이 답답한 마음에 나서서 유비에게 재촉합니다.
"주군! 결심하시지요. 지금 이 연회를 이용해 유장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병사를 쓰는 수고로움이 없이 가만히 앉아서 서천을 먹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 군사를 끌고 들어온 이유가 한중의 장로를 막기 위함은 아니었잖아요?
얼마나 많은 병사의 죽음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결국, 하늘이 내린 기재였던 방통의 죽음까지 보고 난 후에 하시렵니까?
그러나 결론적으로 유비는 자기의 명분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버린 후에야 결심합니다.
이렇게 역사란 많은 사람의 피를 먹고 자라는가 봅니다.
답답한 유비가 말합니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은혜나 신의를 아직 보이지 못했으니
그렇게 할 수 없소. 그것은 안 되오."
사실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으면 유장이 나라를 통째로 유비에게 바친답니까?
그러나 유비의 이 말은 처음이라 그렇고 시간을 두고 뜸 들인 후 먹자는 말이 아닌가요?
결국은 먹겠지만, 시간을 보자는 말이겠지요?
전쟁을 치를 때 적을 향해 공격하며 언제 그곳 주민이 열렬히 환영해줄거라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결국 방통의 건의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가장 적은 수고로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유비의 알량한 명분 때문에...
이미 유비의 군사가 형주를 떠날 때 동오의 손권은 유비가 무슨 생각으로 가는지 알고
비열한 놈이라고 욕까지 했는데 유비는 끝까지 자존심과 명분 타령으로
나중에 큰 수업료를 내게 되지요.
이게 부성회의 전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 동오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벌써 유비의 행동을 꾸짖는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그리고 유비가 서천을 취한 후 형주를 돌려준다고 했고요.
유방과 항우의 홍문연을 이야기할 때 늘 함께 나오는 게 부성의 연회라지요?
유비가 이곳에 군사를 끌고 들어오기 위해 꾸민 연극은 아카데미상 각본상과 작품상에다가
남우주연상과 조연상까지 모두 타고도 남을 인류 최고의 연기였죠.
처음 장송을 만나 오기 싫다고 하며 오히려 장송이 바닥에 엎드려 빌게 하고
장송의 친구인 누가 와서도 그랬지요.
"가기 싫은데... 정말 가기 싫은데~"를 연발하며 말입니다.
유비는 여기에서 3박 4일동안 장송 곁에 붙어 접대하며 나중에 부인이 유비를 찾으며
화를 낸다고 하며 일부러 심부름을 와 부인이 화를 낸다는 말도 하게 하고 장송에는
이 형주 땅이 처갓집 손권의 땅인데 손권의 동생인 손부인인 마누라 눈치나 보며 산다고 유비는
눈물 찔끔거리는 대목에서는 대상을 주어도 남을 그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맞아요.
처가살이만큼 눈치 보이는 게 없기는 하지요,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장송이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라 하면 종친이라 그럴 수 없다고 빼고...
뭐... 원래 유비가 가장 잘하는 게 우는 것이라 천하가 인정하기는 하더군요.
이런 사상 최대의 이벤트를 한 결과 서천에서 오히려 유비의 군사를
제발 들어오게끔 사정하게 만들지요.
그래도 유장에는 믿음을 주기 위해 유명한 관우, 장비, 제갈량도 모두 남겨두고 군사로는
방통과 장수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황충과 위연만 데리고 옵니다.
이 얼마나 깜찍한 쇼맨십입니까?
佳人은 이 대목에서 유비의 인간성까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명이 시킨대로였겠지만...
그런데 유비의 군사는 일당백을 능가하는 천하의 싸움꾼들이 맞잖아요.
그런데 관우나 장비, 조자룡, 그리고 공명까지 남겨놓고 이곳 서천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왔다는 말은 천하가 인정하는 메이저급은 제외하고 마이너로만
출전했다는 말이 아닌가요?
이 얼마나 깜찍한 짓입니까?
천하가 아는 주전급은 벤치에 쉬라 하고 후보 선수만 데리고 출전하는 유비 말입니다.
이렇게 깜찍하고 잘 짜인 완벽한 각본대로 유비는 희망의 땅 서천에 드디어 발을 담금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여기 부락산이었기에 그래서 이곳은 삼분 천하의 꿈이 시작된 곳이라 하더군요.
유장!
당신 유비에 당했어요~
걔들 프리미어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예요.
전문 타짜란 말입니다.
그러니 서천의 조기 축구회 출신인 당신 부하와 싸우면 상대도 되지 않아요.
걔들 중 후보와 유장 간판 주전과 붙어도 이기지 못해요.
여기서 유장을 연회장소에서 죽이려고 위연이 칼춤 추며 쇼를 한 곳도 바로 여기지요.
그 의도를 간파한 유장의 장수도 나와 칼춤은 혼자 추기보다 함께 추어야 한다고
사내들끼리 칼을 들고 생쇼를 한곳이 바로 여기가 맞나 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연회자리에 앉은 위연이 손을 뒤로 돌려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칼을 잡고 기회만 노리고 있지 않나요?
이때까지만 해도 위연은 유비를 섬기는 충신이었지요.
그러나 유비의 질책으로 유장을 살해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조금 더 리얼하게 보렵니다.
위의 사진은 검무를 추는 위연입니다.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 벌처럼 쏘려고 했을까요?
그날 방통은 위연을 시켜 유장을 죽이면 힘들이지 않고 서천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했지만, 유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신의를 깨고 익주에 입성한 그였지만 이튿날 이곳에서는 또다시 잔치가 벌어져
유장과 유비가 자리를 같이 합니다.
긴 술자리가 이어지고 취흥이 감돌 때 방통은 위연으로 하여금
검무를 추다가 유장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위연이 칼춤을 추자 유장의 장수 장임이 이를 눈치채고 칼춤은 함께 추어야 제맛이라고
상대를 자청해 두 사내가 칼춤을 추지요.
이런 모습을 본 유비가 호통을 쳐 당장 칼춤을 중단시키며
더는 이 계획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네요.
그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납니다.
술을 마시다가 사내들이 나와 칼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형제가 만나서 즐겁게 마시는데 의심할 만한 일은 조금도 없어야 하니.
홍문의 연회도 아닌데 어찌하여 칼춤을 추는 것이냐?
칼을 내려놓지 않는 자는 당장 목을 치겠다.”라고 했다네요.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는 엄청 고민했을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둘까? 아니면 제지할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언제까지 가릴 수 있겠어요.
유장은 서천을 차지하려고 온 것도 모른 채 신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를 몸소
영접하고 유비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유장이 무능했다고 유비의 서천 정벌을 합리화했지만,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고
작가의 마음이지요.
애초부터 천하 삼분 운운하며 말을 맞춘 느낌입니다.
그러나 유비가 익주를 포위했을 때 말입니다.
성 안에는 3만 명의 정예병과 1년분의 식량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관민들은 목숨을 걸고 유비에 대항해 싸울 생각이었지만 유장이 백성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며 항복을 결심했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신하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기록될 정도로 유장은 인망이 두터웠답니다.
어느 게 정의고 어느 게 불의입니까?
이때가 214년이었을 겁니다.
이런 유장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유비가 서천을 날로 삼키는 것이 역사적 사명이고
하늘의 뜻인 양 포장한 삼국지의 작가는 열렬한 유비의 스토커인가요?
佳人은 이런 엉뚱한 생각으로 혼자 여행 중입니다.
그때 그자리에서 마치 본 것처럼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대의명분을 앞세운 유비와 그를 둘러싸고 책사 방통이 유비에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일.
유장과 유비 세력 간에 불꽃 튀는 머리싸움, 계략과 배신 그리고 음모가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여기 부락산이 아닐까요?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되어 과대 포장되기 마련이고
패자는 멍청하고 무능하게 기록된다 하더라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승자만의 이야기만 남고 패자는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가요?
그게 역사의 기록인가 봅니다.
하물며 이것은 소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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