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이꿍(재궁:齎宮)

2012. 1. 7.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제천 의식은 중국에서는 황제의 주요한 일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실 황제란 늘 궁 안에서만 대장이기에 무슨 할 일이 많았겠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중국 황제의 3대 놀이는 酒, 色 그리고 사냥할 엽(獵)이라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나라를 위하고 민초를 생각한답시고 산책을 겸해 궁을 벗어나 추수 감사제도 올리고

하다 보면 순진무구한 백성은 황제가 우리를 위해 힘들고 바쁜 가운데 하늘에 빌어주는구나~ 하며 좋아하지요.

국가의 큰 이벤트성 행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민초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는 의식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에게 빠떼루 벌칙은 오늘 생략하겠습니다.

 

황제가 제천의식을 행하는 일은 그 역사도 오래되었겠지요?

유방의 한나라 이후 모든 황제의 레퍼토리가 되었잖아요.

그해 수확한 곡식을 모아 하늘에 바치며 감사를 표하고 다음 해에도 풍년을 기원하였습니다.

사실 힘들게 고생하며 농사지은 민초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데 말입니다.

 

그런다고 매년 풍년이 들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늘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 황제는 하늘과 줄이 닿았다고 보여주어야 하

는 순전히 이벤트성 행사인 셈이죠.

거기에 민초는 뻑 하고 가버려 천세 천세 천천세를 부른 게지요.

 

그래도 어리석은 민초를 위해 허리라도 굽히고 머리라도 조아리는 황제가 대견하기는 하죠.

그게 민초를 위한 일이었는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때요?

오늘 잘했다고 황제 궁둥이 한 툭 쳐주고 갈까요?

 

천단에서 올리는 천제(天祭)는 삼맹(三孟)이라고 하여 일 년에 세 번 이루어졌다네요.

맹춘(孟春)이라는 정월 상제일에 기곡제(祈穀祭)가 있고 맹하(孟夏)라고 하지에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맹동(孟冬)인 동지에 기천제(祈天祭)가 그것입니다.

금년도 풍년을 기원하고 비도 적당히 내려 나라가 행복해지면 가을에 하늘을 우러러 떡 하나라도 먹게 하지요.

 

좋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백성이야 배부르고 등 따스면 되는 일이 아니겠어요?

이곳은 중국에서도 가장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은 제단입니다.

 

그야 황제가 제사 지내던 곳이니까요.

부지가 천안문 광장의 6.8배나 되고 자금성의 3배나 된답니다.

이 정도면 하늘의 아들이라는 황제가 아버지를 향해 제사 올리는 곳으로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여기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단계교를 지나 기년전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황궁우에서 왼쪽으로 가면 짜이꿍(재궁:齎宮)이라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가렵니다.

이런 곳에 와 복잡한 것도 중요하지만, 산책할 수 있는 이런 곳도 좋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짜이궁은 황제가 제사를 지내기 3일 전부터 숙식을 하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던 장소입니다.

이 기간에 황제는 육식도 금하고 철저하게 금욕생활을 합니다.

그동안 기름진 음식으로 건강상 성인병 수준에 접어들었으니 3일 정도는 관리해주어야지요.

 

그래도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황제 궁둥이 또 한 번 두드려줍시다.

무량전이 황제의 침실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전각이지만, 안을 보면 대들보가 없는 아치형의

우아한 천장이 있는 독특한 건물이라 합니다.

 

그런데 佳人도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할까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제지합니다.

우리 부부는 통표를 샀기에 당연히 천단 안에는 모두 들어가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재궁은 별도로 또 문표를 사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젠장, 통표의 의미가 뭡니까?

세종대왕께는 비밀로 해야 합니다.

만약, 통표도 끊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뭐라고 했을까요?

"G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하지 않겠어요?

 

황제가 기거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황금색 유리기와가 아니고 청남색 유리기와로 덮었습니다.

아무리 황제라도 하늘의 신을 모시는 장소에서 건방지게 황금색 지붕으로 폼 잡으면 안 되겠지요?

황제도 가끔 이렇게 겸손을 떨며 귀여운 짓을 하기도 합니다.

건물도 나지막하고...

그러나 짜이궁 밖으로는 해자를 파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했네요.

 

전각 앞에 설치된 발코니에는 좌우로 각각 1개의 석정(石亭)이 있는데

좌측에는 뻬이팅(碑亭)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우측은 재계(齋戒)용으로 쓰인 동인(銅人)이라네요.

이곳은 황제가 쉬면서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라 무척 삼엄한 경비가 있었을 것이기에 소황궁이라고도 불렀답니다.

 

재궁의 남서쪽에 있는 신락서는 황제가 제사를 올릴 때 음악을 담당하던 곳입니다.

청나라 때는 국립 음악학교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곳으로 전성기 때에는 3.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했으며 제천의식에 동원되기도 했다는군요.

지금은 안에 궁중음악용 악기가 전시되어 있답니다.

 

지금까지 둘러본 곳은 남문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중심선에서 왼편으로 조금 빗겨 난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 황궁우를 보시고 왼쪽으로 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삼좌문이라고 보이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재궁이 보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숲이 우거져 산책하기에는 무척 판타스틱한 곳이지요.

저는 왜 갔느냐고요?

그냥 걷고 싶어 걸었습니다.

 

이제 걸음을 옮겨 다시 가운데 중앙선으로 들어섭니다.

황궁우 뒤로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문을 성정문이라 한다는군요.

 

그런데 그 문에는 세 개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금성의 정문이 오문에도 세 개의 문을 보았습니다.

가운데는 황제 전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조금 다르다고 하는군요.

물론, 지금은 관광객 전용이지만...

 

어디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 볼까요?

지금 우리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발칙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문을 들어서면 북쪽으로는 위의 사진처럼 곧바로 시원하게 뻗은 대리석 길이 나타납니다.

이른 딴비치아오(丹陛橋 : 단폐교) 또는 하이만따따오(海墁大道 : 해만대도) 라 부른다는군요.

여기서 다리라는 橋를 사용한 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조금씩 올라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합니다.

이 길의 중앙은 신도(神道)라 한 것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의 천제가 지나는 길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곳만큼은 황제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없고 그 옆인 좌측에 만든 어도(御道)를 따라 걸어야 했으며

우측은 왕도(王道)라 하여 황제를 제외한 종친들과 제사에 배석하는 신료들이 사용한 길이랍니다.

지금 佳人이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자리는 바로 하늘님이 제삿밥을 얻어 자시려 드나들던 전용길입니다.

제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봅니다.

 

보세요.

우리가 지금 걸어 들어온 길은 감히 하늘님과 맞짱 뜨는 발칙한 일이었습니다.

감히 황제도 하지 않았던 그런 일이었습니다.

세상이 천지개벽을 하니 신도라는 천상의 길을 걸어 들어왔습니다.

내일은 장랑과 칠성석을 찾아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람은 자기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지 않고 늘 결과가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인데

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지금까지 佳人은 꿈을 이루려고 꿈만 꾸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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