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렀지만, 옛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2011. 4. 27. 00:40중국 여행기/광동,광서,귀주성 배낭여행

위의 사진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시루떡처럼 보이지 않으시나요?

송, 원 시기의 노면이라는 명패만 없다면, 누가 이 사진을 보고 도로라고 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한 장이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전문 작가의 한 줄 짧은 글이 사진첩 한 권보다 더 크게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일은 전문가의 몫입니다.

佳人은 그냥 중얼거리며 다녔고 괴발개발 그리며 다녔습니다.

한 권의 책보다 더... 그리고 사진첩보다도 더 많은 사진을 올렸지만, 오히려 더 궁금증만 유발했고

횡설수설만 하다가 이제 거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는 천 년 전에 만든 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곳입니다.

지금의 도로보다 깊은 곳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공사하는 도중 발견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선 북경로라고 하는 베이징루로 걸어봅니다.

이 유적이 있는 곳은 베이징루(北京路)라는 거리입니다.

위의 지도를 참고하시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위에는 유리로 덮어놓아 사진 찍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천 년도 더 넘은 송나라 시대의 도로라는군요.

 

사진이 선명하지 못합니다.

유리 때문에...

 

명나라 시기에 만든 도로도 남아 있습니다.

 

돌을 가지런히 바닥에 묻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예전에 만든 도로 위에 다시 만들어 놓았나 봅니다.

 

천 년이나 지났어도 돌은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줍니다.

천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무 방망이로 두드리며 도로포장을 하던 장인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이건 마치 벌통을 열어보는 듯하군요.

 

도로를 만들던 장인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만든 도로는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남아 있습니다.

물샐틈없이 촘촘히 돌을 박아 만든 포장도로입니다.

 

2002년 여름 지금 이 자리인 베이징루 보행가에 元, 明, 淸代에 만든 도로가 발견되었다 합니다.

정말 대단한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도로가 아니고 고루(古樓) 자리입니다.

 

고루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여기도 유적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로 덮어놓았습니다.

 

도로 입구에 만들어 놓은 누각의 자리였나 봅니다.

 

누각 아래의 도로였던 자리였나 봅니다.

 

돌로 주춧돌을 만들고 그 사이에 홈을 파고 돌기둥을 세워 문을 만들었나요?

 

베이징루에서 구경을 마친 후 골목 안에 있는 식당가로 들어가 식사를 합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라 잔치를 알리는 광고판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베이징루를 나와 진 씨 서원으로 갑니다.

골목길이 보이기에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무척 오래된 집이 많이 있습니다.

광주서원문화가라는 곳이 나오는군요.

 

이 지역이 예전에 책방과 문방사우도 팔고....

아마도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보아 淸代의 모습인 듯합니다.

이 골목의 담장에는 이런 옛 풍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끝날 때쯤에는

이건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사전에 자신의 여행 준비가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니 지나고 나서... 

이건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이 부족하고 생각이 깊지 못해 생긴 일인 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참을성이 부족하여 서둘러서 생긴 일인 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조금만 더 도와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고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내기 이해심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살다 보니 지나고 나서...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낸 다음에야 참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의 수양이 부족해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같은 잘못을 자꾸만 반복하고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후회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아직도 옛 생각과 행동을 고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미 소리 요란하게 울고 난 다음에야 여름이 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흰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한 다음에야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먹구름이 몰려 오고 소낙비가 쏟아진 다음에야 비가 오는 걸 눈치채고

바람이 불고 난 다음에야 줄기와 뿌리가 약해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행도 끝나봐야 이건 이렇게 했으면 하는 후회를 합니다.

그것은 미리 사전에 준비가 소홀했고 편한 방법만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다 보니 佳人은 늘 지난 후에야 알게 됩니다.

 

그러나 佳人의 사진은 혼자만의 눈으로 본 것이고

이야기도 혼자만의 느낌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쓴 글과 찍은 사진을 보시고 읽으시는 분에게 오히려 궁금증만 남길 수 있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침묵이 때로는 더 큰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佳人은 아직 침묵조차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佳人의 여행은 계속되며 이야기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행 이야기가 저 자신을 위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이 계신다면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지난달 10월 21일 처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곳 광저우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무척 혼잡스럽고 정신이 없어 바로 그날 저녁 난닝으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오늘 34일 만에 도착해 광저우를 보는 순간 다른 도시가 되었습니다.

 

기차역을 나오는 데 삐끼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는 무척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입니다.

물론, 아시안 게임 때문이겠지만, 중국도 하면 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화장실이 무료입니다.

이 일은 중국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대 사건입니다.

 

수천 년간 이어온 유료화장실의 전통이 아시안 게임으로 광저우에서 무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마오 아찌도 5마오만 받으라고 이미 전국적으로 통일시켰지만,

덩 아찌는 아시안 게임 동안 받지 말라고 했나 봅니다.

 

내일은 진서방네 사당과 서원이 있는 곳을 찾아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월이 흘러 도로나 고루를 만든 사람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 만든 듯 남아 있습니다.

이런 유적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옛사람이 나무 방망이를 두드리며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장단을 맞추며 흥겹게 콧노래도 불러가며 서로 줄을 맞추며 만들었을 겁니다.

저녁에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 동료와 함께 연장을 챙겨 주막에 들러 주모 손이라도 한 번

슬쩍 잡아보며 새로 대처에서 데려왔다는 처녀를 곁눈질로 흘금거리며 탁배기 한 잔 걸치면

덜수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