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은 모두 그립고 아름답습니다.

2010. 12. 2. 00:15중국 여행기/광동,광서,귀주성 배낭여행

이제 입구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을 보았으니 왼편으로 하트를 그릴 예정입니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양메이 마을...

천 년 전에 돌로 모든 골목길을 깔았으며 淸代, 明代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 있고 도로가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우띠에탕(오첩당:五疊堂)주점으로 200년 이상 된 청대의 호텔입니다.

오첩당이란 들어가는 문이 다섯 겹으로 되었기에 그리 불렀답니다.

주인이 정직하고 근면성실하여 손님에게 제공한 발효콩이 검고 매우 훌륭했기에

점차 전국적으로 그의 명성이 알려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양메이의 시큼한 채소인

쑤안 차이와 더불어 발효콩이 지역 특산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합니다.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지금도 이 호텔을 찾아와 아름다운 건축 양식에 감탄하고

옛 음식을 즐긴다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佳人에게는 그냥 그런 집으로 보였습니다.

佳人이 시인이 아니고 작가가 아니라서 그럴까요?

 

세상을 살아가며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나 점차 여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말입니다.

젊은 시절 누구나 열심히 살아왔고 누구나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노년에는 좀 더 여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 여유로워야 할 시기에 佳人은 또 바쁘게 여행길에 나섭니다.

마음의 여유를 얻고자 떠나는 여행길에

여행 계획을 하며 준비해야 할 게 뭐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집도 문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제일 바깥 문 위에는 화조도며 수묵화로 한껏 멋을 냈습니다.

 

어디를 갈 것인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갈 것인가, 먹고 자는 문제 등등

게다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기에 머리는 복잡해집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같은 문이 또 있습니다.

데자뷔...

그래서 들어가는 문은 생략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생각만 버리면

바쁜 여행도 아주 느긋하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훌쩍 떠날까?"라고 했지만 결국 여행이란 또 佳人에 숙제를 주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행을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일로 결국, 佳人의 여행이란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게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다섯 개 문을 통과하고 만나는 제일 안쪽입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며 돌아왔을 때 얼마나 많이 얻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버리고 오느냐입니다.

비워서 더 여유로워지는 삶

 

그게 바로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佳人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는 미움과 탐욕을 지우개로 여유로운 삶을 위해

모두 지워버려야겠습니다.

Delete 키로 한 번에 지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친구와 함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분위기에 빠져 佳人은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지금도 이 집은 식당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숙소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이제 비워버린 그 빈 마음에 佳人은 무엇으로 채우고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은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아무리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하며 노래 불러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경제적으로 내세울 게 없으면 요즈음에는 자식조차 찾지 않습니다.

아들아~ 이 말은 아빠가 꼭 너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란다.

 

어느 아비는 자식에 세계적인 큰 회사를 물려주고 또 어느 아비는 그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나라를 자식에게 상속하는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아비도 있더군요.

정말 잘 난 부모를 둔 아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와 명예, 권력마저 모두 구름 같은 존재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백골마저 흙이 되어 사라집니다.

 

지금의 양메이 꾸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비우고 비우고 모두 비웠습니다.

너무 많이 비워 더 이상 비울 게 없는 마을로 보입니다.

옛날에는 마을 동산이 금잔디였고 집집이 금송아지 몇 마리 정도는

두고 살았더라도 배는 지금 고픕니다.

이곳은 입장료조차도 다른 곳에 비하여 무척 저렴합니다.

 

사람은 꿈만 먹고살 수는 없습니다.

꿈은 미래의 보상이지 지금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도 출출하여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지고 다니는 음식을 사서 먹습니다.

 

주앤통펀(권통분:卷筒粉)이라는 음식입니다.

쌀가루로 전병처럼 야채를 말아 통처럼 만들었다는 의미인 모양으로 음식 이름을

수첩에 적어달라고 하여 알았습니다.

현지인에게는 2개 1.5원인데 우리에게는 2개 2원에 팔더군요.

울 마눌님이 현지인이 치르는 가격을 유심히 살폈답니다.

 

아마도 이 여인네...

주앤통펀 팔고 음식 이름을 수첩에 적어준 일이 난생처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글자를 아는 여인이라...

우리 부부는 앞으로 많은 날, 길을 걷다가 이런 식의 글을 적어달라고 했을 때

글을 몰라 미안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중국에서는 함부로 글로 써달라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중국어는 중국사람도 어려워하더군요.

글을 아는 사람도 틀려서 고쳐쓰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 부부는 길을 가다가 의문이 생기고 알고 싶으면 무조건

수첩을 들이밀고 적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알아야 속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의 고성은 관광객 유치에 성공하여 내외국인이 미어터져라 밀어닥치지만 

이곳은 그냥 파리만 날립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여행자에는 이런 곳이 더 호젓하고 번잡하지 않아 좋습니다.

그냥 거닐며 옛날을 상상하고 대화하면 되는 곳입니다.

이런 곳이 바로 탐욕과 미움을 버린 비움의 여행지입니다.

"너희가 양메이의 옛 영화를 아느냐!"라고 도자기로 구운 창문으로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보아야 만족하고 체험해야 즐겁다는 생각만 버리면 이런 곳도 여행 중에는 좋은 곳입니다.

이런 곳이라면 강변을 거닐고 오래된 마을 골목을 누비며 콧노래라도 부르며 걷고 싶습니다.

지금의 양메이는 인구 3.500명의 작고 한적한 강가 마을입니다.

한때 상업의 중심지였고, 강물을 따라 이어진 뱃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습니다.

문명과 문명, 사랑과 사랑, 물자와 물자를 이어주던 사람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마을을 돌다 보면 여행자에게 지난날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골목길마다 끈적이리만큼 땀 냄새가 배어 있고 모퉁이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대문 문지방을 건너다닌 사랑이야기가 있고 안방마다 이야기가 들립니다.

佳人의 여행이란 이렇게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옛 모습을 상상하며 다닐 수 있어 좋습니다.

그것은 책이나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명나라 때 배낭여행으로 이름을 떨친 쉬샤커(서하객:徐霞客)라는 사람...

왜 이곳에도 오지 않았겠습니까?

난닝에서 물 좋은 곳을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삐끼에 이끌려 배를 타고 양메이 마을을 지나며

멋진 풍광에 반해 "뷰티풀이니 원더풀!"이니 하며 풀만 쑤다가 갔답니다.

 

그렇습니다.

양메이는 삐끼 말 대로 정말 물 좋은 곳은 맞습니다.

주오지앙(左江), 요우지앙(右江), 산지앙(三江)에 용지앙(邕江)까지 양메이를 완전히 감아 돌아 나갑니다.

지도를 보면 하회마을처럼 물이 마을을 한 번 감싸 안아주고 흘러가니

삐끼의 말 그대로 물 좋은 곳이 틀림없습니다.

 

마을 규모는 아담합니다.

 옛날 이발소에 걸렸던 바로 그런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곳만 아니라 이 지역이 모두 이발소 그림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예전에 흥청거린 무역도시였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청따이 민쥐, 밍따이 민쥐(청, 명대 민거)라는 간판도 보입니다.

이곳은 청, 명대의 마을이 완벽하게 보존된 곳이라고 합니다.

한때 무역의 중심지로서 부유한 상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700여 년 전부터 만들어진

이 지역의 건물들이 그 당시의 부유함을 반영하고 있는데 강가에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던 배들도 보입니다.

 

청나라 일조가(清代一条街 칭따이이탸오지에)는 청나라의 건축물이 꽝시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지붕에는 용과 불사조 모형으로 현란하게 장식이 돼있고 낭창한 처마가 하늘 향해 두 손 벌립니다.

또 어떤 집에는 마치 우리의 치우천왕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집도 있습니다.

 

수백 년 전에 지은 집에서는 지금도 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화려한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놓았고 금방이라도 샤오지에가 부끄러운 듯 문을 살짝 열고

우리 부부를 맞이할 것 같습니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몇 세기를 뛰어넘는 고대의 문화를 거리 구석구석에서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옛날에는 마을의 잔디가 모두 금으로 만든 금잔디였고 사랑이 무르익어 가고

인간 냄새가 풀풀 거린 마을이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집은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며 개방되어 있습니다.

부두 입구에는 쿠웨이성로우(괴성루:魁星樓)라는 서낭당 같은 게 있습니다.

중국에서 사람의 녹적(祿籍)이나 문장(文章)을 맡았다는 신을 괴성이라고 한다지요?

과거를 보는 해 같은 때에는 특히 수험자들이 이를 믿었고 장원급제를 빌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향시에 급제하여 거인(擧人)이라는 칭호를

대문 입구에 붙여놓은 집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아마도 안전한 뱃길을 바랐고 모두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었을 법한 곳입니다. 

지금도 붉은 천조각을 나무에 매달아 소원을 빌었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마을은 원래 공부도 열심히 하였을 것입니다.

과거시험을 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장사를 위해 외국어도 공부했고 상술을 위한

심리학 공부도, 산술도 배워야 했기에 글 읽는 소리가 골목마다 아련히 들렸을 것입니다.

 

내일 양메이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렵니다.

 너무 지루한 글과 많은 사진으로 혼란스럽겠지만,

저는 어느 사진을 여행 이야기에 올려야 하나 고민스럽습니다. 

다다익선이라고 했지만, 과유불급입니다.

많은 사진은 오히려 선택의 문제로 더 어렵습니다.

너무 지루하셨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옛날 마을도 가꾸기 나름입니다.

봉황이나 리지앙, 따리 고성은 관광객들로 미어터집니다.

그러나 이곳 양메이는 무척 한가합니다.

마을 주민도 한가하고 강물도 한가하고 마을에 돌아다니는 강아지조차도 한가합니다.

돌아보는 우리 부부도 아주 한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