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핑에서 보았던 것들...

2011. 3. 5. 23:55중국 여행기/광동,광서,귀주성 배낭여행

기둥에 아주 멋진 용머리가 보입니다.

조각 솜씨가 대단해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최초로 동족이 자리 잡았다는 동족의 마을인 자오싱으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진핑이라는 곳에 하루를 머물렀고

그곳에서 롱리라는 고성을 소개받아 전혀 꾸미지 않은 멋진 고성을 보았습니다.

세월도 비켜갈 것 같은 이 고성도 중국 근대사의 회오리바람이 쓸고 지나갔나 봅니다.

 

롱리 고성에서 출발하는 일에 우리가 선택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롱리에서 고성구경을 하고 연결되는 차편이 리핑뿐이고 2시간이나 마냥 기다렸다가 겨우 버스를 탔습니다.

 

무조건 리핑으로 가는 차편밖에 없었기에 리핑에 도착했습니다.

여행길에서는 이렇게 계획하지 않아도 중간에 계획을 변경하며 다녀야 하는 경우도 생기나 봅니다.

 

리핑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또 담배를 피우기에 피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더니 바로 담배를 끕니다.

이제 중국도 서서히 변해가나 봅니다.

 

기왕 리핑에 도착했으니 시간도 조금 남았기에 리핑에서 하루를 쉬었다 가렵니다.

리핑 터미널의 건물도 지붕을 고루형태로 만들었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건물 지붕이 고루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고루는 동족의 전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리핑은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삐끼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터미널 옆 건물에 九天여관이 보입니다.

3층에 있군요?

일단 울 마눌님이 먼저 올라가 숙소를 보고 1박에 50원 한다는 것을 35원에 하기로 하고 내려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그리고 안고 낑낑거리고 올라갔더니 주숙 등기한다고 여권을 꺼내 보이니 젠장...

와이궈런은 다른 삔관으로 가랍니다.

뭐 여행 초반에 징시라는 도시에서 밤에 쫓겨난 적도 있는데 숙박을 거부한다고 우리 부부가 울 거 같아요?

 

삔관은 당연히 비싸겠죠?

같은 건물에 연도삔관이 보이지만, 그냥 지나치고 그 건물을 돌아드니 많은 초대소가 보입니다.

아직 초대소라는 곳에서는 한 번도 숙박하지 않았기에 한 번 찾아 올라가 봅니다.

 

그 골목 안에 자운 초대소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일단 올라가 보니 무척 넓고 깨끗합니다.

우리 생각에 초대소는 저렴한 가격에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아까처럼 같은 말을 합니다.

왜 외국인은 잘 수 없느냐고 따졌더니 관습이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녔던 일정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많은 날을 잠을 자며 다녔지만,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더니 '커이'라고 합니다.

40원이라기에 깎지도 않고 그냥 우리도 '커이마?'하며 묵기로 합니다.

앞으로 한국사람이 오면 무조건 숙박시켜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야진도 없이, 그리고 주숙등기도 하지 않고 비공식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관습이라는 것도 한 번 깨지기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이곳 리핑에서 구경할 만한 곳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따라오라며 직접 고성까지 안내해 줍니다.

물론 그 부근에 자기 일이 있어 들려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먼저 차오시에 가서 커피 샀던 일과 돼지코 전열관을 먼저 올립니다.

커피는 맛도 우리나라 제품보다 못하고 봉지가 잘 찢어지지도 않고 가격은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

10포에 16원이 넘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은 한국에서 커피를 가져가세요.

 

뜨거운 물을 달라고 했더니 보온 통에 돼지코 전열관을 넣어 주는군요?

그래서 그 전열관을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어보고 차오시에 가서 우리도 돼지코 전열관을

6원(1.000원) 주고 하나 샀습니다.

봉황고성에서는 전기장판을 샀고 이번에는 돼지코 전열기도 샀으니 살림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이제부터 리핑에 있다는 고성거리를 돌아봅니다.

그냥 쉬었다가 아침에 자오싱을 갈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여행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숙소의 남자는 자신이 공산당원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펑여우지만 베이 차오센(북조선)은 귀찮은 존재라고 합니다.

툭하면 쌀 달라, 기름 달라...

그 사내는 남북 긴장상태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혈맹도 자꾸 징징거리면 싫어지나 봅니다.

 

건물 모양이 쩐위엔이라는 곳과 마찬가지로 생겼습니다.

이 마을은 동족이 모여 사는 마을인데 말입니다.

 

쌍정가라는 골목이 있군요?

보나 마나 골목 안에 우물 두 개가 나란히 있겠지요?

동족의 우물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동족과 우물의 관계는 자오싱에서 알아봅니다.

 

맞습니다.

골목 이름만 보아도 그 골목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중국어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기가 쉽군요.

지금은 허드렛물로만 사용하고 집집이 수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예배당이 아닌 복음당입니다.

 

이제 골목 안을 살펴봅니다.

 

여느 고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게 거기에서 거기가 아니겠습니까?

 

리핑 주민의 관습이 장사꾼인 중국인을 옭아맨 이유가 바로 이곳이 중국 공산당 태동의

한 자락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이제 오늘 공산당원이라는 그들 스스로 그런 관습을 타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그중 하나인 공산당원이 관습이라고 외국인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를 하루 묶게 했으며

앞으로 한국인이 오면 우리 부부처럼 저렴한 가격에 하루를 묵어가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뭐하던 곳인가 들어가 볼까요?

무료로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물어보니 "커이~"라고 합니다.

黎平會議會址라는 현판은 진운의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 공산당 태동 때 이곳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인 모양입니다.

 

당시의 조직 서열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주의에 웬 서열입니까?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계급은 더 바꾸기 어려운 계급이 되었습니다.

계급은 또 다른 계급을 낳나 봅니다.

사실 평등이란 능력에 따른 차별이 가장 평등한 게 아닌가요?

줄 세우기 한다고 야단하지만 줄 세우지 않으면 모두 같이 취급해야 하는데 그게 더 혼란스럽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티베탄은 무슨 생각이 들까요.

1959년 노블링카 여름궁전 앞에서의 대학살...

그리고 세상에 토번은 사라지고 말았지요.

 

아닙니다.

지금도 매년 3천여 명의 티베탄이 목숨을 걸고 넘어가는 곳.

동상에 발가락이 문드러지고 국경경비대의 총알에 목숨이 사라지더라도 찾아가는 곳.

티베탄의 샹그릴라는 쭝띠엔이 아니고 다람살라였습니다.

몇 사람의 탐욕으로 수십만 명의 티베탄이 죽었다고 하네요.

 

건물을 사방으로 만들고 집안 한가운데를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게 열어놓았습니다.

아무리 높은 담으로 외부와 격리해 놓았지만, 하늘을 보고 싶은 욕망에 열어두었나 봅니다.

지금은 비록 공산당에서 빼앗아버린 부잣집 건물이었겠지만...

 

무척 잘 지은 사합원 건물입니다.

기둥마다 조각하며 용머리를 만들어 붙여놓았습니다.

이는 주인이 동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동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고루에는 용머리 장식이 기본이니까요.

상인방에 나무로 조각하여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혁명의 역사가 아름다운 게 아니고 그곳에 있던 집의 모양이 예술품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佳人 눈에는 혁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당시의 모습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창틀 하나에서 당시의 주인의 생각을 읽고 그냥 간단히 마무리할 수 있는 곳도

아름답게 만든 그 생각을 읽고 싶을 뿐입니다.

 

회의 많이 하면 회의감만 듭니다.

밥 먹고 회의합시다.

 

마음이 흔들리니 카메라도 따라 흔들립니다.

주덕이 머물던 숙소입니다.

아마도 원주인이 딸이나 부인을 위해 만든 소녀의 공주방으로 꾸몄겠지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내가 여인의

침대에 누워 공주놀이라도 한 모양입니다.

그래 여기서 잠을 자니 아름다운 꿈을 꾸셨습니까?

 

뒤에는 작은 뜰도 만들어 답답한 실내에서의 생활에 여유를 주었습니다.

 

지휘관이 머물던 숙소 뒤에는 나무판자 하나 사이로 이렇게 부관의 침실을 만들어

여차하면 보호할 수 있게 조치했습니다.

그러니 저 판자로 만든 벽을 발길로 걷어차기만 하면 바로 지휘관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잠자리에서도 저리도 불안하게 지냈을까요?

젠장 꿈자리도 매일 밤 뒤숭숭 했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늘도 이 집을 방문합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 집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혁명의 역사를 보고 감탄합니다.

아~ 인간은 한낱 바람이요,

사상은 구름 같은 존재입니다.

또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사상으로 나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니...

 

우리에게도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젊은 마오를 비롯해 신중국의 지도자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편견이란 나만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만의 생각이 모든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살아가지요.

그래서 다툼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리핑...

사람마다 같은 곳, 같은 시간에 방문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살아온 개인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곳을 방문하여 중국 공산당의 태동시기에 관심을 두고 둘러보며 마치 성지순례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겠지요.

 

 

혁명에 관한 글인가요?

아름다운 글입니까?

마오의 글로 마오의 필체를 저렇게 독특하지요.

혁명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도 세월이 지나면 한 자락 바람과 같고 유행가 같아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매한 민초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추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집의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 빛을 발할 것입니다.

 

이런 게 아름답지 않나요?

이 건물의 주인은 무척 멋을 아는 사람인 듯합니다.

나무로 양각으로 조각하여 평면이 아닌 돌출 조각으로 새를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이런 것이 아름답습니다.

佳人의 편견일까요?

왜 佳人의 눈에는 혁명이니 역사적인 현장이니 하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집안 내부를 아름답게 조각한

그런 예술품 같은 것들만 눈에 뜨일까요?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한 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한 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칼라일의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수많은 난관을 겪게 됩니다.

세상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 복잡다단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난관 앞에 주저앉아 포기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난관을 헤쳐나가기도 합니다.

 

같은 난관과 역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불평과 포기를 하기도 하고

극복과 도전의 과제로 생각하여 멋지게 돌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우리들의 삶 속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장애물을 걸림돌로 생각하느냐 디딤돌로 생각하느냐는

오직 나 자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

도전하느냐? 주저앉느냐?

바로 내가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도전을 통하여 나는 더 강해집니다.

여행도 미지의 세상에 대한 도전입니다.

 

걸림돌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그러나 그 걸림돌은 뛰어넘은 자에게는 그것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입니다.

 

여행 중에도 걸림돌이라고 생각되는 일...

그것은 우리가 딛고 넘어가야 할 디딤돌에 불과합니다.

걸림돌이 높으면 더 높게 디딜 수 있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흐미~~ 넘 춥겠다.

이런 모습도 빨리 사진 한 장 찍고 지나쳐야 합니다.

 

리핑 고성의 건물 모양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데 대부분의 건물은 위의 사진처럼 이 층 난간을 밖으로

조금 내어 지으며 아랫부분에 아치형으로 멋있게 마무리했습니다.

이곳 리핑의 목조건물은 대부분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작은 변화를 주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건물을 지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건축 형식입니다.

 

고성 거리는 큰 길이 일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길을 걸어가며 양쪽으로 많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이곳 리핑의 고성의 중심거리를 치아오지에(교가:翹街)라고 하나 봅니다.

교(翹)라는 한자는 발돋움할 교라고도 하고 꼬리 긴 깃털 교라고도 한다는군요.

아마도 이곳에 서서 발돋움하고 고성 거리를 내려다보라는 의미인가요?

패방을 세운 곳이 고성거리 제일 끝에 높은 곳에 세워놓았습니다.

 

어린 소녀의 치마가 아마도 동족의 전통 문양인 듯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머리에 꽃을 매달아 멋을 내나 봅니다.

 

이곳도 마작에 열중한 중국인이 많습니다.

아마도 중국사람은 모두 무릎이 시원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모두 공원에 모여 에어로빅도 추며 다리 운동에 열심인 모양입니다.

 

역시 동족의 마을이라 동족의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곳이 눈에 보입니다.

 

또 우물입니다.

동족의 우물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따징지에(대정가:大井가)라면 글자 그대로 큰 우물 골목이라는 말이겠지요.

아마도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우물이 제법 큰 게 있을 겁니다.

 

함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지리도 모르는 곳에서 어디 마땅히 갈 때도 없잖아요?

여자아이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네요.

 

여기군요?

제법 우물이 큽니다.

이 우물은 아직 동네 아낙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우물가에 왜 작은 사당을 만들어 놓았지요?

우물에도 신이 있어 빌고 싶은 게요?

아마도 처음 마을을 시작할 때 조상님이 모신 신이 아닐까요?

 

제법 물이 많습니다.

우물이 깊지 않고 그냥 바가지로 퍼낼 수 있군요?

 

다시 골목을 빠져나옵니다.

 

이 고성은 특이하게도 기둥에 나뭇조각으로 멋을 많이 냈습니다.

용을 죽이는 방법...

용머리를 만들고 그 입안에 여의주를 물게 했습니다.

그러면 저 용은 여의주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됩니다.

여의주를 물린 용은 이렇게 서서히 굶어 죽어가나 봅니다.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고 자오싱으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작은 동족의 마을에도 역사의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의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고 아직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공산주의라는 게 자부심으로 남아 있겠지요.

어디 세상에 완벽한 사상이 있겠습니까?

그 또한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다른 게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