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쥐면 지옥이요, 내려 놓으면 극락입니까?

2011. 3. 3. 00:02중국 여행기/광동,광서,귀주성 배낭여행

고향이 그리워 눈물짓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왜? 누구를 위해 이곳에 주둔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덜수는 명이 무서워 도망하지도 못하고 고향에 두고 온 엄니가 그리워 밤마다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성벽 위를 거닐며 보초라도 서는 날은 고향이 더 그립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야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엄니 생각에 눈물이 흐릅니다.

 

환장하겠습니다. 왜 중국의 명나라 황제는 권력만 잡으면 성만 쌓으라 합니까?

성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기에 그 자리에만 오르면 그러는지 심보를 알지도 못하겠습니다.

어느 날은 잠자리가 뒤숭숭하다고 더 높이 쌓으라고 합니다.

 

기원전부터 만리 장성도 쌓았습니다.

남방 장성도 쌓았습니다.

여기 둔보에 롱리 꾸청도 쌓으랍니다.

젠장! 중국에 태어난다는 것은 성을 쌓기 위해 태어나는 일입니까?

이번에는 미치겠습니다.

다 쌓은 줄 알았더니 먼저 쌓은 곳이 허물어졌다고 보수하라고 합니다.

흙으로 쌓은 토성은 약하다고 튼튼한 돌로 더 높게 쌓으라고 합니다.

세상의 민초가 모두 입을 모아 황제를 향해 '천세 천세 천천세~'를 축원해도

부가세인 백세도 살지 못하고 가는 주제에...

영종은 제가 꼴값 떨다가 오이랏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와 모든 성벽을 더 높게 튼튼하게 쌓으라고 합니다.

 

엄니가 보고 싶어 북쪽 하늘을 쳐다보며 훌쩍이기도 한 날이 몇 날 며칠인지 모릅니다.

왜 그런날은 꿈에서조차 엄니가 보입니까?

하늘의 별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계절에는 저 멀리 엄니가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계급장 떼고 따지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하극상이라고 따지지도 못했습니다.

사오정이 따지다가 불만만 쌓인 녀석이라고 왕따 시키랍니다.

그놈의 계급이 뭔지 목을 옥죄어 들어왔습니다.

 

따지려고 다가갔다가 얼굴만 보면 그냥 침만 꿀꺽 삼키고 돌아온 지 몇 번이나 되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감기 몸살이라도 들면 왜 그리 서글픈지 모릅니다.

엄니손이 약손이라고 한 번만 이마를 만저주면 벌떡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돼지고기 몇 점에 탁배기라도 특식으로 나오는 날은 그나마 해피했습니다.

황제가 후궁이라도 맞이했다고 특식이라도 나오면, 목구멍에 때가 벗겨지도록 꾸역꾸역 밀어 넣었습니다.

황제가 감당도 하지 못할 후궁이지만, 차라리 매일 하나씩 궁궐에 들여앉혀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젠장... 왜 이런 만난 음식 먹을 때 엄니가 더 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보름 전, 술김에 소대장에게 엉겨 붙었다가 그 다음날 우물 파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묻어버리고 그 옆을 다시 파라 합니다.

젠장 폼은 황제만 잡으면 됐지 소대장은 왜 자기까지 거들먹거리나 모르겠습니다.

열린 공간인 화장실에서 서로 마주 보고 응아 할 때...

소대장 그것이 나 보다도 못한데 왜 저 녀석이 내게 명령하는 겁니까?

 

먀오족은 문명인이 아니고 야만인(苗蠻)이며 짐승처럼 더럽게 살아간다고 교육받았지만,

가끔 먼발치에서 바라보이는 먀오족 여인의 모습은 선녀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리 나비인 양 나풀거리며 걷는 모습을 바라보면 숨이 금방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냥 보쌈이라도 하여 곧게 뻗은 신작로라도 내달려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고 싶습니다.

 

그녀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하늘에서나 들리는 천상의 노랫소리였고,

수양버들처럼 낭창한 그녀의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한 마리 나비입니다.

그냥 달려가 그 허리를 안아주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교육받은 게 모두 거짓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가끔 멀리 보이는 먀오족 여인을 바라보는 일을 낙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근심, 걱정 없었고 행복한 상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 안방에 침실을 만들어 먀오족 여인과 천 년 만 년 둘이서만 살고 싶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예쁜 꽃신을 신겨보면 정말 선녀처럼 보일 것도 같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한족 여인보다 가냘픈 먀오족 여인이 더 아름답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말이라도 몇 마디 주고받으면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고운지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듯 고왔습니다.

그래서 아들, 딸 구분 않고 열 명이라도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고 싶습니다.

덜수는 오늘도 눈만 껌뻑거리고 상상의 나래만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합니다.

 

미개한 야만인이라고 교육받았던 말은 춘삼월 봄눈 녹듯 사라지고 숨이 막히고 가슴은 방망이질 치곤 했지요.

그녀와 깊은 산속에라도 숨어들어 천 년 만 년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돌다리를 건너 아주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들고 싶습니다.

이러면 탈영이지요? 그쵸?

탈영이면 어떻습니까?

그녀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입니다.

3년 전 슬그머니 사라진 먹쇠란 놈은 먀오족 처자와 혼인하고 벌써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명령을 내린 자도...

명령을 받은 자도 지금은 모두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이들은 바람 따라 흘러와 바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바람인가 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은 바람인가요?

바람이나 물살에 떠내려가지 말라고 다리를 튼튼한 돌로 만들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이리로 흘러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지만...

 

결국, 이들은 중원이 편해지기 위한 방패였으며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황제의 곤룡포를 더럽히지 않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이렇게 타향에서 고생해야 합니까?

곤룡포를 입어보면 마음이 변하는가요?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흘러왔을까요?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인가요?

골목마다 집집마다 물어보면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탐욕... 

버려야 합니다.
모두 버려야 합니다.
아주 작은 티끌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움켜쥐려고 한 들 쥘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세상을 품으려고 한 들 무엇을 품었고 또 무엇이 남았나요.

 

삶이란

무더운 여름철

느티나무 아래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삶이란

무더운 장마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먹구름 사이로 언뜻 비치는 파아란 조각하늘입니다.

 

그런 짧은 시간 속에

품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냥 밥그릇 하나에 모두 담아서 아무 곳에서나 앉아 먹으면 또 한 끼 식사가 해결되잖아요.

늘 긴장 속에서 생활했던 둔보라 지금도 식생활은 그대로인가요? 

그래

내가 얻은 것은 얼마나 되며

쌓아놓은 것은 또 얼마나 됩니까?

 

세상에 올 때

빈 주먹 하나 쥐고

오지 않았습니까?

 

알몸에

걸친 것 하나 없이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황제라고 곤룡포 걸치고 태어났겠습니까?

카다피라고 권총 차고 용병 이끌고 태어났겠습니까...

 

그래 이제 돌아갈 때

작은 주먹에

얼마나 움켜쥐고 가시겠습니까?

 

주머니

하나 없는 수의에

무엇을 넣고 갈 수 있겠습니까?

곤룡포 입고 권총차고 무덤 속에 들어가 무엇을 하시렵니까?

 

이제

모두 버려야 합니다.

하나씩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합니다.

 

모두 버릴 때

비로소 세상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 속에서, 이런 환경 속에서

佳人이 무엇을 품었고

또 무엇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요... 

佳人 마음속의 바람은 모두가 탐욕이었습니다.

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한 자밖에 되지 않는 가슴에 무엇을 품을 수 있습니까?

한 줌밖에 되지 않은 손으로는 무엇을 움켜잡을 수 있습니까?

잡으면 구속이요. 버리면 자유라 했습니까?

움켜쥐면 지옥이요, 내려놓으면 극락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품고 무엇을 잡으시겠습니까?

佳人은 손으로는 마눌님 손을 잡고 가슴으로는 마눌님을 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유와 사랑이 저절로 따라오더이다.

 

겨우 보리쌀 한 움큼 움켜쥔 손으로는 쌀가마니를 준다 해도 잡을 수 없고

곳간을 지은 사람은 곳간 보다 더 큰 물건이 생긴다 해도 그 물건을 넣을 수 없습니다.

아니군요?

중국은 만리장성이라는 울타리를 치고는 울타리 안은 당연히 내 땅이요 울타리 밖도 물론 내 땅이라고 하는군요.

그저 떼거리 데리고 밀어붙이면 세상이 모두 자기 땅이 되는군요.

땅이 넓으면 역시 땅땅거리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나 봅니다.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겠습니다.

버리고 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움켜잡았던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세상 모두를 내 가슴에 모두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모두 버리니 이곳 롱리에 사는 한족은 이곳이 고향이 되었습니다.

롱리는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사람이 그리운 곳입니다.

내일도 엉뚱한 상상만 하는 덜수를 데리고 롱리 고성을 더 돌아봐야겠어요.

타임머신을 탔더니만, 오늘은 저도 이상해졌어요.

여행이 너무 길어졌나요.

고성 안에는 모두 72개의 성을 지닌 사람이 살아가고

우물 숫자 또한 한 가문에 하나씩인 72개의 우물이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직도 롱리 꾸청 안에는 한족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다른 민족이 들어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벽이란 배타적인 구역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만 옹기종기 모여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다 생각했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울타리는 나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나를 보호한다고 만든 울타리가 나를 세상과 격리시켜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