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라지는 것만 덧없는 것인가?

2010. 5. 14. 09:03동남아시아 여행기/하노이 방콕 배낭여행

이제 우리 일행은 417년 도읍지인 왕궁터를 걸어서 들어갑니다.

과거에는 지칭 잘났다고 으스대는 많은 인물이 드나들었겠지만 지금은 관광객만 드나듭니다.

 

아래 사진은 왕궁과 그 앞에 있는 왕립 사원을 이어주는 출입문입니다.

출입문을 나지막이 만들어 드나드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라는 의미이겠지요.

 

지금 태국은 입헌군주국인 짜끄리 왕조라지요?

아유타야는 바로 그전의 왕조라는군요.

앙코르 왓에 가면 왕의 문이라고 있습니다. 왕궁에서 왕의 광장으로 나오는 문이지요.

 

그곳에서도 왕이 드나드는 문과 고급 신하와 일반인이 드나드는 문의 높이가 다르지요.

여기도 그런 모양입니다.

 

1.350년 유통(U Thong)이라는 사람에 의해 세워진 아유타야 왕조는 당시 태국 북부지방을 근거지로 번성했던 

수코타이 왕조를 합병하여 한때는 크메르 제국을 패망시킬 정도로 강한 국가였으며 이곳은 강성한 시기에는

동서양을 잇는 국제적인 무역 허브도시였다고 합니다.

유씨 중에 왕국을 세운 사람도 있군요.

 

왕궁에 도착했는데 날이 더우니 모두 그늘에만 앉아 있습니다.

진사는 이럴 때도 움직여야 합니다. 마눌님 모시고 옛날 생각이 나는 빈 집터 구경이라도 시켜주어야죠.

 

아유타야는 챠오프라야강과 파식강, 그리고 롭부리 강으로 에워싸여 지리적인 이점으로

물류가 원활하여 무역 중심국가로 번성했다 합니다.

세계인이 드나들다 보니 종교나 외국인에 무척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그리스 출신의 콘스탄틴 파울콘이라는 사람은 나라이 왕 재임 시절에는 재무 및

외무장관을 역임했고 실질적인 총리로서의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버마(미얀마)와 수십 번의 전쟁으로 점차 국력이 약화하고 드디어 1.767년 어느 날....

멀지 않은 곳에서 함성이 들리고 여기저기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말 울음소리 그리고 코끼리가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점차 가까이 다가옵니다.

일순간 궁녀들은 우왕좌왕하며 비명을 지르고 이미 버마군의 선발대가

궁궐 안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창칼이 햇빛에 뻔쩍거립니다.

 

아~~ 아유타야여~ 어디 사라지는 것만 덧없는 것인가?

417년의 꿈도 함께 사그라집니다.

아.... 그것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꿈이런가요?  

 

버마군의 침공으로 수도인 이곳 아유타야가 점령당하자 왕이 행방불명이 되었답니다.

도대체 왕은 어디로 도망을 갔을까요?

그러니 이렇게 좋은 집을 버리고 가출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적어도 당당하게 나서서 "나는 아유타야의 국부다!"라고 고함 정도는 쳐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산다는 일은 마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홱~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짧은 순간인 듯 하다고 했습니다. 

비록 짧은 세월이지만 이제 왕이 되었으니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만백성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며 천수를 누려야 하는 데 천수만 누리고 싶어 도망을 가다니요.

 

어찌하면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되오~ 아니 되오~~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야지... 소 귀에 경 읽기입니다.

아래는 수로인 듯 합니다.듯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왕궁에 배수시설을 하여 놓은 듯합니다.

 

그해 프라야 탁신이라는 장군이 버마군을 물리치고 톤부리 왕조를 세우고 겨우 15년간 이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말년에 이상한 짓을 하며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 속에 승려에 대한 탄압 등으로 민심은 돌아서고 드디어 

1.782년 그의 친구인 짜끄리 장군이 고민을 합니다.

서산 너머 저무는 석양으로는 세상을 밝힐 수 없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과 상의합니다.

佳人이 옆에서 거듭니다. "맞아요, 지는 석양으로는 팬티도 잘 마르지 않습니다."

 

신하를 거느릴 것이냐 아니면 남의 신하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허리를 굽히고 평생을 살 것이냐 아니면 허리 펴고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풀과 꽃이 스러지고 봄에 눈이 녹아 물이 흐르면 만물이 방긋 소생하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필연의 이치입니다.

결심했어~ 그래서 그는 톤부리 왕조를 엎어버리고 짜끄리 왕조를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프라야 탁신에게 신이 내려 궁예의 특허인 관심법이라도 득도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요. 역사의 기록을 그대로 믿지 마세요.

지금의 짜끄리 왕조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탁신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하면 뭐가 됩니까?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지요?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환관 조고가 진시황의 아들인 2대 황제인 호해에게 했던 일 말입니다.

사슴 보고 사슴이라고 해 봐야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는 모두 말이라고 하면 진시황의 아들인 2세 황제마저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일개 환관의 작업에 걸려 진나라 황제도 미친놈이 되고 만 사건입니다.

 

한 때는 넓은 땅에서 땅땅거리고 살았지만....

그러다 보니 패망 후 200여 년 간 돌보지 않으므로 많은 유적이 버려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누가 패망한 왕조를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당시 버마군에 의해 머리가 잘려나가고 부서지고 불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왕실 사원에서 궁전으로 향하는 길은 벽돌을 세로로 세워 포장하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시암 왕국도 씨엠립에 자리했던 앙코르 제국을 침공했을 때 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누가 누구를 욕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바로 이런 게 관광자원이고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보고입니다.

 

저 나무는 200여 년 전 이곳이 버마 군사에게 유린당하고 궁궐이 불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았겠지요?

정원에 자라는 나무는 정원사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요?

그러나 사라진 왕조의 궁궐에 자라던 나무는 분노와 굴욕의 눈물을 먹으며 자랍니다.

 

1.238년 타이족은 북쪽에 란나, 파여오, 수코타이에 작은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당시에 강력한 크메르족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두 명의 지도자가 최초의 독립왕국인 수코타이 왕조를 세웠다고 합니다.

수코타이란 행복한 새벽이라는 의미라는군요. 

 

수코타이는 불과 200여 년 정도 유지되었으나 장차 타이 왕국의 기초를 든든히 쌓은 셈입니다.

태국의 국교인 테라바다 불교(Tehravada Buddhism)를 확립하고 태국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예술 등 기틀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융성했던 문화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쇠퇴 일로를 걷고 결국에는 신흥 아유타야 왕국에 흡수되고

종속국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유타야도 아래 사진처럼 화려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닥돌만 남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돌이 아니고 벽돌이군요. 이게 바로 왕궁터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원이라도 해 놓으면 사라졌던 아유타야의 마지막 왕이라도 나타날까 봐 그랬을까요?  

 

아유타야는 14세기에 수코타이와 다른 그 밖의 작은 왕국들을 차례로 병합해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고
1.350년에 건립된 이 아유타야 왕국은 챠오프라야 강 남부 멀리까지 영토 하에 두었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왕궁터 위에서 폐하가 쉬었다가 가라고 부르는군요.

데자뷔 현상인가요?

 

그러나 아유타야는 1.767년 버어마의 침략을 받기까지 태국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으며

 무려 417년 동안 태국 역사상 가장 부강한 왕조를 이룬 시대라고 평가받고 있답니다.

 

이곳을 처음으로 찾아온 포르투갈 사절단이 1.511년 도착했으나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태국은 결코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죠.

33명의 왕이 통치한 아유타야 왕국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크메르의 영향에서 벗어나 아라비아 , 인도 , 중국 , 일본 및 유럽과도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초석 군데군데에는 예전에 기둥을 세웠을 둥근 홈이 보입니다.

 

이렇게 융성했던 아유타야가 버마의 침략에 의해 붕괴하였다는 일은 동남아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당시에 버마는 강한 나라였답니다.

그러나 후에 탁신 왕이 버마를 몰아내고 수개월 만에 타이 왕국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미친놈으로 몰아버리고 1.782년에 이르러 초대 왕인 라마 1세가 차오프라야 강 유역의 방콕으로

천도하면서 짜끄리 왕조를 열며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힌두교에서 동쪽은 현 세상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아침이고, 따뜻함이며, 봄이고, 시작이고, 밝고, 생명입니다.

서쪽은 사후 세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서쪽은 당연히 저녁이며,  동시에 차가움이며, 가을이며, 죽음이며, 끝이며, 어둠입니다.

 

그래서 탑의 문 중 동쪽을 제외한 문은 모두 형태만 갖춘 가짜 문으로 폐쇄되어 있고 동쪽만 열려있습니다.

이러한 법칙이 불교로 이어져 이곳 탑에도 같은 양식을 보여줍니다.

 

아~ 세상의 모든 빛은 사라지고 어두움이 내린 곳...

그 화려한 영화는 어느덧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융성했던 모습이 보이는 듯,...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감긴 눈에는 어느새 두 줄기 눈물만이 흐릅니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은 꽃이나 여자의 아름다움만이 아닙니다.

 

오후에 우리는 방콕으로 돌아옵니다.

버스는 우리 모두를 카오산에 내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 여행지인 칸차부리나 투어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방콕의 밤은 젊은 서양인들로 밤늦게까지 흥청거립니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오늘의 연장이고 젊음을 즐기고 마음껏 행복해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 같은 나이 든 한국인은 내일의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냥 밤거리를 산책하며 식사도 하고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 만든 음료수도 사서 맛을 보며 조용히 걷다가

숙소로 돌아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구 상에서 사라진 나라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후손이 제사마저 지내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 옛날이여~"를 외쳐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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