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미리내성지

2022. 4. 8. 05: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경기도 안성에는 미리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미리내는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순우리말이 아닌가요?

바로 미리내라고 불리는 천주교 성지가 있지요.

 

가끔 근처를 지나며 미리내 성지라는 이정표를 보았지만,

정확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는 못하다가

이번 기회에 우연히 들러보았습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는군요.

 

입구에서 보는 첫인상은 무척 경건하고 깨끗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들어서자 마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었고요.

 

천주교 신자라면 성지순례라는 의미로 반드시 이곳은 찾는 곳이겠지요.

평일이라 조용하고 한적했지만, 가끔 지나치는 사람을 보니

역시 이곳의 의미를 아시는 신자분에 대부분이었습니다.

 

입구부터 걸어들어가며 주변을 살펴보니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듯...

그 하나하나가 성경을 아시는 분에게는 의미 있는 모습이고 익숙한 장면이겠지만,

신자가 아닌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모르는 내용도 많네요.

 

이곳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네요.

 

성지에 들어서니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고요하면서도 편안함 느낌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기에 신자와는 다른 생각이 들지만,

성지를 둘러보니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즈음 사회적 거리두기니 뭐니 하니까 더 그런 기분이 드네요.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라고 합니다.

 

따라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하네요.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고

1989년에 웅장한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지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기념성당 앞쪽으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네요.

 

많은 조형물이 있는데 예수가 로마 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는 청동조각 15점이 서 있습니다.

예수의 마지막과 연관된 가장 격정적인 이야기를 조각으로 그린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 아주 멋진 조각상 하나가 보입니다.

바로 예수가 처형당한 후 그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져 아들의 시신을 부여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피에타 상이 떠오릅니다.

 

위의 사진은 예전에 바티칸에 있는 성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 전시된 피에타 상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이라지요?

2016년 바티칸 대성당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흉내 낸

한국의 피에타 상이 아닌가요?

작품의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를 했을지라도...

 

그 뒤로 작은 성당이 보입니다.

바로 이곳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옆으로 김대건 신부의 무덤이 보입니다.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성당, 김신부의 동상, 성모 성당,

겟세마니 동산(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등을 볼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1822년에 태어나 24살의 젊은 나이인 1846년에 순교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로 가톨릭의 성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교명은  앙드레라고 하네요.

 

본관 김해이고 충청남도 내포에서 독실한 천주교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답니다.

천주교의 탄압을 피하여 경기도 용인의 골배 마을로 이사 와서 살았다고 하네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에게서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네요.

 

1836년(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한테 영세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 등과 함께 중국의 마카오에 건너가, 파리 외방 전교회의 칼레리 신부로부터

신학을 비롯한 서양학문과 프랑스어. 라틴어 등 을 배웠답니다.

 

그 후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1839년에 필리핀의 마닐라에 가서 공부하여

6개 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네요.

1842년(헌종 8) 프랑스 군함 제독 세실의 통역관으로 있다가 몇 차례의 실패 끝에

1845년(헌종 11) 고국을 떠난 지 9년 만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당시는 천주교 포교가 금했던 시기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포교에 힘쓰다가 페레올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쪽배를 타고 중국 상하이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탁덕으로 승품 되어 24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답니다.

 


그 후 페레올, 다블뤼 두 신부를 데리고 충청남도 강경을 거쳐서 귀국하였다네요.

그는 지방 전도에 나서 10년 만에 고향에서 어머니를 만났으나,

아버지는 순교한 뒤였다고 합니다.

 

1846년 최양업과 다른 신부의 입국을 위하여 비밀 항구를 찾다가 체포되었는데,

서울로 끌려와 40회에 걸친 문초를 받고 9월 새남터에서 순교(당시 26세)하였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참수하여 군문효수할 것인데 헌종이 편법을 써서

효수하지 않고 매장하게 하였답니다.

 

매장 40일 후에 양성면 미리내에 사는 이민식 씨에 의하여 밤으로 7일에 걸쳐 운구하여

현재 미리내 묘지에 안장하였으며, 1925년 7월 5일 로마 교황 비오 XI세로부터 복자위에

올림을 받았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거행한

시성식에서 가톨릭의 성인 자리에 올랐다 합니다.

 

이곳은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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