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와 선돌목

2021. 11. 22. 03:06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강화도는 많은 유적지가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이곳의 역사는 고인돌이 많이 남아있는 세계적인 유산도 많이 남아있는 곳이지요.

항몽의 저항지였고 근세에 들어서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거치며 이곳은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지요.

 

오늘 이야기는 선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인돌이 많이 있어 선돌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광성보 안으로 들어가면 선돌목이라고 있는데 이곳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용두돈대는 바로 그런 이야기 속의 돈대입니다.

이곳은 육지와 아주 가까운 지역으로 예전에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강화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좁은 수로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심한 서해에서는 물살이 매우 강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노련한 뱃사공이 아니면 이 물길을 건너 다니는 일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했을 때 임금은 물에 약한 청나라를 피해 바다 건너에 있는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지요.

그때 물길이 가장 가까운 이곳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길안내를 맡은 선돌은 임금을 태우고 육지에서 강화도로 들어갈 때

물살이 급한 이곳을 건널 때 임금은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한 모습에 놀랐다네요.

그러나 선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더 험한 물살 속으로 배를 몰았다네요.

 

임금이 생각하기를 뱃사공이 자기를 죽이려고 그러나 보다고 생각해 신하에게 명령해

선돌을 죽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선돌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답니다.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 배를 몰고 가세요."

 

선돌은 죽었고 배는 다름 뱃사공에 의해 선돌이 띄운 바가지를 따라 노를 저어 강화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강화도에 도착하자 바람은 더욱 거세어졌고 방금 건너온 물길은 풍랑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때서야 자신이 잘못 생각해 선돌을 죽였다고 후회하고 선돌을 후하게 장사 지내라고 하여

지금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물길 건너편 덕포진에 선돌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로 후세 사람은 이곳을 선돌목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매냔 음력으로 10월 20일이 되면 이곳에는 세찬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이를 이곳 주민은 선돌의 한숨이나 선돌 바람 또는 손돌 추위라고 한다네요.

그의 이름을 딴 선돌목 돈대에 오르면 위의 사진처럼 건너편에 그의 무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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