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텐호프 궁전(Charlottenhof Palace)과 로마 목욕탕

2020. 10. 14. 05:24독일·오스트리아 2018/포츠담

작은 연못 위로 아담한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샤를로텐호프 궁전(Charlottenhof Palace)이라고 하네요.

이탈리아 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으로 규모는 매우 작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큰 궁전의 별궁 정도로 지은 듯합니다.

슁켈의 설계로 지은 궁전이라네요.

정원을 예쁘게 꾸며놓고 앞에 작은 못이 있어 여성 취향의 궁전이네요.

 

이렇게 상수시 공원 안에는 커다란 궁전도 있고 작고 아담한 별궁도 있습니다.

황제가 이곳에 쉬기 위해 찾는 곳이라 황후나 이런 귀족은 넓은 공원 안에 이렇게 자기만의 작은 궁전을

꾸미고 살았나 봅니다.

 

특히 이곳은 훗날 프로이센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등극하기 전 윌리엄 왕자로 있을 때

어머니인 황후와 함께 여름철을 보내기 위해 전원풍으로 지은 궁전이라고 합니다.

궁전 이름은 원래 이 땅의 소유주였던 마리아 샤를로테 폰 겐츠코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곳이랍니다.

 

당시 최고의 건축설계자였던 프리드리히 슁켈의 설계로 지었다고 하네요.

여성 취향으로 주변의 호수를 이용해 예쁜 정원을 꾸미기도 했고 정원에 많은 꽃을 심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정원사가 가꾸고 있으니 예쁜 정원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 지나는 길에 들러볼 만 합니다.

 

샤를로텐호프 궁전(Charlottenhof Palace) 근처에 로마 목욕탕(Roman Baths)이라고 있네요.

목욕탕 용도로 지었기에 건물 규모가 크지는 않고 무척 작습니다.

 

이탈리아 문화 팬인 빌헬름 4세가 슁겔에게 부탁해 만든 이탈리아 로마 양식의 목욕탕이라고 합니다.

취미나 기호에 따라 이렇게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재력과 권력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황제는 이 지역을 궁전 단지로 만들 때 그냥 농민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고 협의해 매수했다고 하니...

헤라클레스도 보이고 가자미 분수도 보입니다.

 

포츠담은 궁전도 있지만, 상수시 공원이라고 부르는 대단히 넓은 정원이 있는 곳입니다.

인구는 17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입니다.

1660년 브란데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사냥터로 조성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냥이라...

여기도 역시 우리나라 실내 낚시터처럼 병사를 시켜 먼 곳에서 짐승을 잡아 와 이곳에 풀어놓고

황제는 총을 들고 사냥한다고 쫓아다니며 생쇼를 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이런 짓을 보면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인간이 참 어리석다는 기분이 듭니다.

체중만 엄청나게 많이 나가는 황제를 태우고 씩씩거리며 짐승을 뒤쫓던 말만 불쌍하네요.

짐승이야 어차피 잡혀 이곳에 왔을 때는 운명이려니 하고 삶에 대해 체념했을 테니까요.

 

이후 호엔촐레른 왕가의 거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인구는 매우 적었다고 합니다.

이때 왕후들이 주로 이곳 궁전에 거주하였기에 많은 정원이 생기고 가꾸어지게 되었다네요.

그러나 이런 어리석은 인간의 행동이 오히려 이런 멋진 곳을 남길 수 있으니 오히려 현명한 행동이었습니다.

 

1685년 포츠담 칙령으로 종교 자유가 선포되자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신교 교도인 위그노파들은

종교 자유가 보장되는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게 되며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답니다.

 

18세기에 접어들며 프리드리히 왕 때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 등 많은 별궁이 지어지며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여름 별궁으로 이곳에 대해 많은 정성을 들여 가꾸었다는데 이곳은 원래 호수와 숲이 많았던 곳이기에

자연 훼손을 적게 하며 주로 원래의 모습에 따라 만들었다고 합니다.

워낙 정원이 넓기 때문에 자전거를 대여해 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싶더라고요.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베를린과는 달리 이곳은 피해를 적게 입었기에

예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네요.

상수시라는 말의 의미가 근심 걱정 없는 의미라고 했나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5년 이곳에 있는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에서 종전 후

전후 처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포츠담 회담이 개최되며 세상에 포츠담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은 동서독으로 나누어 관리되기 시작하며 포츠담은 동독 정권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가

통일 독일이 된 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