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을 바라보며

2017. 10. 20.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체코

 

다리 난간 위에는 많은 성인상이 있습니다.

마치 지나는 행인을 내려다보는 듯이 주욱 늘어선 석상도 카를교의 구경거리 중

하나로 난간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석상은 모두 30개나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모조품으로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하네요.

그냥 평범한 다리지만, 이 석상이 바로 카를교를 빛내는 역할을 하고 있겠죠?

바로 많은 사람이 이 다리를 찾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석상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석상 중 가장 인기 있는 석상이 있기 마련이죠.

바로 성 얀 네포무츠키 석상입니다.

석상이 아니군요?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은 이 다리에 많은 조각상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청동상으로 만들었답니다.

바로 이 청동상이 이곳에서는 갑입니다.

그러니 카를교에서는 제일 잘 나간다는 아이돌 수준이지요.

세워진 것도 제일 먼저였고 가장 인기 있는 것도 양 네포무츠키 상입니다.

 

 

체코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인으로 성 비투스 성당에 재직했던

실존했던 가톨릭 성직자였다네요.

왜 그가 가장 인기 있는 조각상이 되었을까요?

머리에 별이 무려 다섯 개나 되니 당연히 카를교 다리 위의 많은 조각상 중

으뜸인 대장이니까요?

 

 

물론 머리에 별이 아닌 다른 것이 있는 조각상도 있기는 합니다.

위의 조각상은 머리에 헬리콥터 날개처럼 생겼지만, 머리 위에 무언가 올려져 있지요.

 

 

성 얀 네포무츠키는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으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프라하 성안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에서 성직자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살해당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어느 나라나 이런 일이 있고 그 뒷이야기가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마련이죠.

여기에 두 가지 이야기가 내려오는데 야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주 그럴듯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답니다.

사실 정사보다는 야사가 더 재미있습니다.

카더라 통신이 더 파급효과가 크잖아요.

 

 

그 이야기를 그의 동상 아래 청동판으로 만들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모두 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기도 하죠.

아주 용하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청동상의 개는 왜 만져 반짝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개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사람이 개가 되는 겁니까?

아니면 집에 기르던 개가 사람이 됩니까!

 

 

그 이야기는 바츨라프 4세가 전쟁으로 자주 왕궁을 비웠는데 왕비는 궁을 지키는

호위병과 그만 눈이 맞아 아이까지 임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답니다.

설마 눈만 맞은 것은 아니겠죠?

세상에 눈만 맞아 임신이 된다면 모든 여성이 임신이 되어 지구는 만원이 되었을 겁니다.

 

왕비는 걱정이 되어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이

만났다는 그 이야기를 들은 바츨라프 4세는 그 비밀을 알아내려고 신부를 닦달했지만,

원래 고해성사란 성직자 입장에서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비밀을 지켜야 하잖아요.

 

 

화가 난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위의 사진에 보이듯이 그의 몸에 돌을 매달아

블타바 강에 던져버렸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라에 우환이 잦아들고 얼마 후 블타바 강 위로 별이 다섯 개가

반짝거리며 뜨고 신기하게도 그곳에 신부의 시신이 떠올랐답니다.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건져 성당에 안치하니 그동안 생겼던 우환이 하나둘씩

사라졌다는데 정말 조미료 제대로 팍팍 쳐서 만든 야사죠?

이런 이야기가 점차 나라 안으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가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으며 드디어 1729년 교황청은 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소문만 듣고 교황청이 섣부를 결정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의 모습은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머리 위로는 별이 다섯 개가 반짝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체코뿐 아니라 유럽 여러 곳에 다리를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세워져 있지요.

카를교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유일하게 청동으로 제작된 조각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유럽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다리의 제왕인 셈입니다.

 

 

위의 사진이 보이는 십자가 표시의 장소가 그의 시신을 블타바 강으로 던져진 곳이라

하는데 청동 조각상이 마치 물침대 위에 편히 누은 듯 보이지만...

그런 아픈 사연이 있는 장소랍니다.

 

 

다른 이야기는 정사에 기록으로 바츨라프 4세와 대 교황청 간의 분쟁이 생겨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임했던 아버지

 카를 4세 때 대 교황청이 여기 프라하에 있었답니다) 바츨라프 4세는

대주교를 잡아들이려 하자 눈치를 챈 대주교가 먼저 도망을 해버렸다네요.

 

 

도망간 대주교 대신해 대주교 대리였던 얀 네포무츠키가 잡혀 왔고 고문을 받는 중

죽게 되자 바츨라프 4세는 블타바 강에 그의 시신을 몰래 던져버렸답니다.

이곳에서도 턱! 하니 억~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1729년 종교적으로 희생을 당한 그를 위로하고자

성인으로 추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먼저 줄행랑을 친 주교는 그냥 성직자로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성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 앞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곳이죠.

그곳 동판의 새겨진 조각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있는가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