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수에그라 고성과 풍차

2016. 3. 2. 08:30스페인 여행기 2014/콘수에그라

 

원래 콘수에그라에는 13개의 풍차가 있었는데 하나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풍차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갈 때 처음 만나는 볼레로라는 이름을 지닌

풍차는 풍차 안에 계단이 있어 돈을 내면 위로 올라가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볼레로는 입장료가 있고 제일 아래는 풍차 안내소인 인포마르시온을 두어

무료 지도도 받을 수 있습니다.

풍차가 12개나 있지만, 실제로 완벽한 기계 상태로 아직도 사용 가능한 풍차는

볼레로 외에 산초와 루치오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 나머지는 그냥 폼이라는 말인가요?

 

 

이곳에 풍차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로 농사 외에는 경작할 일이 없는 지역으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방이기에 물을 이용하여 동력을 얻을 수 없어

오직 바람을 이용하여 동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얼마나 없을까요?

 

 

위의 사진이 이 마을 강의 모습입니다.

워낙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기에 우리가 갔을 때도 강은 바싹 말라 있었고

강 한가운데는 작은 물길을 만들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흐르는 물이 없으면 가운데 따로 저런 작은 수로를 만들었을까요?

그마저도 지금은 말라 아무것도 흐르지 않지만...

 

 

풍차의 작동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날개를 돌려 뼈대만 남아있는 날개에

천을 씌움으로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 풍차가 돌면 그 아래 기어장치가 연결되어 두 개의 돌이 맷돌처럼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 밀을 넣어 밀가루를 만드니 우리의 맷돌과 같은 원리인데

바람을 이용한다는 것만 다르네요.

 

 

늘어선 풍차 사이로 대단히 규모가 큰 고성이 하나 보입니다.

이 성은 제일 처음 코르도바에 왕국을 세웠던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가 만든 것으로

후일 알폰소 8세 시절에는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의 주요 군사시설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고 하며 풍차 도둑 지키려고 만든 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 후 나폴레옹의 침공 때 이 성은 파괴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최근 다시 복원 작업 중이네요.

이 지방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많은 성이 있는 곳이라지요.

그래서 성이라는 의미의 카스티야를 붙여 이 지방을 카스티야 라 만차라고 부르지요.

처음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이 건설한 곳으로 콘사부룸(Consabrum)이라고 했다는데

여기서 콘수에그라가 되었겠지요?

 

 

카스티야라고 부르는 지방이 한 군데 더 있는데 바로 마드리드 위쪽의 지방도 있습니다.

카스티야 이 레온이라고 부르더군요,

두 왕국이 모여 카스티야 왕국을 만들고 그 후 다시 아라곤 왕국과 혼사로 맺어져

지금의 에스파냐가 되었을 겁니다.

 

 

아무래도 가톨릭과 이슬람 두 세력이 서로 마주 대했던 접경지역이기에

방어를 위한 성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나 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지방 이름이 정해지고 나라 이름 또한 가톨릭 세력의 왕국도

카스티야 왕국이라고 불렀고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은 끝내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다죠?

 

 

그런 후 콜럼버스를 후원함으로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고 영광의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한 여왕이라고 합니다.

스페인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거론되는 역사적 여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금까지 여행하며 이사벨 여왕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왔지 싶습니다.

 

 

당시 무어인과 가톨릭 세력 간의 경계가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살았고 무어인은 더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쌓았을 것이고 가톨릭 세력은

그 성을 빼앗기 위해 쌓았겠지요. 

성은 같은 성이지만, 어느 편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런 황량한 벌판에 풀조차 자리기 어려운 우뚝 선

나지막한 야산 위에 성을 지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큰 성입니다.

 

 

이 성은 먼 곳의 동태를 살피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주변은 넓은 들판이고 여기만 우뚝 솟은 산이니까요.

미어캣이 발꿈치를 바짝 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마치 그런 모습으로

성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고성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그때의 위엄을 지닌 채

우뚝 솟아있습니다.

물론, 성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는 데 입장료를 4유로나 받습니다.

 

 

러시아 3대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이반 투르게네프 세상엔 인간이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다지요?

하나는 햄릿형이고 다른 하나는 돈키호테형이라고요.

아마도 두 사람을 양쪽에 세워두면 그사이에 어딘가 우리가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어디쯤입니까?

佳人은 돈키호테 바로 옆에 바짝 붙어있지 싶습니다.

좌우지간 세르반테스는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마련했다는데

높은 평가를 받아야겠어요.

 

 

콘수에그라에는 매년 10월이 되면 축제가 열린다네요.

그 축제가 이름도 예쁜 사프란 축제라네요.

사프란이란 꽃은 이 지방의 토양과 무척 잘 어울리나 봅니다.

 

 

10월에 꽃을 따 가운데 수술만 따로 채취해 말린다네요.

그다음 꽃술을 가루로 빻아 향료로 사용한다 합니다.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해 금값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세프들도 즐겨 사용하는 식재료라고 합니다.

 

 

축제기간 중에 다른 축제처럼 여기도 미인 선발대회도 열린다네요.

여기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고향이니까 미인 선발대회가 바로

돈키호테의 연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 선발대회랍니다.

그녀는 델 토보소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이지만, 돈키호테는 그녀를

악당들에게 잡혀간 공주로 잘못 알고 있지만요.

 

 

이제 우리도 다시 톨레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길가에 간이 버스 정차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내리고 탑니다.

그런데 버스표를 파는 곳은 문을 닫아 놓았네요.

우리는 아침에 톨레도에서 출발할 때 왕복으로 표를 끊었기에 아무 문제없습니다.

버스에 그려진 돈키호테, 산초 그리고 로시난테...

역시 이곳은 돈키호테의 고향이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남원에 가면 미스 춘향, 음성에 가면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처럼 말입니다.

사실, 돈키호테도 알폰소 키하노가 본명이라지요?

그런 그가 기사 소설에 심취해 스스로를 돈키호테 라만차라는 기사로 칭했으니

그도 그녀도 모두 허상인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장자가 꾸었다는 호접몽처럼 한바탕 나비의 꿈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현세를 살며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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