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피테아트로(Anfiteatro), 메리다 원형 경기장

2015. 8. 1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예전의 모습은 상상만으로 볼 수 있습니다.

1만 5천 명의 관중이 이 스탠드를 가득 채우고 저 아래서 벌어지는 생사의 경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위의 사진 제일 아래 좌석이 제일 상석인 곳입니다.

여기에도 스탠드의 높이에 따라 3단으로 구분하고 1단은 역시 프레스티지급이고 2단은

비즈니스석 그리고 제일 위 3단은 이코노미석으로 구분되어 구경했다 합니다.

 

로마를 상징하는 유적 중 없는 것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유적이 있는 곳이

바로 메리다라는 말이죠.

위의 사진은 검투사인 글래디에이터의 싸움터이죠.

파노라마로 찍어 보았으나 왜곡되게 보이고 그냥 찍으면 귀퉁이만 보이고...

 

위의 사진은 원형 경기장과 붙어있는 로마 극장인 음악당이고요.

그러니 바로 옆에서는 인간의 가장 잔인한 내면을 보고 환호하다가 이곳으로 옮겨

힐링이라도 하려고 그랬을까요?

 

위의 사진은 벤허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전차경기장입니다.

아우구스타 황제의 명령에 따라 퇴역병을 위한 계획도시로 만들다 보니

민초보다는 힘 있는 자를 위한 도시로 건설했지 싶네요.

그들이 즐길 엔터테인먼트의 기본은 모두 갖추었지 싶어요.

그들이 바로 로마를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생각했지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유적일지라도 방문 시각이 정해진 곳이 있습니다.

점심때인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고 

요일에 따라 문을 닫는 곳도 있습니다.

유럽의 관광지는 관광객이 갑이 아니라 근무자가 갑이지 싶네요.

우리에게는 이상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이 또한 생활의 일부이기에 불편함이 없지 싶네요.

 

환장하게도 뭐 길 가운데에도 유적이 뒹구는 곳입니다.

건물 지하에도 유적이 있고요.

이런 모습을 보니 예전에 이 도시가 얼마나 번창했던 곳인가 짐작하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제일 위의 스탠드는 가난한 자와 노예를 위한 좌석으로 할당하게끔 하라고

했다고 하며 야외 음악당과는 달리 원형 경기장은 이렇게 하층계급에도 경기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했고 남녀가 함께 앉아 검투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니 바로 옆에 있는 음악당과는 달리 여기는 분명 열린 공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 아주 흥미 있는 사진 하나가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통로로서 몇 개의 창문이 있는 그런 통로입니다.

벽돌을 불에 구어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기에 그 형태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장인의 솜씨로 보이는 벽돌공이 쌓았기에 아주 좋은 상태로 여태 처음 모습 그대로라고 합니다.

지금은 28열만 남아있는데 그 높이가 한 열에 거의 2m에 달한다고 하네요.

외부에서 보면 직사각형으로 창을 내어 마치 가정집의 벽을 보는 듯하다네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이 여성이 복도를 따라 경기장 관중석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우리의 호프 덜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광경입니다.

그런 덜수를 지금 여러분과 함께 佳人이 우두커니 보고 있지요.

 

지금 위에 보이는 복도와 계단은 다른 복도와 계단과는 달리 특별한 곳이라 하네요.

당시 로마가 지배할 때 검투사들은 경기당 1.000에서 5.000 sesterces(화폐단위)씩 받았다 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문은 경기에 승리하면 승리한 자만 나갈 수 있는 문이었다 합니다.

승자에 대한 예우 또한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러면 죽은 자는?

거적에 둘둘 말아 그냥 버렸을까요?

 

그 시절 군단의 병사가 받았던 돈이 연간 375 sesterces였다고 하니 검투사가 한 경기당

받는 돈과 비교하면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놀이기에 엄청난 돈을 받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죽고 나면 그 돈은 누가 챙겼을까요?

그들은 대부분 노예 출신인걸요.

 

검투사 생활을 하며 살아남은 승리자는 5년이 지나면 자유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동시에 나무로 만든 검인 RUDIS라고 이름 붙여진 기념품을 새로운 신분의 상징으로 받았다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노예가 검투사가 되기 위해 훈련받고 계속 싸우기를 희망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비참한 노예생활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면천을 바라는 자는 5년만 버티면 되고 돈이 필요한 자도 그랬나 보네요.

 

그래도 그렇지요.

목숨을 건 도박이 아닌가요?

따라서 승리한 검투사들의 통로는 위로 올라가 노예나 가난한 자들이 구경하는 좌석

바로 앞을 지나게 했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혹시 많은 노예가 그들 앞으로 지나가는 승리자의 당당한 모습을 보게 함으로

꿈을 키우도록 했지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많은 검투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검투사의 꿈을 키우라는 배려일까요?

여기에는 모두 15가지의 다른 타입의 검투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파니아의 검투사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네요.

 

하나는 중무장에 중장비를 한 경우의 검투사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경우죠.

전자의 경우 중무장을 했지만, 거동은 무척 불편 경기 중 힘들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무척 민첩하게 움직였다 합니다.

이곳을 걸어 내려가며 검투사들의 무기와 갑옷을 보며 검투사의 이름까지 붙여놓아

자세한 설명을 해놓았네요.

그게 실제 이름인지는 몰라도 돌만 남은 경기장을 둘러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비록 어설픈 그림이지만...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일명 쌍칼로 불렸고 이름은 DIMACHAERUS이랍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 출신이라네요.

로마가 즐겼던 이런 검투 경기는 사실 로마 북쪽에 제일 먼저 이주했던

에투루리아 사람들이 즐겼던 경기라네요.

이런 검투만이 아니라 벤허에 나오는 마차 경기도 그리고 로마인이 있었던 토가라는 옷도

모두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의상과 문화가 녹아들어 이루어진 문화라고 하네요.

 

경기장 한가운데 서면 당시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고 검투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어느 출구로 갑자기 호랑이가 뛰쳐나올 것만 같고 그 호랑이는 높이 뛰어올라

佳人의 숨통을 덥석 물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이곳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심쿵의 장소입니다.

 

이제 원형 경기장 옆에 있는 로마 야외 음악당으로 갑니다.

음악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위의 사진처럼 생겼네요.

이 문을 지나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지금 우리는 2천 년도 넘은 길을 따라 그때로 들어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로마는 도시 건설에 있어 상하수도 시설에 무척 공을 들였나 봅니다.

이곳에도 상하수도의 모습과 수로는 아직도 완벽한 그때의 모습이라 합니다.

그 이유가 아마도 메리다가 루시타니아(Lusitania) 속주의 도읍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겠죠.

이베리아 반도의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교차로 지점이기에

매우 중요한 지리적인 위치를 차지했을 겁니다.

지금도 그 길이 아주 중요한 교통로로 사용되고 있지요.

교통은 물론 행정, 상업, 통신의 중요한 중심지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