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6. 08:00ㆍ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이제 살라망카를 떠나 오늘부터 당분간 까미노(Camino)를 시작합니다.
우리 부부가 까미노에 도전하는 일은 종교적인 신념이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도전하는 게
아니고 다만 까미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고 세상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확인차 걸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이번 여행지가 스페인이기에 언제 다시 또 스페인을 자유여행으로 온다는 보장이
없기에 그러니 이번 기회에 도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것도 여행 기간 때문에 800km 가까운 까미노 전부를 걸을 수 없고 116km만 걸어가며
까미노에 대한 맛만 보려고 합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그냥 힘들게 걷지 말고 이런 길이 스페인에 있다는 것만 알고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것은 식당에 가서 메뉴판만 보고 그냥 나오는 일이잖아요.
어렵게 스페인까지 왔으니 손가락으로 맛이라도 콕~ 찍어 먹어 보고 가렵니다.
프랑스와의 접경인 피레네 산맥에서 스페인의 북서쪽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순례자의 길을 중심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은 칸타브리아 해와 서쪽의 대서양과 접한 지역은
스페인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슬람의 흔적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습하고 겨울은 지중해성 기후인 남부에 비해 춥다고 하네요.
습한 기후는 나무나 건물에 많은 이끼를 만들어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베리아 반도가 많은 부분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북쪽 지역은 기독교 세력이
장악했으며 후에 카스티야 왕국으로 발전하며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가 여왕에 등극하며
그를 지원해 준 아라곤의 왕인 페르난도 2세와 혼인함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죠?
두 사람은 드디어 이베리아 반도에 800여 년간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아온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기반을 닦은 지역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게다가 성 야고보가 선교를 위해 떠났다가 돌아간 후 숨을 거두어 그의 무덤이 9세기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된 이후 그의 무덤을 보기 위해 유럽의 많은 순례자가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며 이 지역은 성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까미노는 바로 성 야고보의 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왜?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 있어 순례자는 갈 수 없는 곳이었잖아요.
이런 순례의 관습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처음 시작은 종교인이었지만, 지금은 순수한 종교인보다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대부분이라
하며 건축 문화 자체도 중부나 남부처럼 이슬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기에
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주류라 하네요.
주류든 비주류든 사실 우리는 그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북부지역의 많은 도시는 포기하고 순례자의 길 일부만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려고 하며 어디서 출발하든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자의 최종 목적지일 겁니다.
까미노란 바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순례자의 길을 걸었던 순례자 대부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카테드랄에
안치된 성 야고보의 무덤을 보고 기도를 올릴 겁니다.
물론, 우리 부부처럼 그냥 멀뚱 거리며 바라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우리 부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은 후 다시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로 넘어가
남으로 계속 내려가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리스본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땅끝인
호카곶도 들리고 에보라도 들려보렵니다.
이번 여행은 스페인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일부도 기웃거리렵니다.
그 후 처음에는 한국 여행자 대부분이 가는 스페인의 세비야로 가려고 했으나...
좀 더 다른 루트를 생각해 리스본에서 동쪽으로 진행해 바다호스, 카세레스, 투르히요 그리고
메리다로 가 그곳을 구경한 후 은의 길을 따라 세비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리스본에서 동쪽인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국경통과 교통편을 알 수 없어
이때까지는 미정이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예루살렘, 로마에 이어 3대 성지 중
하나라 하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포교활동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합니다.
그러나 점차 확장 일로에 있는 기독교의 팽창이 두려운 유대 왕 헤롯은 야고보를 참수했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야고보의 시신을 거두어 배에 실어 보냈는데 신통방통하게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부근에서 발견되어 그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합니다.
야고보의 시신은 바다를 흘러흘러 오랜 시간을 두고 왔을 텐데
그게 야고보의 시신임을 어찌 알았을까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인 성 야고보(영어로는 Saint James)는 예수 생전에 하나님의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한다는 종교적 사명을 띠고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며 지금의 까미노가 만들어진 거라네요.
그랬습니다.
그가 걸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길이 바로 지금의 까미노가 되지 않았을까요?
약 7년여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 야곱은 헤롯왕에게 참수를 당하여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네요.
그러나 더 신기한 일은 수백 년이 지난 후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됨으로 이 소식은
기독교도들에게 전해졌고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아스투리아스 왕이었던 알폰소 2세는
그의 무덤이 발견된 장소에 카테드랄을 짓고 그가 최초의 순례자가 되어 지금의 오비에도에서
무덤이 발견된 장소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왕이 손수 이 길을 걸었다고 하니 믿음이 가지 않나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 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세워져 이때부터 유럽의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에 나서게 되며 지금의 까미노가 시작되었겠지요.
이때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던 스페인 북부지역은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점령한
이슬람 세력과 현지의 아스투리아스 등 가톨릭 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곳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순례길의 탄생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네요.
지금은 1993년 유네스코에서 까미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답니다.
이번 여행에서 들린 모든 곳이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이렇게 스페인은 세계문화유산이 길거리에도 널렸습니다.
세상에 까미노라는 길이 세계문화유산이라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중세에는 신앙과 정신적인 수양을 목적으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고,
정치적 목적으로 걷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또는 많은 사람이 이 길에서 순례객들을 상대로 장사하여 부를 얻기 위해서 걷기도 했고요.
또 어떤 이는 오욕(五慾)은 내려놓고 칠정(七情)은 멀리하려고 걷기도 할 거고요.
일부 죄수들은 감옥에 가는 대신에 이 길을 걸음으로 형벌을 면죄받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12~13세기에는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로부터 한 해에 50만 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이 길을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고 하니 그 역사만큼 많은 사람이 걸은 길입니다.
교황청에서도 가톨릭의 성스러운 해에 이 순례길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객들에는
평생 지은 죄 전부를 사면해 주기도 했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객도 지은 죄의 삼 분의 일을
사면해 주는 등 순례를 장려한 적도 있답니다.
마치 죄를 두고 거래하듯 했네요.
그럼 우리 부부는 부가세 정도인 10%라도 죄를 감면해 줄까요?
이렇게 번창하던 이 길은 16세기 들어서 비대해지고 부패한 종교권력에 반발한 개혁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혔으나 1982년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다시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하였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조형물이 바로 요환 바오로 2세의 방문 조형물이지 싶습니다.
佳人이 아니라 뒤에 보이는 조형물 말입니다.
이후 이런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많은 성직자가 이 길을 따라 순례의 길에 나섬으로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연간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길을 찾는다 하네요.
순례자의 증표로 가리비와 지팡이 그리고 조롱박을 들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하나도 들지 않고 걸었습니다.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그런 증표 하나씩은 들고 걸었지만, 그런데 우리 부부는 왜?
바로 그런 증표라는 조형물 앞에 서서 사진을 찍음으로 갈음하렵니다.
이런 이유로 가리비 모양과 노란색의 화살표는 까미노 길의 이정표로 지금 사용되고 있답니다.
초기에는 마을마다 성당에서 숙소를 제공했지만, 점차 일반인도 많이 걷게 되면서 알베르게라는
숙소가 생기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알베르게도 공공 기관이나 성당 또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공립이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걷거나 말을 타고 갔지만, 지금은 다른 여러 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갈 수
있지만, 다만 순례자로 인정받기 위해 100km 이상을 걷거나 말과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 200km
이상을 달려와야만 순례자 증서를 받을 수 있답니다.
차를 타고 가는 까미노는 의미 없는 일이랍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까미노가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유명한 작가의 한 사람인
파울루 코엘료(Paulo Coelho)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순례자라는 책은
수많은 독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을 심어 주게 되며 다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네요.
최근에는 제주 올레길이나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무슨 둘레길 등 우리나라에서도 걷기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주 올레길의 모델이 된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올레길은 바로 까미노를 벤치마킹했잖아요.
지방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둘레길은 또 올레길을 벤치마킹하고요.
그러니 세상 모든 길이 둘레길이라 부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마다 서로 뒤질세라 둘레길이니 뭐니 하며 난리법석을 떨었지요.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걷기 운동 열풍이 불며 제대로 맞아떨어진 겁니다.
우리 동네에도 둘레길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하나는 개천을 끼고 걷는 뚝방길은 구에서, 또 하나는 산 중턱을 끼고 걷는 길은 시에서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지 뭡니까?
정말 요즈음에는 걷는 길은 다 둘레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레길이란 차를 이용하지 말고 순전히 두 발로만 걸어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게 진정한 까미노이기 때문이죠.
사실, 걸어가는 일이 바보같은 방법이지만, 차를 이용하면 금방 완주하니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천천히 걸어가며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고 세상은 가끔 편한 것도 좋지만,
직접 두 발로 힘들게 걸으면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까미노는 순전히 걸어서만 걸어가는 도중에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잖아요.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순례자 숙소이용 등 가벼운 비용으로 본인의 삶에 대해 진지한 생각도
하면서 유럽의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문화도 즐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요.
무엇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과 함께 제법 긴 시간을 걷어가며 대화함으로
시야를 넓힐 기회가 되기도 할 거고요.
처음 걷기를 시작하는 지역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Credential)을 발급받은 후 길을
시작하면 되고 길을 따라서 마을마다 있는 순례자 숙소(Albergue)나 식당 등에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지요.
알베르게나 펜시온에서 머물 수 있고 세탁실, 주방, 샤워장 등 공동 시설이 대부분 갖추어져
있으며 물론, 출발할 때 크레덴시알이라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 쉬는 숙소마다
확인 스탬프를 받아야 하겠지요.
요즈음 가게에서도 크레덴시알을 팔기도 하니 그게 더 편합니다.
이렇게 걸어서 완주하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완주 증명서를 산티아고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무료로 발급해 줍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하시겠지만, 사실, 면죄부도 아니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걸었던 행동에 대한 자랑스러운 경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증표가 죄 많은 佳人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증명서라면 오죽 좋겠습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까미노 곳곳에는 노란 화살표 또는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조개껍데기의 빗살 표시로
길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며, 길 전체 구간의 치안 또한 양호한 편입니다.
길을 다 걷고 나서 산티아고 대성당 옆에 있는 순례자 사무소로 가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제시하면 일정구간 이상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 후 중세에는 면죄부가 되었을
순례자 증서를 발급받는 재미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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