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언 어취(魚嘴)에서 이빙의 생각을 읽어봅니다.

2013. 12. 28.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도강언의 삼대 주요 포인트 중 제일 위에 있는 어취(魚嘴)를 보겠습니다.

어취를 다른 말로 분수어취(分水魚嘴)라고도 부른다 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佳人이 분수도 모르고 그러는게 아니라 민강이 흘러내려 오는 곳에

물을 예전 물길인 외강과 홍수 예방과 가뭄을 방지하기 위해 수리시설로 새로 물길을 낸

내강으로 물을 나누어 흘려보내기 위한 첫머리라는 말일 겁니다.

 

어취라는 말은 물고기의 부리라는 말로 뾰족한 모양이 물고기의 주둥이를 닮아

그리 부르나 본데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 이름 지은 것을 보면 때로는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게 제법 많습니다.

한자가 같은 뜻글자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위의 사진이 바로 어취를 찍은 사진입니다.

어취란 말 자체가 물고기 주둥이라는 말로 그 모습이 반달 같기도 하다고 하지만,

물고기 입 모양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공적으로 댐을 쌓아 물을 두 갈래로 가르는 곳으로 물의 양은 내강과 외강의

비율이 4:6이고 토사는 2:8의 배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합니다.

머리카락 가르마 비율이 아니고 말입니다.

물의 양은 비슷하게 나누었지만, 토사는 내강에 쌓이지 않게

대부분 외강으로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이는 어취의 방향과 위치가 만든 과학적인 배분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상, 어취를 중심으로 왼쪽이 외강이고 오른쪽이 내강입니다.

 

그럼 어취 위에 보이는 저 섬처럼 생긴 제방과도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백장제(百丈堤)라는 제방입니다.

저 백장제가 의미 없는 게 아니라 도강언의 시작점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저 백장제라고 부르는 섬도 직접 사람이 쌓은 인공섬으로 미리 저 앞에서 물의 양과

토사의 양을 나누기 시작하는 목적으로 쌓았다 합니다.

 

 

줌으로 당겨보았습니다.

역시 인공으로 제방을 쌓은 모습이 확실합니다.

저곳에서 한번 먼저 물길과 토사의 방향을 잡아준다고 하니

이게 기원전에 만든 것이란 말입니까?

 

 

어취 위에서 찍은 사진이 그곳에 있기에 그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어취 양쪽에 삭교가 보이는데 지금은 오른쪽에는 댐을 건설했기에

오래전의 사진으로 생각됩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댐의 모습으로 물이 적은 시기는 외강으로는 물이 흐르지

않도록 수문을 닫아 놓았더군요.

 

 

강은 양날의 칼입니다.

식수와 생활용수 그리고 농사에 필요한 물로 사용될 때는

그야말로 생명의 물이지만, 그러나 가끔 홍수가 나거나 가물게 되면 인간의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심하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지요.

지난 여름 자연은 이곳 도강언에 사는 사람에게 또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위대합니다.

이런 자연에 맞서 그것을 다독일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미 우리는 업성에서 서문표라는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서문표는 물장난하며 이재를 축재했던 무당과 고을 삼로를 조금은 단순하지만,

효과가 끔찍하게도 좋은 방법인 무식하게 황하에 던져버리고 마을 사람을 동원해

물길을 새로 내며 치수사업을 함으로 업성이 번창하게 되었다 하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면이 바로 무당과 삼로를 강물로 던지는 장면이 아니겠어요?

 

여기에도 업성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 치수 현장이 있다고 하여 찾아왔네요.

그러나 아쉽게도 업성은 황하가 범람해 모두 사라지고 여기는 비교적 작은

민강이기에 온전하게 남았네요.

얼마나 심했으면 조조가 지었다는 삼대 중 금봉대 터만 일부 남고 동작대와 빙정대는

터마저 모두 사라졌을까요.

서문표 이야기를 읽어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서문표 이야기 1 (daum.net)

 

서문표 이야기 1

중국 춘추시대에 위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서문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문후 때의 인물로 황하 주변에 있는 업현이라는 지역의 현령으로 부임하게 되어 현의 장로들을 불러 이야기를

blog.daum.net

 

 

인류의 시작과 문명의 발달은 치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죠.

더군다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인구가 많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라가

지탱할 수 없었기에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경영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위의 사진은 고대 중국에서 수리시설을 했던 곳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그랬기에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도 만들고 중국에서는 최초로 국가라는 하(夏)나라를

세우고 치수에 목숨을 걸고 책임진다는 삽질의 대왕인 우왕(禹王)도 모시고

늘 물이 화내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습니다.

여기 도강언은 자연의 변화에 빌며 기다리기보다 직접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다스렸던

현장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오늘은 그 위대한 인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공사하기 위해 물길을 잠시 막거나 돌리기 위한 공사시설입니다.

지금도 저런 도구를 이용해 준설을 하거나 물길을 돌릴 때 사용한다 합니다.

 

 

지금으로 생각한다면 댐을 쌓아 많은 물이 내려올 때는 보에 가두어 두고

물이 적은 시기는 가물지 않게 조금씩 흘려 내려보내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게 말로는 쉬워도 옛날의 기술로 거대한 댐을 쌓는다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강물은 장사하는 사람의 뱃길이고 전쟁이 나면 전투를 위해 병사들이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니겠어요?

옛날에는 뱃길이 막히면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댐으로 막는다면 이는 물길이 막힌다는 말이잖아요.

물길이 막히면 자연현상이 바뀌게 되고 그게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물이 많은 계절에는 그 물을 나누어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어

늘 일정한 양의 물만 관리하면 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던 모양입니다.

물 관리는 캬바레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었네요.

 

 

바로 인공적으로 물길을 막지 않고 관개수로를 만들어 관리한다는 이야기네요.

또 다른 문제점이 흘러온 토사 문제는 물의 흐름이 빠르게 내려오다

느려질 때 많이 쌓인다는 것이니까 물의 흐름을 빨리 흐르게 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물길을 돌려 물의 흐름을 빨리함으로 토사가 쌓이지 않게 했답니다.

그래도 토사가 쌓이는 것은 인공적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으로 물길을 한 번 돌려

그 물이 끌고 온 토사를 일정한 장소에 쌓이게 함으로 그 토사를 정기적으로

사람을 동원해 퍼내게 하면 해결되겠네요.

 

 

어취부터 비사언이 있는 곳까지를 금강제(金剛堤)라고 부른다네요.

그러니 인공으로 섬을 쌓아 내강과 외강으로 나누고 모래나 토사가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물길을 돌려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인 비사언까지를 부르는 인공제방의 이름이지요.

 

 

우리가 입구에서 본 와철이라는 게 바로 쌓인 토사를 파낼 시기를 알려주는 지침이 되잖아요,

어때요.

정말 과학적인 해결책이 아닌가요?

 

 

어디 그뿐인가요?

물의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돌린 물줄기가 새로운 강을 만들고 그 강은 도강언 시내를

거미줄처럼 흘러가며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니 천수답이

옥답으로 변하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겁니다.

도강언은 그야말로 물 좋은 동네가 되고 만 겁니다.

 

 

남자는 왜? 도강언 공사에도 동원되고 여자의 신발까지 들고 따라갈까요?

남자는 여자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죄인일까요? 웬수일까요?

여자는 또 남자에 어떤 존재일까요?

나이 든 남자가 왜 젊은 여자의 신발을 들고 저렇게 걸어갈까요?

 

잘못된 만남일까요?

축복받는 만남일까요?

신경 끄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라고요?

 

이러한 작업은 처음에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1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공사를 시작했으며 우선 흐르는 물을 임시로 돌리기 위해 물에 강하고 다루기 쉬운

대나무를 이용해 마치 김밥처럼 돌을 안에 채우고 나무로 삼각대를 만들어 물길을

새로 내고 언덕을 쌓는 공사를 4년간이나 했다고 합니다.

 

 

산을 깎아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보병구를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운 난공사였다고 합니다.

암석은 불에 달구었다가 물로 식히면 쉽게 깰 수 있기에 이렇게 바위를 뚫어

보병구를 만드는 데 또 8년의 세월이 걸렸다네요.

 

이렇게 하여 겨우 폭이 20여m 정도 되는 병모양의 입구인 보병구를 완성했다 합니다.

공사가 완공되자 더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고 늘 일정한 수량의 물이 흘러 쓰촨 평야는

중국에서 제일 좋은 옥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니 세계적으로 유명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이 이 모습으로 보기 위해

모여들어 관광수입까지 올리게 하니 이빙은 왕이 아니라 신의 반열에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

 

 

중국인이 열광하는 이상한 관우는 그냥 인간으로 돌려보내고요.

그러면 관우가 삐칠까요?

이곳에 이빙 부자를 기리기 위해 이왕묘라는 사당을 만들어 제를 올리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어취까지 관람차를 타시려면 왕복 15원, 편도 10원이랍니다.

 

 

중국의 3대 삽질은 만리장성, 경항대운하 그리고 바로 도강언 공사가 아니겠어요?

당시 이런 공사를 할 때 공사 기자재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순수하게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진 일이기에 위대한 역사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만리장성과 비교하면 만리장성이 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직까지 처음 목적한 대로 사용되는 기능은 이곳뿐이잖아요.

정말 처음처럼 말입니다.

삽질에도 등급이 있나 봅니다.

 

 

아니군요?

처음의 목적보다 하나 더 추가합니다.

관광수입 말입니다.

 

 

이러기에 이곳 도강언이 위대한 인간승리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만리장성은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여 돈을 버는 일에는 아마도 세계 최고의

삽질이겠지만, 그 목적인 전쟁방어는 퇴색되어 지금은 역할이 바뀌어버렸잖아요.

도강언은 지금도 평야에 물을 공급하고 홍수조절까지 해낸다 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발상입니까?

오늘도 보병구에는 물이 콸콸콸 흐릅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영웅이 아닐까요?

그럼 삼국지에 등장한 영웅은 영웅표 짝퉁이라는 말인가요?

유비는 이곳 도강언이 지척인 익주에 터를 잡고 천하를 셋으로 나눈다는 생각에

촉한의 황제 자리까지 올랐지만, 셋도 아니고 둘로 강을 나눈 이빙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조조는 둔전제도 시행하고 운량하도 파며 민초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도 폈지만... 유비는... 유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민초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강을 4:6으로 둘로 나눈다.

 그 하나의 강을 홍수예방과 수리시설을 통해 일정한 양의 물만 늘 실생활에 이용한다.

우기에 많은 물이 흘러들어오면 그 많은 물이 자동으로 배출된다.

흘러온 토사도 급류를 만들어 다시 외강으로 흘려보내고 남은 것은 한곳에 쌓이게 하고

나중에 건기에 준설한다.

이런 공사를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다면 이것도 자연파괴라고 환경단체에서

극한투쟁도 불사하고 반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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