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4.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제법 가을 풍경이 느껴지네요.
이곳에는 검문관 관루를 올려다보고 시를 짓는 장소라는 의미의 탄관대 시가 주랑이라는 곳도 만들어 놓아
수천 년 전부터 이곳을 찾은 제왕 장상은 물론 대문학가와 시인 묵객이 시를 읊조리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백처럼 주체할 수 없는 시상이 떠올라 글을 남긴 사람도 있겠지만,
숫가락만 들고 덤비듯 글을 남긴 사람도 있겠네요.
장재, 낙빈왕, 이백, 두보, 이융기, 이상은, 왕안석, 애신각라, 윤례, 그리고 곽말약에 이르기까지
19편의 글을 이곳과 관련해 남겼다 합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름없는 그들을 위해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강유의 용맹함을 칭송한 겁니까.
어제는 마지막으로 이백을 만났지만, 오늘은 먼저 두 서방인 두보부터 만납니다.
어제 이백의 자세를 보고 카리스마를 느꼈는데 오늘 두 서방을 보니 역시 만만치 않네요.
쌍벽을 이루는 두 사람이라 자세 또한 대단하네요.
이곳에 글을 남긴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만큼 이곳은 중국의 대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번쯤 구경하기를 원하는 그런 곳인가 봅니다.
뭐... 아무 재능도 없는 佳人도 여기에 온 걸요.
중국의 시를 안다면 여기만 돌아보아도 좋겠습니다.
같은 시라도 이런 장소에서 그 사람의 느낌을 함께 느끼며 읽는다면 감동 또한 두 배가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佳人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용은 몰라도 사진에 담는 일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 여러분과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공명은 출사표를 쓴 후 이 길을 지나 북으로 간 후 다시는 이 길을 다시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기에 다시 이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때가 공명에게는 이 길이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아득하게 멀어서 눈을 가리는 게 없어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까?
죽고 난 후에야 멈추겠다는 공명의 출사표...
공명도 자신의 끝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고 가슴 한 켠을 짓누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출사표...
그게 공명의 유서와도 같은 글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북벌을 위해 여기를 지나며 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지금 佳人이 바라보는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고.
아득하게도 먼 저곳을 향해 군사를 이끌고 공명은 마지막 길을 떠난 겁니다.
이 길이 바로 선제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었고 세상에 태어나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때도 위의 사진과 같은 까마득한 그런 길이었겠지요.
즐겁고 편안한 상태라면, 멋진 풍경에 시상이 절로 떠올랐겠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책임감에
공명은 무척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여기를 지나갔을 겁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길을 걸어가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 하늘로 올라가는 이백의 말처럼 우리도 하늘로 올라가 봅니다.
이곳은 그 옛날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모퉁이마다 어려있고 돌 틈 사이로 당시의 모습이 숨어있을 겁니다.
아울러 아주 수려한 풍경으로 산책하며 즐기기에도 무척 좋은 장소라 생각되어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네요.
강유를 잊고 걸으면 어떻습니까?
공명의 출사표를 생각하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냥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을 속으로 걸어보는 일도 과히 나쁘지는 않네요.
여기도 제갈 공명의 환생인가요?
제갈 멍멍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얼른 뛰어나와 佳人을 인도합니다.
잠시 후 많은 개가 대나무 숲에서 여러 마리가 뛰어나와 우리를 반깁니다.
정말 여기는 완전 개판이었습니다.
제갈 멍멍, 강유 멍멍, 종회 멍멍...
대나무를 심어 팔진도를 만들어 놓았네요.
잠시 개들과 같이 팔진도를 뛰어다녔습니다.
개보다 빨리 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개보다 천천히 걸어 뒤따르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개하고 같이 가면 개 같은 놈이 된다고 했나요?
여기 팔진도에서는 개가 워낙 많아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검문관에 와 여러 가지 다 했습니다.
팔진도를 나와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정말 험한 곳이네요.
촉한으로 가거나 중원으로 갈 사람 어느 사람도 이 관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곳이기에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때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두 걸음 걸어보면 그때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날씨가 좋아 맑은 날이면 좋겠지만, 오늘처럼 운무에 싸인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내 마음이 즐거우면 세상이 모두 좋습니다.
다리 하나가 또 보입니다.
다리 이름이 시선교(詩僊橋)라고 하네요.
시선교에 얽힌 이야기나 들어볼까요?
이런 곳에 와 그냥 맹숭거리며 걷기보다는 이런 이야기나 도란도란 나누며 걷는다면 한결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먼저 위의 사진부터 자세히 보고 갑니다.
바로 시선교 위에서 산 위의 모습을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그때 시선이라는 이백이 섰던 그 자리에 우리도 서서 바라봅니다.
이백이 당나라 명 황제와 함께 촉에 간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왔을 때 이백은 여기서 산의 연봉을 바라보니 그 웅장한 모습에 감동하여
즉흥적으로 시상이 떠올랐나 봅니다.
지금 佳人이 바로 이백이 섰다는 그 자리에 서서 연봉을 바라봅니다.
위의 사진을 여러분도 보고 계십니다.
그때 이백은 황제 앞에서 시상을 주체할 수 없어 또 한 수 읊조렸겠지요.
그랬기에 여기 다리 이름을 사람들은 시선 이백을 기념하기 위해 시선교라 지었다 합니다.
여러분은 비록, 사진으로만 보시지만, 연봉을 바라보니 시상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런데 같은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는데 누구는 떠오르는 시상을 주체할 수 없어 마구 지껄였다는데...
우쒸~ 佳人은 왜 우쒸라는 소리만 나오는 겁니까?
산은 같은 산인데 말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가 봐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산을 바라보지만, 느낌이 없이 바라보면 佳人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나 봅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이야기지만, 어쩌겠어요?
또 다른 다리 하나 건넙니다.
이번에는 자규교(子規橋)라는 다리입니다.
달 밝은 밤이면 여기는 두견이라도 우나 봅니다.
이런 날은 망국의 한이 서린 강유가 생각나 우울한 마음이 들고, 날씨가 좋은 날은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두견이 우는 밤이면 강유와 목놓아 울고 싶습니다.
탁배기라도 한 잔 나누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습니다.
자규는 두견새를 일컫는 말이지요.
이곳 검문관 주변에 두견새가 많이 산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춘추시대 초기에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나라를 잃으며 그 슬픔에 죽었답니다.
한 많은 죽음이라 두우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는군요.
그럼 망제 두우의 머리는 새대가리?
두견과 자규교에 엃힌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듣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무척 처절해 마음을 울적하게 만드나 봅니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이백은 촉도난에서 이렇게 썼잖아요.
又聞子規啼夜月,(우문자규제야월), 오늘도 또 자규새 우는 소리를 밤에 듣는구나!
愁空山.(수공산). 정말로 빈산이 원통하구나.
이렇게 촉도난에 이백은 두견새 우는 소리를 탄식하며 시를 썼다네요.
울지마라 두견새여~
네가 울면 佳人 마음은 더 슬퍼진단다.
자규교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오정평(五丁坪)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전설에 따르면 전국시대 중기에 촉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개명왕이 진나라의 혜문왕에게 속은 이야기를
여기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고사는 이 지방에 아주 널리 퍼져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고사에서 따와 이곳을 지나는 길을 금우도라고 부른다잖아요.
개명왕은 욕심이 많은 왕이었던 모양입니다.
중원에 자리한 진나라 혜문왕은 촉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험해
엄두를 내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촉나라 개명왕의 탐욕을 역이용하기로 했답니다.
혜문왕은 금소를 만들어 개명왕에 선물하려 하지만, 길이 험해 금소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요.
그래서 개명왕은 다섯 명의 전사에게 명하여 산을 깎고 관을 열어 길을 내라 했답니다.
다섯 명의 전사가 바로 오정이고 이곳이 그들을 기려 오정평이라 부르는 곳이죠.
다섯 명의 전사는 이곳의 산을 지키던 큰 뱀의 요괴와 치열하게 싸우며 대량산을 대검산과
소검산으로 나누었다 합니다.
이게 지금의 검문관이 있는 갈라진 곳이지요.
그때는 금우도라 불렀지만...
지금은 다른 말로 석우도라고도 한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그때 뱀과 싸우며 산을 둘로 갈라 길을 내는 다섯 명의 전사의 모습입니다.
제일 위쪽 가운데의 사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검문관이 있는 자리겠지요.
저렇게 산을 갈라 여기에 길을 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명왕이 고생하며 금소를 얻기 위해 길을 열었더니 진나라 혜문왕은 기다리고 있었듯이
그 길로 군사를 몰고 들어와 촉을 멸망시키고 진나라 땅으로 만들었답니다.
작은 탐욕이 나라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 겁니다.
우리 말에 죽 쒀 개 줬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금우도가 죽이고 진나라 혜문왕이 개라는 말인가요?
어느 이야기에서는 금소가 아니라 금똥을 누는 소라고 하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욕심 때문에 나라까지 말아먹는 일이 있었다네요.
여러분은 이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나라 혜문왕이 군사를 몰아 이곳으로 들어올 때 그 잘난 다섯 명의 오정은 무얼하고 있었더란 말입니까?
산을 허물정도의 대단한 인물이라면...
지금의 관루 모습은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일부가 부서져 이듬해인 2009년에 새로 지었다 합니다.
그 후 이곳은 대대적으로 정비해 새로 산책로를 만들고 다니기 쉽도록 보수했다고 합니다.
정말 산책하기 그만이 곳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나 봅니다.
그 탐욕은 바닷물과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 무엇이 더 욕심이 나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도모하다 나라까지 털렸을까요?
여러분의 이름으로 빠떼루 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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