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짜깁기, 삼국지

2013. 1. 15.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이곳 삼대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렵니다.

앞서서 말씀 드린 대로 삼대는 가운데 동작대가 있고 양쪽으로 금봉대와 빙정대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동작대 양쪽의 두 군데로는 다리로 연결되었다 합니다.

이를 이교(二橋)라 불렀고 조조의 아들 조식은 동작대부(銅雀臺賦)라는 시를 지어

아버지를 기쁘게 한 일이 있지요. 

 

우리는 여기서 아주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삼국지연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이 지닌 허구이나 그 절묘한 연결은 박수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적벽대전을 떠올릴 겁니다.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던 조조가 그 세력이 한풀 꺾였던 사건이었지요.

여기에 작가는 아주 교묘한 짜깁기를 함으로 삼국지라는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하고

공명을 하늘이 내린 기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일을 꾸몄습니다.

 

공명이 적벽대전을 꾸며가는 대목에서 당시 유비는 그리 세력이랄 것도 없는 미미한 존재였을

것이기에 아직 연고지조차 불안하고 나와바리조차 확실한 게 없이 셋방살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주인집이 자꾸 비우라 했지만, 안면 몰수하고 버티기에 들어가 있었을 때였을 겁니다.

 

그나마 자경이라는 대인을 만났기에 빠떼루 자세로 배를 땅에 붙이고 버티기가 가능했을 겁니다. 

그때 유비는 오를 업고 점차 세력을 확대하는 조조를 견제하는 게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손권을 위시한 주유를 포함한 오나라 내부는 전쟁보다는

화친을 주장하는 세력이 주류였지요.

 

적벽대전을 앞둔 시기에 여기서 공명의 화려한 세 치 혀가 위력을 발휘하지요.

공명을 가장 공명답게 세상에 알린 사건이 바로 적벽대전에 주유를 끌어들이고

부채도사처럼 신통력을 부린 일이었을 겁니다. 

아마 이때 공명의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면 삼국지 중의 제일 화려한 이야기인 적벽대전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이때 공명이 내세운 것은 조식이 조조에게 바친 동작대부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 나오는 두 개의 다리인 이교라는 말을 교묘히 바꾼 겁니다.

 

조조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오나라에 온 공명은 오히려 주유에게 조조와 싸우지 말고

교씨 성을 가진 오나라의 미녀 두 사람만 조조에게 상납하면 조조도 군사를 돌리고

 회군해 갈 것이다.

그러니 빨리 교씨 성을 가진 두 미인을 찾으라 재촉합니다.

전투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조조의 여성관도 한몫하게 되었지요.

무슨 여성관?

바로 유부녀만 좋아하는 조조의 편력때문이죠.

조조는 유난히도 처녀보다 유부녀를 좋아하는 이상한 사내였던 모양입니다.

 

사실, 손권의 형인 손책의 부인이 교씨로 대교(大乔)라 불렀고 그 동생이 주유의 부인이

소교(小乔)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공명은 짐짓 모르는 척 주유에 재촉하니...

주유는 열을 받을 수밖에요.

주유는 부인을 무척 사랑한 젊은 장수가 아니겠어요?

그런데 자기의 부인과 주군의 부인까지 모두 조조에게 넘겨주라니 말이 됩니까?

 

그러니 두 자매는 성이 교(乔)씨로 다리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런데 동작대부에 나오는 구절 중

"동서로 이어진 두 다리가 마치 무지개처럼 하늘에 걸려있다(连二桥于东西兮,

若长空之蝃蝀)."라는 말을 공명은 "동남쪽 두 교씨 미녀를 끌어안고 아침저녁으로 즐겨보리라

(揽二乔于东南兮,乐朝夕之与共)."라고 바꿔버렸다 합니다.

 

여기서 동남쪽은 바로 동오가 자리한 곳이잖아요.

이교란 또 주유 아내와 손책의 아내 자매라는 겁니다.

이교 중 누구와 아침에 즐기고 누구는 저녁에 즐길지는 번호표로 정하면 될 것이고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두 자매의 미모에 견줄만한 여자는 없다 합니다.

이런 예쁜 여자를 공명이 세 치 혀로 나불거려 약을 올렸으니 주유도 참을 수 없었지요.

 

위의 사진은 주유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의 수채를 정탐하는 모습으로

그래도 그때까지는 수전에는 오나라를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렇게 조조의 수채를

직접 단기로 돌아보고 주유는 식겁했다 합니다.

왜?

원래 오나라의 강동은 장강을 끼고 사는 동네라 수전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오나라 제독인 주유의 눈에도 조조의 수채는 도저히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모습이라서요.

 

이날 주유는 군진으로 돌아와 앓아누웠답니다.

왜?

이번 전투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요.

그러나 이때 공명이 시 한 편을 써서 주유에 건넵니다.

 

"조조를 깨뜨리려면
마땅히 화공을 써야 하리
모든 걸 갖추었으되
다만 동풍이 없구나!"
이 글을 건네받고 주유는 병이 낫는 듯했다 합니다.

 

왜?

바로 공명과 자신이 생각한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불이라는 화(火)라는 글자였다 합니다.

화공이 일치가 바로 주유의 병을 낫게 한 겁니다.

 

주유 또한 적벽대전을 앞두고 장간을 만났을 때 시 한 편을 적어 건넵니다.

 

대장부 세상을 삶이여
공명을 이루려 함일세.
공명을 이룸이여
평생의 위로가 되리.
평생의 위로가 됨이여
내 장차 취하리로다.
취하여 어쩌려는가
미친 듯 노래 부르리.

 

주유의 속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나요?

전쟁을 목전에 두고 공도 세우고 싶고 두렵기도 하고....

차라리 대취해 불안한 지금의 마음을 달래고 싶은 심정 말입니다.

사람은 힘든 일을 마주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고 이를 디딤돌로 밟고

올라서고 싶은 도전적인 생각도 나지요.

 

그때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불어라 동남풍아~

공명의 신통력이여...

 

하늘이 내린 천하기재

오늘 위해 살았노라

 

연환계에 묶인 조조의 수채

공명의 화공에 재만 남는구나.

 

장강이 대낮 같구나~

세상을 모두 잠재우게.

 

佳人이 그때 적벽에 서서 바라보고 쓴 글인데 너무 오버했지요?

 

시인이라고 등단도 하지 않은 것들이 모두 시를 쓰고 주고받는데

건안 문학의 효시라는 조조의 시가 없어서야 하겠어요?

물론, 적벽대전을 앞두고 지은 시라 합니다.

 

어디에서 이 시를 지었을까요?

바로 조조의 본거지인 수채에 정박한 대장선 위라 합니다.

佳人이 조조가 시를 짓고 읊조리는 것을 직접 보았느냐고요?

물론이죠.

바로 조조가 시를 읊조리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사진으로 찍었으니까요.

 

술잔은 노래로 마주해야 하리 우리 살이 길어야 얼마나 되나
견주어 아침이슬에 다름없건만 가버린 날들이 너무 많구나.
하염없이 강개에 젖어 보지만 마음속의 걱정 잊을 길 없네
무엇으로 이 시름 떨쳐 버릴까 오직 술이 있을 뿐이로다

 

푸른 그대의 옷깃 아득히 그리는 이 마음
오직 그대로 하여 이리 생각에 잠겨 읊조리네
사슴의 무리 슬피 울며 들의 쑥을 뜯는구나
나에게 귀한 손님 오면 거문고와 피리로 반기리

밝고 밝은 저 달빛 어느 날에 비추임을 그칠까
그 달빛 따라오듯 이는 시름 끊을 수가 없구나


논둑길 넘고 밭둑길 건너 그릇되이 서로 헤어져 있네
헤어짐과 만남 함께 이야기하며 마음은 옛정을 떠올린다.

달은 밝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 둘러봐도 의지할 가지 하나 없구나
산은 높음을 싫어하지 않고 물은 깊음을 싫다 않으리
주공은 입에 문 것을 뱉어가며 천하의 인심 얻기에 힘썼네 

 

역시 조조는 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왜?

다른 사람보다 길게 쓰니까...

 

그러나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기 훨씬 전인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도 ‘동풍이 일어

주유를 돕지 않았더라면 깊은 봄날 교씨 자매는 동작대에 갇혀있었으리 (东风不与周郎便,

铜雀春深锁二乔)’라는 시 구절을 읊었다고 하니 중국의 이야기는 시간 개념이 없고

우기면 통하는 나라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나관중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 삼국지를 여러 작가가 짜깁기하고 넣고 빼고 찌고 굽고 삶아낸 짬뽕이 아닌가요?

 

여자는 절대로 건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디서요?

여행 시작하며 친황다오의 산해관 문앞에서요.

오삼계가 문을 열고 청나라군을 연경으로 불러들이며 명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렸잖아요.

왜 산해관 문을 열었습니까?

이자성 못난이가 부하 단속 잘못해 오삼계의 애첩인 진 아무개를 그만...

그만 뭐?

안 뒷축걸기로 자빠뜨렸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허리감아 돌리기로 넘겨뜨렸다는 말인가요.

좌우지간, 오삼계의 애첩을 덮쳐버리는 바람에 꼭지가 돌아 방어하던 문을 열어

청나라군을 연경으로 끌고 들어갔잖아요.

 

이래서 주유는 마누라 때문에 거병을 결심하고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적벽대전이 일어난 해는 208년이고 동작대가 완공된 해는 213년이라는데 

아무리 공명이 동남풍을 부르고 천기를 읽었다 해도 남이 쓴 동작대부라는

글마저 5년이나 앞당겨 주유 앞에서 읊었단 말입니까?

세월을 앞뒤로 오가는 작가의 번뜩이는 재치는 감히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이 적벽대전이 바로 조조가 일생동안 가장 치욕적으로 생각한 전쟁이었을 겁니다.

 

공명은 주유의 병을 낫게 하고 마지막에는 주유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병주고 약주고 그리고 죽음까지...

주유가 죽을 때 그랬다죠?

"하늘이시여!!! 왜 세상에 주유를 내고 그리고 공명을 냈습니까?"

그래도 주유는 못생긴 여자로 알려진 공명 마누라인 황씨보다 천하에서 미인으로 알려진

소교를 댈꼬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늘이 말하기를 "그걸 왜 내게 따지냐? 그런 일은 순전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자네 부모 춘정에 따져야지!"

 

오늘 과거의 화려한 색을 모두 벗어버리고 아주 순박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업성을 노래한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잠삼(岑參)이라는 성당시대의 유명한 시인이 있었답니다.

잠삼이 썼다는 등고업성(登古鄴城)이라는 시가 여기 있네요.

제목은 옛 업성에 올라라고 해야 하겠지요? 

 

下馬登鄴城(하마등업성) : 말에서 내려 업성에 오르니

城空復何見(성공부하견) : 성은 비어 있어 다시 무엇이 보이리오

東風吹野火(동풍취야화) : 봄바람 동풍이 불어 들불을 일으키고

暮入飛雲殿(모입비운전) : 날 저물자 비운전으로 불어 든다

城隅南對望陵臺(성우남대망능대) : 성 귀퉁이 남쪽으로 망릉대를 마주 보고

漳水東流不復回(장수동류불부회) : 장수는 동으로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武帝宮中人去盡(무제궁중인거진) : 무제의 궁인들 다 사라지고

年年春色爲誰來(연년춘색위수래) : 해마다 봄빛은 누구를 위해 오는가.

 

이 시는 무제(武帝)의 허무함을 노래합니다.

무제가 누구입니까?

바로 조조를 일컫는 말이 아니겠어요?

잠삼이 지은 시는 바로 지금 佳人의 마음과 같습니다.

말에서 내려 업성에 오르지 않고 버스 타고 삼대촌 종점에 내려 업성에 올랐지만,

바라보니 마음은 잠삼이나 같습니다.

장수(漳水)란 바로 업성 옆을 흐르는 강입니다.

 

이 시를 보니 고려 시대 길재의 시가 생각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업성은 조조의 근거지이며 그 이전에 육조의 옛 도읍인 아주 유서깊은 도시입니다.

동시에 건안 문학의 발상지라고 하네요.

그러니 한때는 중국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 지역으로 지금은 폐허만 남았습니다.

얼마 전 수천 점의 불교유적이 무더기로 발굴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곳이랍니다.

조조가 건설했다는 도시 규모가 동서로 30km이며 남북으로 20km의 대규모였다 합니다.

 

황궁과 귀족이 사는 곳, 그리고 민초가 살았던 사람 냄새나는 곳이 구분되었고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합니다.

업성을 불 지르고 장허(漳河)의 물이 범람하면서 이제 사라져버렸지만,

얼마 전부터 그 터가 지하 50cm 만 파도 발견되기 시작해 다시 복원 중에 있다고 하니

나중에는 그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나라 시절 동작대와 금봉대 그리고 빙정대라는 삼대가 있어 전략요충지로 군사를

조련하고 손님접대를 위해 거창한 연회를 베풀던 화려한 장소였습니다.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 무상한가 봅니다.

이 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업성유지를 방문하면 그 옛날의 영화는 구름처럼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무한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조조소서(燒書)라는 그림으로 이곳 관도대전에 승리한 후 조조 휘하에

있었던 관리들이 원소와 내통하며 주고받았던 서신을 발견하고 일일이 그들의 죄를 묻지 않고

읽어보지도 못하게 한 후 모두 불태우는 장면입니다.

비록, 조조 휘하에 있던 자들이 한때 원소와 내통하며 조조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원소에 알렸지만, 조조는 원소가 죽고 난 후 그런 일은 모두 의미 없는 일이라 여기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불문에 붙부쳤다는 뜻입니다.

 

이게 요즈음 특별 사면이라는 이름으로 남발하는 뻘짓과 비슷한 일일까요? 아닐까요?

이런 사내 정말 흔치 않습니다.

佳人 같으면 모두 낱낱이 밝혀 그 죄를 사돈의 팔촌까지 물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끈적일 정도로 남아있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돌아보면

그 또한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눈으로만 보아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마음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끼는 여행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어요?

우리 부부의 여행은 이런 폐허를 돌아보면서도 감동 받습니다.

바보 같은 짓일지라도 말입니다.

 

천하가 혼란하면 민초는 힘이 들지만, 영웅은 이런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는 겁니다.

만약, 이런 시기가 아니었다면, 유비는 짚신이나 만들어 파는 짚신장수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고 조조는 문이나 지키는 그런 벼슬살이를 하며 평생을 살았을 겁니다.

짚신 잘 만들면 짚신 만들기의 달인은 될 수 있지만, 영웅이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더군다나 황제라라는 직업은 유비에게 가당한 이야기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 기분도 울적한데 촉규화라는 시 한 편 더 보며 갈까요?

 

蜀葵花(촉규화) - 岑參(잠삼)

 

昨日一花開(작일일화개) : 어제 한 송이 꽃이 피었고

今日一花開(금일일화개) : 오늘도 한 송이 꽃이 피었구나

昨日花正好(작일화정호) : 어제는 꽃이 한참 좋더니

今日花已老(금일화이로) : 오늘은 이미 늙어 시드는구나

人生不得恒小年(인생불득항소년) : 인생이 항시 소년일수 없으니

莫惜床頭辜酒錢(막석상두고주전) : 상 머리에서 술 살 돈을 아끼지 마라.

請君有錢向酒家(청군유전향주가) : 그대에게 청하노니 돈 있으면 술집으로 향하게나

君不見蜀葵花(군부견촉규화) :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촉규화를 말일세.

촉규화는 우리말로 접시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