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4. 09:26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1월 14일 여행 27일째
벌써 우리 여행도 한 달이 가까워지네요.
점차 우리 몰골이 진짜 여행자로 보일 정도로 지저분해지기 시작합니다.
청두에서 정한 숙소는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편입니다.
더군다나 밤에 난방기까지 가동하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곳에만 오게 되면 빨래를 하고 싶습니다.
밤에 온풍기를 가동되니 겨울용 두꺼운 기모 바지도 금방 말라버립니다.
워낙 짐을 최소로 가지고 다니다 보니 이렇게 궁색하게 다녀야 합니다.
숙소에 세탁기도 있어 빨래하기에 좋습니다.
오늘은 두장옌(都江堰 : 도강언)이라는 곳으로 가보렵니다.
도강언으로 가려면 차점자 터미널로 가야 한답니다.
이곳 신남문 터미널에서는 도강언으로 가는 버스가 없네요.
처음에 서문 터미널이라고 알고 62번 버스를 타고 찾아갔으나 터미널은 사라지고
그곳에서 4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새로 지은 차점자 터미널을 찾아갑니다.
역시 버스는 러산대불을 갈 때처럼 수시로 출발하고 좌석도 없고 아무 곳이나 앉아 가면 됩니다.
출발 시각도 저녁 7시 30분 전에만 타면 상관없는 그런 승차권을 팔더군요.
차점자 터미널을 9시 36분에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려 딱 한 시간만인
10시 36분에 도강언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택시 기사가 달려듭니다.
미안합니다.
우리 여행은 택시는 거의 타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내버스를 이용해 도강언 경구 대문 앞까지 가려면 터미널 건물 앞에 큰길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 중앙분리대를 무단으로 넘어 건너갑니다.
이미 중앙 분리대에는 많은 사람이 오며 만든 멋진 길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길을 바로 건너면(무단횡단)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7번 버스를 타면 종점인 이퇴 공원까지 갑니다.
그곳이 바로 도강언으로 들어가는 경구 앞이라 하는데 이렇게 버스만 타고 차점자 터미널에서
모두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강언 정문까지 도착할 수 있었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동상은 틀림없이 도강언 공사를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이 서방네 부자일 겁니다.
네.. 역시 이빙 부자가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삽질도 이런 삽질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도강언 풍경구까지는 그리 먼길이 아닙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가 없어 시내버스를 타고 왔네요.
멀지 않은 곳이기에 시내구경을 하며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여기 도강언도 佳人과 함께 걸어갑시다.
사진으로 보시면 佳人의 눈으로 본 것과 같은 느낌이 드실 겁니다.
도강언도 많은 사진을 찍었기에 자세히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도강언만 들어가려면 90원이고 청성산과 연표는 160원인가 봅니다.
우리는 이곳 도강언만 보려고 합니다.
반표도 있습니다.
경구 입구에서 오른쪽을 보니 멋진 누각이 보입니다.
남교(南橋)라는 다리로 도강언으로부터 흘러오는 물길 위로 풍우교처럼 만든 다리네요.
바로 저 다리 밑으로 도강언의 물이 흘러와 시내 곳곳으로 실핏줄처럼 흘러들어간다 합니다.
이렇게 물길을 이곳으로 돌린 공사가 바로 도강언 공사의 핵심이랍니다.
여기가 도강언 경구 정문입니다.
중국은 아직 VIP에 대한 대우가 다른가 봅니다.
경구 입구에 따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평등을 기본을 하는 사회주의가 사실 더 차별화된 곳이 아닐까요?
중국은 앞으로 저 문제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겁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습니다.
입장표 가격은 90원이고 반표는 45원입니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이 반값만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곳.
이런 곳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삽질도 이런 삽질은 민초를 위한 일이고 오래도록 변치 않는 진리잖아요.
도강언으로 말미암아 2천 년 이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풍요롭게 살았을까요?
정말 행복했을 겁니다.
쿵후 팬다?
자꾸 그러고 놀리면 너도 팬다.
아주 죽도록 팬다!
쓰촨성이 바로 팬다의 고향이라고 했나요?
경구 대문으로부터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정원을 아주 잘 꾸며놓았습니다.
시간만 많으면 천천히 산책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빨리 도강언의 모습을 담고 싶어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큰길만 따라갑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가렵니다.
왜?
그래야 佳人의 눈으로 본 것을 함께 보시니까요.
분재는 중국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분수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도강언의 구조물 중 하나인가 봅니다.
가운데 네 개의 긴 쇠막대기가 보이시죠?
마치 봉체조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름이 와철이라는 쇠 방망이입니다.
와철은 내강 바닥에 박은 기둥으로 봉서와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러니 바닥에 얼마나 모래나 돌이 쌓였는가를 알기 위해 눈금을 표시한 기둥을 박아
어느 기준선 이상 모래나 돌이 쌓이면 준설작업을 하며 미리 홍수예방을 위한 기준을 삼기 위한
아주 과학적인 표준선이 그려진 기둥이라는 말입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빙이 처음 도강언을 만들 때 내강의 바닥에 돌로 만든
석마(石馬)를 묻어놓고 바닥 보수작업의 기준으로 삼았다 합니다.
정말 과학적인 관리 방법이라고 생각되네요.
그 뒤 석마보다는 더 긴 철 기둥인 와철로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현재 내강 바닥에는 네 개의 와철이 남아있는데 이 와철은 명나라 시기에 만들어 박아놓은 것이라
하며 물론 청나라 때도 만들었고 민국 시절에도 만든 게 있다고 하네요.
기원전 256년 전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의 일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 51년에 진이 서주(西周)를 멸하고 이빙(李冰)을 촉의 태수로
발령했다는데 이곳에 아들과 함께 온 이빙은 늘 물 때문에 농사짓기가 어려워하는 농민을 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이름 하여 이빙 도강언 프로젝트...
이렇게 넘실거리며 빠른 속도로 오늘도 물이 흘러들어 갑니다.
바로 이빙 도강언 프로젝트의 결정판이지요.
바로 이 지방 주변으로 흘러내려 가는 강물을 메마른 농지로 이렇게 힘차게 흘려보내
그 농지를 옥토로 만드는 일이지요.
가장 중심이 된 공사는 백장제(百丈堤), 도강어취(都江魚嘴), 금강제(金剛堤), 비사언(飛沙堰),
인자제(人字堤), 보병구(寶甁口) 공사였다고 알려졌지요.
그런 일에 이곳 모든 민초와 힘을 합쳐 만든 게 바로 도강언 수리시설이랍니다.
지금의 도강언의 가장 중요한 설계는 위의 사진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답니다.
물론 어취 위에 백장제라는 곳도 있고 금강제, 인자제가 있지만, 이는 제방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핵심 구조는 아닌가 봅니다.
상류로부터 어취라고 하는 곳이 있고 아래로 내려오며 비사언이라는 제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병구라고 부르는 물길이 농토로 흘러들어가는 입구가 있지요.
이를 통칭해 도강언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원래 이 지방은 도안현(都安縣)이라 불렀답니다.
그랬기에 이 수리시설을 처음에는 도안대언(都安大堰)이라고 불렀고요.
이를 송나라 때부터 도강언이라 불렀다고 하니 이름 또한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북쪽의 쑹판 고원으로부터 흘러오기 시작하는 민강은 이 지역에 이르면 갑자기 유속이 느려지며
느려진 강물은 강바닥에 함께 떠내려온 토사를 쌓게 된답니다.
그래서 큰 비만 오면 늘 제방을 무너뜨리는 홍수가 잦았다 합니다.
그랬기에 토사를 제거하고 그 물길을 농업을 위한 용수로 사용하는 방법을 현실화한 게
바로 도강언 수리시설이지요.
제일 먼저 민강(岷江) 가운데에 인공으로 제방을 쌓는 일입니다.
이 제방의 역할이 바로 물길을 두 군데로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예전대로 강을 따라 내려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제방 때문에 물길을 바꾸는 일이지요.
이 제방의 모습이 바로 고기 주둥이처럼 생겼기에 어취라고부르는 부분입니다.
원래 물길을 외강이라 부르고 새로 어취부터 갈라져 들어오는 물길을 내강이라 부른답니다.
이렇게 어취에서 갈라져 들어온 물길은 비사언이라 부르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비사언은 강물의 양이 적당하면 보병구쪽으로 흘러들어 농토로 들어가며 실핏줄처럼 농토를 적시며
흘러가고 만약 홍수가 나거나 물의 양이 많아지면 비사언이라는 언덕을
자연스럽게 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왜?
직선으로 넘어가게 얕은 턱을 만들었으니까요.
비사언에서 넘친 물은 다시 강의 본류인 외강에 합쳐지게 되며 그대로 흘러 하류로 내려갑니다.
이때 만든 턱 때문에 바로 토사가 쌓이게 되고 물이 없을 때 수시로 파냄으로
언제나 토사가 쌓이는 것을 예방한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보병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보병구가 바로 농토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입구인 셈이죠.
그러니 이곳으로 흐르는 물의 양은 거의 일정하다는 점입니다.
홍수가 나면 바로 보병구 입구인 비사언에서 물이 넘쳐 다시 강으로 흘러가니까요.
그다음 보병구에서 또 한 번 물이 넘치도록 각도를 틀었기에 농토를 흘러들어 가는 물은 홍수가
났을 때라도 수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과학이 여기 구조를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도강언을 구경한다면 그 지혜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삽질도 이런 삽질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니 도강언은 지금까지 내려온 유일한 댐이 없는 고대 수리관계시설인 셈입니다.
이게 수백 년 전의 일도 아니고 이미 2.270여 년 전에 만든 것이기에 더 빛이 나는 게 아니겠어요?
이로써 쓰촨을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이런 땅을 유비가 종친의 뒤를 봐준다는 명분으로 들어와 홀랑 삼켜버렸습니다.
원래 깡패 세계에서도 자릿세만 받고 장사할 수 있도록 뒤만 봐주지만,
가게까지 빼앗는 일은 세상에 없는 법입니다.
그냥 구경하는 것보다는 이런 내용을 알고 구경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왜?
금쪽같은 내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까요.
자 이제 내일부터 하나씩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들어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부부가 처음 만나 함께 살아가는 힘은 사랑의 힘인가 봅니다.
연인처럼 애인처럼...
그러나 나이가 들어 함께 여행하다 보니
친구같이 변해 우정이 생깁니다.
이제는 언제나 곁에 없으면 걱정이 되고 손을 뻗으면 늘 손에 잡혀야 안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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