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9.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서안은 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보입니다.
지금이야 서안의 힘은 도읍으로는 부족하지만, 휴식기에 들어간 지금 이제 또 세월이 지나면
다시 도읍으로 발돋음 할지 모릅니다.
이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예전에도 서안은 그랬으니까요.
이 소리를 중국 정부에서 들으면 식겁하지 않겠어요?
중국 최초로 농경문화가 이 부근에서 시작되었고 그 역사가 6천 년이나 되었다니 서안의 힘은 대단합니다.
위로는 황하의 지류이자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강태공의 낚시터라는 위하가 흘렀기에 물고기를 잡았고
아래로는 원시삼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냥이 가능한 곳이기에 인류가 처음 문명을 꽃피우기는
천혜의 조건인 듯합니다.
이 지역을 관중 평원이라 한다는군요.
따라서 도읍으로써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고 방어가 용이하기에 일찍 나라가 자리 잡았을 겁니다.
공명도 북벌을 위해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여러 차례 장안을 노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요.
날씨는 내륙이라 역시 시계가 넓지 않습니다.
호흡기에는 나쁜 곳이라 생각됩니다.
서안의 지도를 보면 참 반듯합니다.
성곽도시라 무척 계획적으로 지어졌고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 아테네 그리고 카이로와 더불어 서안은 세계 4대 고도의 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랜 세월 도읍으로 있다 보니 도시 규모도 제법 클 뿐 아니라 반듯하게 도시를 만들었네요.
오늘은 서안의 중심이라는 서안성벽을 보려고 합니다.
위성지도로 보아도 서안성은 중국의 고성 중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성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전체 길이가 13.7km 정도라 하네요.
높이는 12m이며 폭은 사다리꼴로 아래가 조금 넓어 15-18m 정도이고 위는 12-14m 라 하네요.
성벽 밖으로는 해자를 만들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쉽게 함락되지 않도록 대비했네요.
문은 동서남북으로 큰 대문을 만들고 사이에 또 작은 문을 만들었네요.
그야말로 사통팔달이 되도록 말입니다.
성문 위로는 성루를 만들어 외부의 동태를 살피기 쉽게 하였으며 유사시 지휘부로도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드나드는 성문 밖으로 반달모양의 월성을 만들어 외부로부터 성문이 쉽게 노출되지 않을뿐더러
침입한 적은 그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이 잦았던 나라의 성벽 외곽은 일본이나 여기처럼 해자를 파서 전쟁에 대비했지만,
신의 도시라는 앙코르 와트의 해자는 같은 해자라도 의미가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구분 선이라는 게 다르네요.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 때 축성한 것이라 합니다.
역시 중국의 명나라는 성벽 쌓기의 지존입니다.
참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네요.
성의 축성은 구운 벽돌을 석회와 찹쌀과 흙을 섞어 접착제처럼 사용하여 쌓았다 합니다.
아직도 견고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벽돌사이를 보면 흰색이 희끗희끗하게 흘러내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명나라는 성 쌓기에 목숨을 건 나라였습니다.
만리장성 대부분이 명나라 때 보수되고 새로 지어졌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명나라 6대 황제라는 정통제 영종이 몽골계 부족에게 포로로 잡혀간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명나라는 황제가 오랑캐에게 잡혀 볼모가 되니 새로운 황제를 올립니다.
오랑캐는 중원의 황제를 볼모로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명나라에서 바로 다른 사람을 황제로 올려버렸다네요.
그러니 잡아온 황제는 개털이 되었고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다시 돌려보내 줍니다.
세상에 중원의 황제가 오랑캐라고 비웃었던 민족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네요.
이러니 성벽을 쌓는데 국력을 모두 쏟았겠지요.
쓸모없어진 영종은 덕분에 다시 돌아와 나중에 또 황제 자리에 올랐다니 두 번 황제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네요.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입니다.
불행하다고 언제나 항상 불행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성벽 위에 올라가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성벽 위에 오르면 걸어도 되고 전기차를 타도되고 자전거를 빌려 타도됩니다.
동서로 2.6km이고 남북으로 4.2km라 합니다.
성벽 위는 제법 넓어 4차선 도로는 될 듯합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망루를 세웠고 전쟁에 대비해 여장이라는 성가퀴가 만들어졌네요.
성가퀴라는 것은 적의 공격에 몸을 숨기고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담장과도 같은 것이지요.
성 밖으로는 해자를 파고 물을 채웠기에 공성전에서 무척 유리한 입장에서 싸웠을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해자를 전쟁에 대비해 파 놓았지만...
어느 나라는 인간과 신을 구분하는 의미로 해자를 파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자라 해도 이렇게 틀리나 봅니다.
오늘도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옛날 사진을 재활용하며 한 꼭지를 썼습니다.
장안성은 옛날 사진이나 지금 사진이나 다를 게 없으니 상관없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완벽한 형태로 옛 성이 남아있는 곳도 드물 겁니다.
서안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
정말 서안이라는 도시는 예전 중국의 문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박물관과도 같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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