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흐몽족과 중국의 묘족

2025. 5. 2. 04:002024 베트남 종단여행

 

 

베트남 사파 지역에는 많은 소수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지만, 주로 흐몽족이 52% 정도로

제일 많은 듯한데 그런데 흐몽족은 중국에서 보았던 묘족과 같은 뿌리라고 합니다.

흐몽족 외에도 부근의 다른 민족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묘족은 스스로 전쟁의 신이라는 치우(蚩尤)를 조상으로 하고 그 후손이라고 하는데

그 옛날 치우와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와 지금의 화북성 탁록(涿鹿)이라는 곳에서

싸움을 벌여 치우가 패함으로 후손들이 남쪽으로 피신하여 지금의 구이저우 성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오히려 치우가 황제에게 이겼다고 기술하고 있으니...

이들은 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묘족의 족보를 살펴보면

재미있는데 이는 묘족만의 법칙은 아니고 주변의 소수민족이 이런 이름을 사용하지요.

 

 

제일 위에 보이는 치우로부터 시작된 족보는 자연부명(子連父名)이라는 것으로 아버지의

이름 끝 글자를 아들은 이름의 첫 글자로 사용한다는 점으로 예를 들면 아버지 이름이

홍길동이었다면 아들은 아버지 이름의 끝 글자 동을 제일 앞에 사용해 동철수라고 한다는

독특한 족보인데 청나라가 개명하라고 할 때까지 285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온 족보는 중국 청나라 때 소수민족을 탄압하기 위해 이 일대를

위의 그림처럼 토벌했을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는 일이 놀랍습니다.

사실 중국의 대부부 가문은 족보조차도 없었을 시기였잖아요.

 

 

전쟁에서 승리했던 황제(黃帝:왕이라는 의미의 황제가 아님)는 지금 화하족의

조상이라고 하고 치우는 복희, 소호금천과 함께 동이(东夷)의 조상이라고도 한다네요.

그렇다면 이곳에 사는 흐몽족은 우리와는 아주 먼 친척(?) 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는 과학적인 기록이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의 오제본기라는 곳에 있답니다.

당시에는 치우의 후손들은 주로 남쪽지방인 장강 유역에 살았기에 남방 민족이고

황제의 후손들은 주로 황하 유역에 거주했기에 중원지방의 화하으로 본다네요.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 흩어져 사는 묘족, 흐몽족 등은 구려족의 후예를 자처하며 

치우를 민족의 조상으로 추앙한다 하고 뿐만 아니라 흔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걸쳐 살아가는

소수민족이라고 부르는 많은 민족도 사실은 뿌리는 같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래서 이들을 동양의 집시라고 부르기도 한다지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 싶습니다.

가장 먼저 기록으로 남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라는 사람도 기원전 90년 경 사람인데

기원전 2.500여 년 전에 있었다는 전설을 사기에 남겼지요.

 

 

그는 그의 저서에서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을 듣지 않자,

이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징발해 탁록(涿鹿)의 들에서 치우와 싸워 마침내

치우를 잡아 죽였다.”(蚩尤作亂,不用帝命。於是黃帝乃徵師諸侯,

蚩尤戰於涿鹿之野,遂禽殺蚩尤.)라고 신화를 인용해 기록했으니 믿기에는...

 

 

가장 최근에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을 때 많은 박해를 받아

고난의 행군을 하며 산속으로 숨어들어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산비탈은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니 힘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싶습니다.

 

 

오래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묘족의 집성촌인 천호묘채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묘족은 신기하게도 그 조상을 우리가 잘 아는 전쟁의 신이라는 치우(蚩尤)를 조상으로

모시는 민족으로 베트남 북부로 이주해 사는 몽족(또는 흐몽)과 같은 민족이라고 하네요.

 

 

흐몽족(또는 몽족)의 뿌리는 지금 중국의 구이저우 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널리 퍼져 살아가는 묘족(苗族)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의상을 보면 바로 같은 민족임을 금방 알 수 있지요.

 

 

원래는 장강 유역에 살았는데 탁록대전에서 화하족의 시조라는 전쟁에서

패함으로 후손들이 남으로 내려오며 지금 구이저우 성에 모여 살았고 

또 일부는 넘서쪽으로 이동하며 여기 베트남 북부지방에도 산다네요.

 

 

묘족은 대부분 산악지대에 숨어들어 살았기에 지형이 험하여 왕래가 뜸해 "5리마다 습관이

다르고 10리마다 풍습이 다르다.(五里不同俗, 十里不同風)"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산속에

살았고 묘족의 전통 건축물은 주로 목재로 지어지며,

특히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조각이 특징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상인데 묘족의 전통 의상은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자수로

장식되어 있으며, 특히 여성들의 의상이 눈에 띄고 그리고 머리에는 화려한 장신의 은으로

만든 은화관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은으로 장식하는 이유는 또 침공을 받으면 가장 값비싼

귀중품인 은제품을 몸에 걸치고 깊은 산속으로 피난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합니다.

 

 

묘족은 음악과 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갈대로 만든 전통 악기인

루성(로생:蘆笙)이라고 부르는 취관 악기(吹管樂器)를 연주하는 음악이 유명합니다.

또한 묘족의 춤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여기도 이런 깊은 산속으로 스며들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네요.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많은 주거지가 있지만, 이런 민족은

너른 뜰이 있는 지역에서 살면 불안해할까요?

 

 

여러 장의 사진에 보이는 처자들은 중국 구이저우 성에 모여사는 묘족으로

이들의 전통의상은 대단히 화려합니다.

물론, 이들은 이런 복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겁니다.

 

 

중국 시지앙이라는 곳에 가면 가장 많은 묘족이 모여사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산비탈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천호묘채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묘족이 모여사는 마을로 가구수가 천여 채나 된다고 하여 붙인 마을이름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곳에는 모여드는 관광객을 위해 매일 두 차례이상 공연을 하는데

이들은 공연을 위해 사진처럼 아름다운 복장에 은화관으로 머리에 쓰고

목에는 은목걸이를 하고 나옵니다.

은화관은 마치 소의 뿔처럼 생겼는데 치우를 상징하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베트남의 소수 민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