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2020. 9. 18. 06:00독일·오스트리아 2018/베를린

 

이 잘생긴 군인은 누구일까요?

우리 눈에도 익은 미군의 모습입니다.

사진 속의 미군은 제대로 초상권 행사라도 하고 있을까요?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사진을 통해 보았던 아주 유명한 장소지요?

분단의 상징처럼 생각되는 체크포인트 찰리는 많은 여행자가 찾는 명소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보는 모습은 그저 그런 곳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미군이 경비를 섰던 곳으로 동서 베를린을 오갈 때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며

베를린은 미국 외에도 소련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네 나라가 서로 나누어 관리했던

지역으로 한때는 위의 사진처럼 서로 탱크를 몰고 와 대치도 했었지만,

소련에서 먼저 철수하는 바람에 다시 평온해지기도 했다네요.

 

 

체크포인트 찰리는 미국의 관할 지역으로 여기에 동베를린으로 드나드는

국경 검문소를 세웠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저기 사진 속의 미국인 병사의 이름이 찰리일까요?

당시 국경에는 세 개의 검문소가 있었는데 기자나, 외교관 그리고 고위 관리들은

협의에 의해 이곳으로만 드나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세 개의 검문소는 프랑스 관할 지역에서 동베를린으로 드나드는 제일 위의 검문소는

체크포인트 알파라고 불렀고 영국이 관할했던 검문소는 가운데 있어 체크포인트

브라보라고 불렀고 미국 관할인 이곳은 제일 아래 있어 찰리가 되었다네요.

여기 베를린에서는 알파와 브라보를 재끼고 찰리가 갑입니다.

 

 

그러나 통일 후 철거해버렸는데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2008년에

위의 실제 모습으로 다시 설치했다고 합니다.

약간의 돈을 내고 검문소에 근무했던 복장을 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2유로가 필요합니다.

여권을 제시하면 당시의 출입국 도장도 찍어주는데 5유로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은 동베를린의 출입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숨어 넘나들었던 모습이 자료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장벽이 있었던 그때는

위의 사진에 흔적으로만 남아 목숨을 걸고 너머 다녔을 곳이지요.

 

 

주변에는 돈을 내고 들어가는 냉전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지만,

길거리에도 많은 사진이 무료로 전시되어 있어 그것만 보아도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냉전박물관에도 내부로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지만

외부에 전시한 사진만 보면 무료이네요.

 

 

사진만으로도 그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위의 사진은 동베를린을 탈출할 때 사용했던 방법들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은 그나마 탈출에 성공했던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면은 탈출에 실패해 동독 경비병에

끌려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당시 장벽이 지나갔던 흔적을 보여줍니다.

 

 

부근에 동독에서 생산했던 트라비 자동차 박물관도 있는데 성능은 형편없어

사라져버렸지만, 많은 사람에게 올드카로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위의 사진처럼 직접 차를 운전해 시내를 돌아보는 트라비 투어도 있고

박물관에서는 트라비 차의 모형이나 기념품도 판매한다고 합니다. 

 

 

 

정을 들어 장벽을 헐고...
그 자리에 장벽의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더라고요.

 

 

당시 세상을 좌지우지했던 우리도 알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지요.

왼쪽은 처칠 영국 총리이고 가운데는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입니다.

오른쪽이 소련의 스탈린이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포츠담 회담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렸다지요.

전후 독일과 독일의 위성국가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회담이었다고 하네요.

우리와 연관이 있는 극동 문제와 폴란드를 제외한 동유럽  문제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후인 미국은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8월 9일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여함으로 8월 10일 일본은 드디어 항복을 선언하게 됨으로

세계 제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