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오 마지막 이야기

2016. 8. 24.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이 대역사를 하는 데 불과 8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리 노예를 동원해 만들었다고 해도

로마의 건설책임자는 당시의 공사 기술과 현장을 조직적으로 장악했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아무리 노예가 많았다 해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장악하지 못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

로마는 그렇게 도시를 만들 때마다 정해진 시공에 따라 동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베스파시우스 황제는 콜로세오의 완공도 보지 못하고 사망하자 그의 아들 티투스가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완공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며 왜 그리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세기의 역사 유산인 콜로세오는 인간의 잔인한 피의 역사 위에 쓴 구조물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기다리던 로마 시민을 위해 완공 기념 축제를 100일간이나 벌렸다 하네요.

이 축제 기간 이곳 콜로세오에서 죽은 맹수가 500마리가 넘었고 검투사 또한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름다운 유적인 콜로세오는 잔인한 피를 보며 시작했던 유적이었나 봅니다.


높이 48m, 짧은 지름이 155m이고 긴 지름이 187m며 둘레가 527m인 4층 건물입니다.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으로 생긴 건축물이죠.

타원형의 장점은 원형보다 시야감이 더 좋다는 점이죠.

 

각층에 80개의 아치를 3층까지 총 240개의 아치를 만들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합니다.

로마 인근 티볼리에서 석회석을 가져오고 도시 여러 곳에서 벽돌을 구워 콘크리트와 벽돌을 이용해 공기 단축을

했으며 외벽에는 대리석으로 붙여 호화로운 건축물로 만들었지만, 후일 요새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화재와 지진으로 콜로세오가 일부가 붕괴하여 그 기능을 하지 못하자 얼씨구나 좋다 하고 이곳 외벽을

장식해  붙여놓은 대리석은 산 피에트로 성당을 짓거나 다른 건축물을 지을 때 모두 떼어내어 갔다 합니다.

그래서 콜로세오를 채석장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도 생겼다네요.

 

어디 여기뿐인가요?

로마의 심장이었던 포로 로마노는 어떻습니까?

이곳도 그때는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 종교의 중심이 아니었겠어요?

 

로마가 사라진 후 이곳도 채석장이 되어 힘 있는 사람이나 종교기관이 쓸만한 석재나 청동은 모두 가져갔다지요.

그러니 지금 남은 것은 별 쓸모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원래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곳에서 300여 년간 피비린내 나는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진 현장입니다.

너무 오래 할퀸 상처 때문에 건물 자체도 할퀴고 말았습니다.

 

수용인원은 5만에서 7만 명 정도로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이나 1층 아치에 출입문 표시를 로마 숫자로

적어두어 이들이 퇴장에 걸린 시간은 30분 이내였다고 하니 얼마나 동선을 생각하고 지었나 알 수 있지요.

과학적으로 계획하고 지었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위의 사진은 1층 아치입니다.

아치 위를 보시면 그곳에 아직도 로마 숫자가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렇게 관중의 출입까지도 세밀하게 염두에 두고 문을 만들었다는 말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1층은 도리아식으로 황제나 토가를 입은 원로원을 위한 자리배정이었고 2층은 이오니아식으로

귀족과 무사 계급의 자리였고 3층은 코린트식으로 로마 시민권자고 4층은 좌석이 없는 입석으로 운영하여

여자나 천민이나 노예 계급이들어갈 수 있게 했답니다.

층별로 건축 양식을 달리했고 이렇게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답니다.

 

햇볕이나 비가 올 때는 천장을 개폐시킬 수 있는 벨라리움이라는 천막 지붕을 설치했다네요.

우리는 얼마 전에 목동 경기장을 개폐식으로 지었는데...

바닥은 나무를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덮었고 

이런 원형 경기장을 이탈리아어로 아레나라고 한다는데 이는 라틴어로 모래를 아레나라고 한데서 유래했다지요?

 

콜로세오를 보는 방법은 한 바퀴 돌아보는 방법이 좋습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두 다른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낮보다는 밤이 좋습니다.

조명을 받은 밤의 콜로세오는 신비감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들어와 보면 밖에서 본 것보다 폐허 정도가 더 심하네요.

마치 로마가 패망한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

그렇다 보니 관객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정해 그 길로만 다닐 수 있고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없도록 했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들은 이곳 콜로세오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유리병이나 유리잔도 보이고 구리로 만든 숟가락도 보입니다.

심지어는 닭 뼈도 보인다 하니 이런 것들이 관객이 사용하다 버린 것이지 아니면 검투사들이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이들의 모습을 유추할 수는 있지 않겠어요?

 

그러나 폐허보다 더 가슴아픈 일은 낙서를 보는 일입니다.

그것도 한글 낙서 말입니다.

이런 낙서를 보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이곳에 글을 남겨 훗날 자식 손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기에 가문의 영광일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런 유적에 오면 늘 낙서를 대하게 됩니다.

우리 한글이 없었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늘 아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유명한 유적이 있는 곳까지 올 정도가 되면 그래도 상식이 통할 사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