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스톤과 스카라베, 이집트 박물관 7
이집트 박물관을 구경하다 보면 소장품이 대부분 수 천 년이나 지난 것인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모습이고 머리 스타일 등 모두가 전혀 오래된
모습이 아니기에 누군가 하여 보았더니 이 사람이 바로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에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인
샹폴리옹이라고 하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돌덩어리인데 왜 이게 중요한지 그 이유는 샹폴리옹이 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의 이 석비의 글자를 읽어 냄으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었다고 하여 유명한데 사진에 보듯이 세 종류 글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로제타 스톤의 원본은 지금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정말 있어야
할 곳은 이집트 박물관에서는 이렇게 겨우 모조품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니...
이런 소중한 것은 이집트로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로제타 스톤은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나일강 하구에 있는 로제타 마을에서
전투를 대비해 진지를 만들 때 발견한 비석조각으로 로제타 스톤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그러나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이 돌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답니다.
위의 사진은 로제타 스톤이 발견되었던 라시드에 세워진 모조품입니다.
로제타 스톤은 동일한 내용의 글을 제일 위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로,
그 아래는 이집트 민중문자 데모틱으로 그리고 제일 아래는 고대 그리스어로 적어 놓았는데
세 가지 글자가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글자로 새겼기에 대조하며
그 해독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96년에 새긴 로제트 석비의 내용은 이집트 각지에서 모인 사제들이 겨우 12살 된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피라오 즉위를 축하하고 왕의 공덕을 기리고 왕이 국가와 특히 신전에
베푼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우즈 대왕을
따라왔던 그리스 출신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당시 이집트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이민족의 새로운 왕조를 세운 장본인이기에 그 왕조에서는 고대 그리스 글자를 사용했기에
이렇게 세 가지 글자로 적었던 것이지요.
덕분에 그동안 많이 알려졌던 고대 그리스어를 기본으로 놓고 위의 두 가지 글자를
비교하며 옛 이집트 상형문자를 쉽게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고대이집트
상형문자는 워낙 많이 남아있기에 후대에 와 누군가에 의해 해독은 되었을 겁니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돌에 새긴 글자의 원본을 여러 장의 탁본을 뗘 관심 있는 학자에게
배포하고 연구하게 했는데 이에 토마스 영(Thomas Young)이라는 언어학자가 고대
이집트 글자는 상형문자라 중국의 한자처럼 표의문자로만 접근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네요.
그러나 토마스 영은 겨우 카르트슈(cartouche)라고 부르는 바닥에 받침대처럼 생긴
타원형 틀 안에 쓴 글자는 파라오의 이름이라는 것은 밝혀냈으니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지요.
그리고는 골치 아픈 해독에는 손을 놓고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네요.
위의 사진은 람세스 석상으로 오른쪽 어깨에 자랑스럽게 람세스라고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비록 로제타 스톤은 빼앗겼지만, 프랑스는 빼앗기기 전에 이 비문을 잉크 및 석회로 된
탁본을 떠서 프랑스에 있는 그리스어 전문가에게 보내서 번역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에 프랑스 샹폴리옹은 이집트 상형문자가 표의문자(뜻글자) 외에도 표음문자(소리글자)도
섞여있다는 전제하에 접근해 해독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니
발상의 전환이 위대한 일을 하게 되었네요.
당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보면 그림글자나 뜻글자로만 보았을 텐데...
상형문자로 보면 글자가 참 예쁩니다.
이 글자가 3.500여 년간이나 실생활에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관광용 글자로만 다시
사용되는데 중국의 갑골문이 기원전 1200년 경에 시작되었으니
약 3200여 년 정도 사용 중이네요.
이번에도 글자가 새겨진 석비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카노푸스 법령을 새긴 석비로 여기도 세 가지 언어로 새겼는데 기원전 238년 3월 7일
프톨레마이오스 에우에르게테스와 그의 배우자 베레니케를 기념하여 사제회의에서
공포되었다고 하며 1866년 타니스(지금의 산알하자르알키블리야)에서
법령으로 반포한 사본 2점이 발견되었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를 고대 이집트어 해독에 있어 로제타석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법령의 내용은 정부의 캠페인으로 기근 구호 종교문제 등을 논의하고 사원에는
파라오가 기부를 하고 사원은 파라오를 성심껏 모신다는 윈윈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석을 1, 2. 3등급의 모든 사원에 세운다는 내용이라고 하니 이 석비도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일조를 한 셈으로 이런 내용을 살펴보면 그때도 파라오는 사제와의
힘겨루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서로가 경우에 따라 뭉치거나 반목하는 사이로 보입니다.
결국, 파라오를 사제들이 인정하고 파라오는 사원에 경제적으로 지원했다는 말이 아닌가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좌에서 우로 쓸 수 있고 반대로 우에서 좌로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위에서 아래로도 쓸 수 있는데 아래서 위로는 쓸 수 없다고 하니
우리 한글이나 한자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이번에는 쇠똥구리나 풍뎅이(scarab beetle)로 보이는 스카라베인데 이집트에서는 이 조차도
존중받고 있는 곤충으로 파라오와 태양의 영원한 부활을 상징한다고 하며 다산과 풍작의
상징으로 인식한다고 하는데 쇠똥구리가 둥글게 굴리는 모습을 보고 이집트 최고의 신인
태양신 라(Ra)를 연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쪽에 보이는 쇠똥구리 조각품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마우스로 보였거든요.
수 천 년 전에 고대 이집트인은 이미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는지 알았거든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에게 아이스크림과 와플을 공양하는 게 아니라 와이파이 안내판이 아닌가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도 데이터 대신 와이파이를 즐겨 이용했나 봅니다.
쇠똥구리 모습을 한 스카라베가 태양을 밀어내면 달이 뜨고 달을 밀어내면 태양이 뜬다고
믿었으니 아마도 쇠똥구리가 동그랗게 만들어 굴리는 쇠똥이
둥근 태양처럼 보이기에 그럴까요?
태양신 라(Ra)의 운반자로 생각했지 싶어 쇠똥구리도
이곳에서는 당당하게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라(Ra)의 다른 시간대의 신인 여명의 신 케프리는 쇠똥구리 얼굴을
하기도 하는데 하토르 여신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이집트는 신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가야
여행의 도움이 되니 이집트는 여행하기에 만만한 곳이 아닌가 봅니다.
위의 사진처럼 카르나크 신전에 가면 돌로 만든 아주 커다란 쇠똥구리 조각을
볼 수 있는데 그 주위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는 여행자 대부분이 돌고 또 돕니다.
누가 만든 속설이지 세상에는 이런 맹랑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어느 동물도 하지 않는 일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위의 사진을 보면 미라의 석관 위에도 수호장식으로 만든
쇠똥구리인 스카라베의 모습이 있네요.
이것은 부적으로 미라의 가슴에 얹어두기도 한다네요.
스카라베는 이집트에서 위의 스카라베 양쪽에 보이는 호루스의 눈 우자트와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와 더불어 수호부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뱀의 탈피를 보고 부활을 상징한다고 무덤에 많이 그려있어
그런 내용을 알고 보면 이해가 쉽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샹폴리옹은 이집트문자 해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큰 진척이 없었다는데 왜냐하면 그도 그 이전의 여러 연구자와 같이 그림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이지 발음을 나타내는 기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네요.
그러나 그는 1822년에 돌연 본인의 주장을 바꾸어 그림들이 발음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며 해독에 급진전을 하게 되었다네요.
그러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모두 섞여있었기에 쉽지 않았다는
의미였니 예를 들면 사자 그림을 보고 사자라고 읽기도 하고 사자처럼 위험하고
용맹하다는 의미로도 읽는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