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우스 성당(Katedrala Sv. Duje)과 닌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in)
열주 광장에는 높은 종탑이 있는 성 도미니우스 성당(Katedrala Sv. Duje)이라고 있습니다.
원래 성당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황제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한 영묘로 만든 자리에
성당을 후에 지었다고 하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
개의 사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 개는 잦은 난으로 파괴되어 사라지고 하나만 남았답니다.
바로 그 하나만 남은 자리에 그마저도 없애고 성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8세기경으로 스플리트 주민들이 이곳에 성당을 지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이유가 가톨릭을 박해한 황제에 대해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내부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황제와 부인을 상징하는 벽 장식 조각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무슨 촬영이 있는지 우리 보고 잠시 사진 몇 장만 찍고 나가라고 해서...
그나마 영묘로 만든 곳이라 이런 조각 작품은 남겨두었나 봅니다.
성당을 건립한 후 주민들은 이곳을 성 도미니우스의 유해를 봉헌했고
성당 이름도 성 도미니우스 성당으로 바꿨다네요.
이 과정에서 영묘 안에 있었던 초상이나 유품 등은 박살이 났을 테고 안에
모셔졌던 그의 석관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톨릭을 박해했더라도 황제는 이 지역 고향 사람이 아닌가요?
어디서 막 굴러먹다가 굴러들어온 듣보잡이도 아니고...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지위까지 올라갔으면 마을을 빛낸 위인이라고
자랑해야 할 텐데... 그래도 주민들이 너무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 도미니우스는 달마티아 주도인 살로나 지방의 주교였다고 하며 스플리트의
수호성인으로 존중받고 있다고 하며 그런데 재미있는 사연은 가톨릭을 박해했던
대표적인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박해해 참수했던 성 도미니우스의 유해를
자신이 묻힐 장소에 만든 성당에 대신 모셔져 있다는 말이잖아요.
또한 황제가 쉴 영묘 자리는 그가 박해했던 가톨릭 성당이 되었고요.
정말 이 동네 주민들의 뒤끝이 대단하네요.
사람 팔자 정말 모릅니다.
죽어서까지도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우리 말에도 있기는 하지만...
죽 쒀서 개 줬다는 우리 말도 있는데 그런 말은 너무 심한 말이겠지요?
원형으로 배치한 8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황제와 그의 부인이었던 프리스카의 부조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제단은 성 스토샤 제단으로 부른다는데 시베니크 대성당을 지은
유라이 달마티나츠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천사 문양의 조각으로 보이는 띠로 둘러진 천장 부근의 돔도 멋지네요.
성당의 내부는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고 제법 아름답고 웅장하게 장식했습니다.
성당 입구 문에는 1214년에 만든 떡갈나무 문에 예수의 생애를
모두 28장면으로 나누어 새겨두었답니다.
60m 높이의 종탑에 오르면 스플리트의 전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마르얀 언덕(Marjan Forest Park)에 오르는 것으로 대치했습니다.
이곳이 고향이라고 궁전까지 지어가며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다 죽고 난 후
영묘 자리 하나 마련해 두었는데...
그때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고 고향의 꿈동이었고 자랑이라고 플래카드를 만들어
스플리트를 도배했을 텐데...
황제가 죽어 자신이 묻힐 영묘 자리도 빼앗기고 말았으니 딱하게 생겼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너무 헛심만 쓰다 갔나 봅니다.
이렇게 시작한 궁전 건축은 시대가 변하며 계속 증축되거나 변경됨으로 역사의
여러 양식을 모두 안고 있는 그런 모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주 가치 있는 곳이 되었네요.
그러나 황제가 죽은 후 로마는 점차 힘을 잃어갔고 쇠퇴의 길을 걸으며 이곳 궁전 또한
폐허로 변하기 시작하며 그 후 이민족의 침입으로 살로나 지방에 살던 주민이 이곳으로
집단으로 피난 오며 주거처가 마땅하지 않아 폐허로 변한 이곳 궁전에 집단으로 들어와
살게되며 이때부터 이곳은 궁전이었지만, 일반 주민이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북쪽의 황금의 문으로 나가면 그 앞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단히 큰 청동상이 보입니다.
자세가 조금은 이상한 자세지만요.
이 사람이 바로 닌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in)라고 합니다.
닌의 그레고리우스라는 이름은 부근에 있는 소금 산지 닌(Nin) 출신의
그레고리우스 주교라서 그리 부르나 봅니다.
처음으로 크로아티아 언어로 성경책을 만든 인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어려운 라틴어에서 벗어나 크로아티아어로 성경책을 만들었기에
눈과 귀를 틔워준 인물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따라서 그를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네요.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4.5m로 대단히 크네요.
왼손에 그가 크로아티아어로 편찬했던 성경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내가 만든 크로아티아어 성경이야!" 하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네요.
그레고리우스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지나며 꼭 만지고 지나가기에 반짝거립니다.
저러니 벌써 발톱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가락마저도 사라지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스플리트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이 있어 여기에 연결합니다.
짧은 시간에 스플리트 여행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