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 行宮)

佳人 2017. 10. 21. 09:00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구경할만한 곳 중 한 곳이 행궁(行宮)입니다.

행궁이란 임금이 한양의 궁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머물 곳을 말한다네요.

화성 행궁도 있지요,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 때 머물던 곳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나라 안에 급박한 일이 생겼을 때 임금이 임시로 거처를 옮겨

피난하기 위한 곳이라네요.

 

실제로 이곳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가 병자호란 때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47일간이나 싸우며 버틴 곳이죠.

그 후에도 이곳 행궁은 여러 임금이 여주나 이천 등에 있는 여러 능을 가기 위해

능행길에 올랐을 때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네요.

 

우리나라에 여러 행궁이 있지만, 이곳 남한산성의 행궁만이 의의 사진에 보이는 좌전이라 부르는

종묘와 사직이라고 부른 우실을 두고 있는 곳이랍니다.

이는 주례에서 말하는 좌묘우사라고 라는 종묘사직을 갖춘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유사시 임시정부가 거처할 곳이라는 의미겠지요.

 

중국의 도성 건축 원리는 그들이 교과서라고 생각하는 주례라는 책에 나오는

동관 고공기의 도성 구성에 관한 원리에 따라 만들었다 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만든 게 아니라 원칙에 따라 만들었다 합니다.

 주례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자기들이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에 얽매여 살아가잖아요.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匠人營國, 方九里, 旁三門, 國中九經九緯, 經涂九軌, 左廟右社, 面朝後市, 市朝一夫'라고

기록이 남아있다는데 그 의미는 '왕의 도성은 사방으로 길이가 9리이고 각 변에는 문을 세 개씩 둔다.

 

성 안에는 동서와 남북방향으로 각각 9개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의 너비는 아홉대의 수레가 나란히 서서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가운데 왕궁을 두고 동쪽에 종묘를 두고 서쪽에 사직단을 둔다.

그리고 왕궁 앞으로는 국가의 관청을 두고 뒤로는 시장을 배치한다.

시장과 조정은 일 묘 즉, 사방 백 보의 넓이로 한다.'라고 한다네요.

 

그러니 첫째 중앙궁궐(中央宮闕), 둘째 좌묘우사(左廟右社), 셋째 전조후시(前朝後市), 넷째 좌우민전(左右民廛)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러한 룰은 중국에서는 도성을 지을 때 기본적인 생각이라 하네요.

 

도시의 구성은 궁성을 중심으로 좌우전후를 이런 지침에 따라 건설하고 그 주변으로 일반 백성이 사는 곳을

만들었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주변을 다시 성벽으로 둘러 쌓아 도시를 완성했다는 말이겠지요.

이런 모습의 도성 건축 방식을 회자형(回字型) 도시라 한다고 하네요.

 

이에 따라 우리의 궁궐도 같은 방식으로 지었고 이곳 남한산성 행궁도 좌묘우사를 두었다고 하니

여러 행궁 중에 원전에 가장 충실한 곳이 이곳 남한산성 행궁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