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의 집, 룬달레 궁전
아주 멋진 벽장식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꽃장식의 받침대 위에 도자기를 올려두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도자기란 이들에게는 귀하고 무척 비싼 물건이었나 봅니다.
원산지는 아마도 중국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도자기 장식을 이곳 룬달레 궁전에서는 제법 여러 군데 설치해두었더라고요.
도자기란 당시 이곳에서는 무척 소중하고 값비싼 장식품이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궁전 주인이 도자기 장사를 하다 재고로 처진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기 아까워 이렇게 장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자기뿐 아니라 룬달레 궁전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타일로 만든 벽난로가
많았고 벽난로를 많이 설치했다는 말은 이 지방의 겨울이 무척 춥던가 아니면
이 궁전을 지은 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Ernst Johann von Buhren) 공작이
추위를 많이 탔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위의 사진 속의 방은 백색의 방(하얀 방)입니다.
백색의 방은 무도회장으로 이용되었던 모양입니다.
춤이란 그들의 삶 속에 끈적하게 녹아있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당시 귀족들의 일상 중 하나가 이런 곳에 모여 남녀가 춤을 추는 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겠죠?
하얗게 칠한 이유는 이곳에서 춤을 추는 모든 사람이 돋보이고
화사하게 보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런 곳에서는 왈츠곡 정도는 은은하게 틀어주어야 제격일 텐데...
처음에는 궁전 전용 예배당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이었다 합니다.
세계 1차대전 때는 부상한 독일 병사들의 치료를 위해 사용된 부상 병동이었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화사한 방이지만, 한때는 그런 일도 있었네요.
장미의 방입니다.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장미꽃 넝쿨을 벽을 따라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구석에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든 것인데
부서져 버려 복원한 것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장미 넝쿨 장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장미의 방이라 이름 지었지싶고
치장 벽토 대리석과 화환으로 장식한 벽장식은 1760년 베를린 출신의 조각가
그라프와 그 일행의 작품이라 합니다.
이 방에만 들어서면 언제나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고 장미향도 은근하게 풍길 듯합니다.
천장은 역시 이탈리아 화가인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카를로 주치가 그린
프레스코화라고 합니다.
봄과 여신, 그리고 꽃의 여신상을 그렸네요.
침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방과 넓은 실내지만, 잠을 자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침대 사이즈도 그리 크지 않고...
양쪽으로 벽난로를 두 개나 만든 것으로 보아 추위를 심하게 탔나요?
침실이 있는 바닥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삶이 밤에 누울 때 차지하는 공간은 옛말에 대하 천간이라도
야와 팔척(大廈千間 夜臥八尺)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궁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침대입니다.
식당으로 사용했던 마블 방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초대해 이곳에서 음식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 식탁 앞으로 들어갈 수 없네요.
이런 곳에서 식사했다고 해도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수 없고 식사량이
우리의 몇 배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양전 만경이라도 일식 이승(良田萬頃 日食二升)이라고 했나요?
하루에 먹는 것은 겨우 두 됫박밖에 되지 않는데...
그러나 우아하게 앉아 가족끼리 하인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했을 테니
삶의 질이 우리와는 다르겠지요?
저 그림 속의 여인이나 아이들은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겠지요?
오늘 여러분의 식사를 위해 저 여인에게 서빙을 부탁하면 어떨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유럽의 궁전을 구경하다 보면 참 화려하게 꾸미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의 모습과는 다른 문화였기에 우리 눈에는 더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이들 삶의 질도 높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