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코페르니쿠스 흔적
쇼팽의 심장을 안치했던 성 십자가 성당을 나와 비스듬히 대각선 방향인 오른쪽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그 앞에 보이는 조각 인물상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Pomnik Mikołaja Kopernika)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죠?
쇼팽과 더불어 폴란드가 배출한 또 한 사람의 걸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뒤로 보이는 건물은 스타시스 궁전(Staszic Palace/Pałac Staszica)이고요.
현재는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이곳이 신세계 길(Nowy Świat)과 크라쿠프 교외로(Krakowskie Przedmieście)의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미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를 크라쿠프에서 먼저 만나보았으니 낯설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는 그곳 대학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배웠답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천문학자가 아닌 신부였다고 하네요.
본래 이름은 폴란드 이름으로 니콜라이 코페르니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무렵의 학자들이 흔히 하던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라틴어로 고쳐 사용했기에 코페르니쿠스도
시류에 따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로 하였다고 하네요.
그는 이곳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180km 정도 떨어진 토룬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라 합니다.
학교는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론스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지요.
독일은 한때 코페르니쿠스를 독일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지만, 폴란드 사람이 맞는다고 하네요.
그의 조각상이 있는 광장 바닥을 자세히 보면 우주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했던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모습이 아닌가요?
위의 사진은 행성 중 제일 멋진 토성(Saturn)입니다.
그 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 유학하여 공부하며 그곳에서 노바라라는 천문학자의 제자가 되며
학문의 폭을 넓혀가게 되었다네요.
위의 사진은 당시까지는 천동설의 주체로 평가했던 우리가 사는 지구입니다.
그런데 노바라라는 사람이 바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이라네요.
그는 이미 당시까지의 확고부동한 천동설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세상의 중심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며 종교재판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지요?
그러니 코페르니쿠스는 사실, 지동설의 창시자는 아니라는 말이겠죠.
우주와 지구는 모두 구형이며 천체가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지구도 원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지요.
또한, 행성을 하나하나 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 체계로 보아야 한다고 함으로
후일 그의 학설이 사실임이 밝혀졌지만, 그는 당시에 많은 비판과 지탄을 받는 처지였겠지요.
이런 생각으로 세계관을 뒤집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는 현상도 만들어졌네요.
이 말은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과감히 진실을 위해서는 노라고 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겠죠.
당시까지 세상은 종교계의 힘이 막강했기에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의 존재를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젖어있는데 감히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 아니겠어요?
당시 세상은 지구고 지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지구가 겨우 태양의 주위를 도는
작은 별에 불과하다는데 종교계는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순으로 돈다고 코페르니쿠스의 조각상 아래 광장 바닥에
조형물을 동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 출신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았지만,
잠시 그의 뜻을 굽히며 생명을 구했다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기원전 2세기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코페르니쿠스보다 훨씬 전에 지구는 24시간마다 한번 자전하고 지구를 포함한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정의를 내렸다고하는데 다만 저술로 남아 있지 않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