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체코

왕의 길, 그 출발점 화약탑(Prašná brána)

佳人 2017. 12. 8. 09:00

체스키 크룸로프 구경을 마치고 프라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혀 낯선 그런 모습이 아니네요.

프라하에서는 다시 2박을 하며 주로 시내 구경을 하려고 합니다.

옛날 보헤미아 왕국의 도읍인 프라하를 일컫는 말이 무척 많습니다.

 

프라하를 백탑의 도시라고도 하고 북쪽의 로마라고도 불렀답니다.

또 건축 양식의 보고라고도 하고 황금의 도시로도 불렸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탈리아 슬라브 학자인 리페리노가 한 말이 프라하를 지칭하는 가장 확실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비를 설명하는 다른 말을 찾으려 하니 프라하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바로 프라하는 프라하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곳이었습니다.

2017년 5월 15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정말 프라하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중세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먼저 찾아가는 곳은 화약탑(Prašná brána)이라 불리는 탑입니다.

오베츠니 둠 바로 옆에 고딕식으로 우뚝 솟은 탑입니다.

 

그 모습이 카를교 교탑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그 이유는 카를교 교탑을 원형으로 이곳에 화약탑을 세웠기 때문이라네요.

위의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시민회관이라고 하는 오베츠니 둠 2층과 화약탑은 통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두 건축물을 한꺼번에 보니 하나는 말끔한 신사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무척 지저분해 보입니다.

 

프라하에 왕의 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있는데 왕의 길이란 화약탑에서부터 첼레트나 거리를 따라 가장 많은 사람이

붐비는 구시가지 광장을 거쳐 카를교를 통해 이곳까지의 약 2.5km의 거리를 말한다네요.

1458년 처음으로 프라하를 수중에 넣은 포디에브라트家가 처음 이 길을 걸어 대관식에 참석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후 역대 왕들은 대관식을 하기 위해 모두 이 길을 따라 대관식 퍼레이드를 함으로

왕의 길이라는 고귀한 이름이 정해졌다지요?

마지막으로 1836년 페르디난트 5세가 퍼레이드를 벌인 후 더는 그런 행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화약탑은 그러니 궁정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문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곳에서 외국의 대사나 귀빈을 맞이해 고적대를 앞세우고 마차를 탄 일행은 민초가 지켜보는 가운데

풍악을 울리며 카를 교를 지나 네루도바 거리를 따라 프라하 성으로 행진했을 겁니다.

400여 년에 가까운 시기동안 이런 멋진 퍼레이드가 그 맥이 끊어졌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라도 프라하의 축제로 다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당시는 번지수가 없던 시기라 네루도바 거리에는 그 집을 알리는 문패가 남아있어

아직도 거리에는 번짓수를 대신한 아름다운 문양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문패는 주로 동물이나 형상을 문 상인방에 만들어 놓았다네요.

그러니 일종의 직업을 알리기도 했고 가문의 문장인 셈이기도 했지 싶습니다.

 

화약탑은 한때는 그냥 관리도 되지 않고 버려진 곳으로 누더기 문이라고 불릴 정도였다지요?

그러다가 쓸모없는 문이 도성 방어를 위해 화약을 보관하며 화약탑이라 불리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프라하 관광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네요.

여러 차례 손상을 입다가 120여 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2층 통로 옆에 조각상이 보이는데

이는 이 탑을 설계한 마테이 레이세크의 청동상입니다.

자신이 만든 탑을 오베츠니 둠에서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이지요?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되겠네요.

 

그리고 그 아래 동판이 하나 보입니다.

이 동판은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동판으로 1928년 10월 28일 만들었다 하네요.

지금은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다른 나라가 되었지만, 당시는 하나의 나라였지요.

 

이 탑은 바로 성안으로 들어가는 13개의 탑문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10개의 탑은 사라졌고 세 개만 남았는데 이 화약탑이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다네요.

이 문을 경계로 성벽이 있었을 것이고...

구시가지와 외곽지역을 나누는 경계점인 셈입니다.

 

그러나 도시화로 인한 인구유입 때문에 프라하는 더는 성벽으로 구분할 수 없어

성벽을 모두 헐어내며 나머지 탑도 함께 사라졌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로는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지 싶네요.

 

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오른쪽 건물 2층에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록, 예전의 영광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화약탑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화약탑이 온전하게 남은 이유는 바로 대관식이나 외국 사절을 맞이하여 프라하성으로 행진하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화약탑 아래이기 때문이랍니다.

그 길의 종착역은 대관식이 열리는 바로 성 비투스 대성당이겠죠.

이 길을 왕의 길이라고 부르는 길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