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대통령 궁이며 구왕궁인 프라하성(Pražský hrad)
왕궁 정원 구경을 마치고 성 비투스 카테드랄(Katedrála Sv. Víta)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투스 성당으로 가려면 우선 구왕궁(Old Royal Palace) 문으로 들어가야 하네요.
그곳은 프라하성(Pražský hrad)이라고 하더군요.
들어가는 문 입구에 위병이 양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구 왕국이며 현재 대통령 궁으로 사용 중인 곳이 아닐까요?
여기는 정문이 아니라 뒷문 정도 되겠네요.
이미 조금 전 왕궁 정원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검색을 받았기에
여기는 아무 제지 없이 들어갑니다.
여기가 그러니까 제2 정원이 되겠네요.
여기가 오래도록 보헤미아를 다스렸던 역대 왕들의 왕궁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예상외로 규모도 작고 검소해 보입니다.
마당 한가운데 1686년에 만든 바로크 양식의 콜 분수(Kohl's Fountain)라는 분수가
보이는데 물줄기는 영 시원치 않습니다.
분수 왼쪽에 장식물처럼 보이는 것은 우물로 보였으며 안전을 위해 철망으로
막아두었고 정면으로 보이는 둥근 형태의 건물이 성 십자가
예배당(Chapel of the Holy Cross)이라네요.
여기서 오른쪽 마티아스 문(Matyášova brána)으로 나가면 제1 정원이 보이고
대통령 궁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흐라차니 광장이 나옵니다.
마티아스 문이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마티아스가 대관식을 위해 들어가기
위하여 만든 문이라 그리 부르나 봅니다.
왼쪽 문으로 나가면 바로 위의 사진처럼 성 비투스 카테드랄 앞인 제3 정원이 나타납니다.
우선 마티아스 문을 지나 정문으로 나갑니다.
제1 정원이 보이고 그 정문 양쪽 기둥 위에 아주 멋진 조각상이 있습니다.
흐라차니 광장 방향의 정문에는 입구 양쪽으로
싸우는 거인들이라는 조각이 올려져 있습니다.
마치 이 문을 허락 없이 들어오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패 버린다는 의미인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싸우는 거인들 즉 타이탄의 싸움(Wrestling Titans / Sousoší
Souboj Titánů)이라는 이야기에서 생각해낸 작품이라 합니다.
원래 작품은 1770년 이그나체 플라체리라는 조각가가 만들었는데 파손되어
1902년 새로 만든 복제품이라 합니다.
각각 보면 오른쪽은 방망이로, 왼쪽은 검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모습입니다.
이 작품의 내면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헤미아 지방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고 본다고
하는데 그때가 언젠데 아직 이런 수모가 연상되는 작품을 올려놓고 있답니까?
타이탄이란 원래 제우스나 헤라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나오기 전, 황금기에 세상을 지배했던 종족들이라고 하네요.
세상을 만든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누스가 서로 사랑을 해 만든
생산품이 제우스 등등...
이들은 세월이 흐르며 점차 힘을 키워 하늘에 태양이 하나라고 세상을 지배하는 힘도
새로 재편해야 하며 제우스를 중심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며
타이탄족과의 싸움에 돌입했다지요?
이 싸움에서 제우스는 벼락을 동반한 번개라는 멋진 무기를, 아폴론은 활과 화살 같은
폼 나는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다른 올림포스의 신들은 바로 몽둥이와
검 외에는 변변한 무기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보이는 조각품처럼 변변한 무기를 갖추지도 못한 변변치 못한 신들은
그동안 세상의 주인행세를 하며 살아온 타이탄족을 당당하게 제압하며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그런 모습이지 싶습니다.
늘 위병이 지키고 있어 매시 정각이면 교대를 한다는데 정오 교대식을 제외하면
크게 구경거리는 없다고 합니다.
많은 여행자가 위병 옆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어도 무방한 곳이라 하니...
늘 옆에 함께 서서 사진 찍는 사람들로 혼잡합니다.
이곳에서 경사진 아랫길로 돌아나가면 남정원으로 연결됩니다.
프라하 구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대단히 좋은 곳이죠.
이곳에 서서 블타바강과 구시가지를 바라보면 내가 지금 여행 중이구나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뒤로는 프라하성이 보이고 아래로는 프라하성의 성벽이 있는 두 개의 정원이 이어져
있는데 꼭 이 정원을 걸어보아야 합니다.
왜?
힘들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위로 보이는 구왕궁의 창문은 그 유명한 창문 투척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지요?
1618년 5월 23일, 30년 종교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생겼는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독실한 가톨릭 황제였던 페르디난드가 보헤미아 왕위까지
오르려고 하자 이에 화가 난 이 지방의 개신교 귀족들이 극렬히 반대하며
황궁으로 몰려들었답니다.
이미 가톨릭 우대정책으로 신교도들에게는 불만이 고조되어
누가 불을 붙이느냐의 문제였겠지요.
당시 신교도들은 신교도인 프리드리히 5세를 옹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서로의 이해다툼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종교란 사랑과 화해의 정신이 아니고 독선과 오만의 세계인가요?
보헤미아 왕위에 오르려고 페르디난드를 추종하는 새로운 귀족이 저항하자
새롭게 임명해 데려왔던 두 명의 가톨릭 평의회 의원과 왕실 서기관을 힘으로 밀어붙여
이들을 번쩍 들어 올려 창밖으로 던져버렸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하고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 동원되었군요?
새로운 귀족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은 졸지에 조용필이 부른 창밖의 남자가 되어버렸답니다.
그런데 창밖이 보통 높아야지요.
15m나 되는 창밖으로 던져진 신 귀족들은 다행스럽게도 아래에 깔아 둔
건초더미에 떨어져 목숨만은 건졌다고 하며 가톨릭 측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귀족들이 천사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네요.
정말 천운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같은 신을 모시는데 누구는 천사의 도움을 받고 누구는 개털인가요?
그래도 떨어질 때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은 위의 사진처럼 정말 아름다웠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 페르디난도는 그냥 물러날 수 없잖아요.
1618년 그해부터 1648년까지 30년 동안 유럽에서는 가장 잔인하고 지루했던
신, 구교 간의 종교전쟁이 일어났겠지요.
이때 신, 구교도 사이에 많은 전투가 벌어지고 그중 유명한 전투가 빌라 호라의 전투라
하는데 이때 황제 군에 패한 신교 지도자와 이에 동조했던 보헤미아 귀족 27명이 지금
천문시계 옆에서 1621년 참수를 당했으며 참수당한 후 머리를 두었다는 그 장소에
십자가 모형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지요.
나중에 그곳에 가면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겨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구왕궁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 중 가장 규모가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하는데 길이가 570m이고 폭이 128m나 된다고 하니..
그러니 단순한 왕궁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단지와 같은 여러 목적의
다양한 건물군으로 이루어졌네요.
물론 이보다 더 큰 베르사유나 쉔부른 궁 등 궁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처럼 아직 궁전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궁이 없다는 말이겠죠.
비록 황제가 대통령으로 바뀌어 대통령 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프라하성이 처음 지어진 때는 88년경으로 당시는 목책으로 된 허술한 모습으로 지었답니다.
그러나 점차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인식되어 돌로 쌓으며 지금처럼 견고한
석벽으로 바꾸게 되었다지요?
성이라기보다는 마치 성벽 위에 궁전을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이곳은 카를 4세에 이르러 드디어 단순한 방어적인 요새에서
힘의 상징인 통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카를 4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취임하며 이곳은 정치는 물론
사상이나 종교의 중심지로 부각되기 시작했지 싶네요.
게다가 주교가 있던 곳이 대주교가 있는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네요.
이는 정치와 종교가 모두 유럽의 중요한 거점 도시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 바로 왕궁과 붙어있는 바실리카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지금 모습의
성 비투스 카테드랄을 짓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보헤미아 지방의 황금기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