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차이화징(채화정:菜花菁)은 그때도 감이 익어갔는데...

佳人 2017. 4. 7. 09:00

 

차이화징 마을은 2010년 10월 하순에 한번 찾아왔던 마을입니다.

그때 이 마을을 갔던 이유는 청룡산에 올라 내려다보다가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길이 예뻐

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에 무작정 길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때 저 길의 끝은 바로 차이화징(채화정:菜花菁)이라는 마을로 먀오족의 생태촌이라는

곳이었는데 여행이란 이렇게 우연히 보았던 모습에 취해 정보도 없이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겁니다.

佳人의 의지로 찾아갔는지 그냥 끌려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신내림을 받았을까요?

 

 

그때는 이런 마을이 있는지도 모르고 걸었지만, 오늘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걸어갑니다.

청룡산에 올라 뒤편을 바라보면 호수가 있고 호수 사이로 길이 보입니다.

여러분도 푸저헤이에 가신다면 이 길을 꼭 걸어보세요.

느낌이 아주 좋은 곳이죠.

 

 

그때 그 길의 끝이 위의 사진에 보듯이 바로 감이 익어가는 우리의 고향 모습과 비슷한

차이화징 마을 큰 마당이었습니다.

그곳은 마을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 감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골 모습과 흡사 닮았습니다.

마을 자체만 보면 크게 눈길을 끌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도 우리와 닮은 사람일 것입니다.
청룡산에서 내려다 보았던 길의 끝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큰 마당으로 이어졌고...
그 마당을 빙 둘러 감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마침 가을이라 감나무의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위의 두 장의 사진 중 왼쪽은 마을로 들어가는 예전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지금의 모습으로 도로변을 예전과는 달리 콘크리트로 보강했네요.

 

 

그러나 오늘 찾았던 차이화징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 마을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모두 숙소로 바뀌는지 아니면 주택 개량사업을 하는지...

 

 

이것은 예전부터  살아왔던 보존해야할 생태촌이 아니라 상전벽해의 모습이었습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중국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때 보았던 감나무 몇 그루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네요.
그 감나무에는 그때처럼 오늘도 감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건축 현장 앞으로 이 마을에 살았던 10여 가구 정도의 주민을 위해

임시 거처를 마련했나 봅니다.
그야말로 판잣집처럼 열악해 보이지만, 당분간 견디면 새로 지은 집에 입주하겠지요?

 

 

그때 만났던 아이들...

아마도 이 아가씨들은 차이화징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4인방이 분명합니다.

No3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이곳을 찾아온 佳人 부부에 손을 들어 환영했습니다.
장화를 신은 예쁜 아가씨~ 반가워요.
무척 사람이 그리운 아이처럼 보입니다.

 

 

한참을 마을 구경을 하고 돌아가려고 마당을 벗어나려는데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봅니다.

아직도 우리 부부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오빠 바이 바이 오빠~"를 외칩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佳人이 알려준 오빠라는 말이 할배를 부르는 말로 알았을 겁니다.

 

 

그곳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던 마을 큰 마당 앞이었습니다.
서로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잠시 스쳐지났던 인연일지라도

우리 인연은 소중한 일입니다.

오늘 혹시나 그 아이가 다시 그 마당에 있을까 하여 찾아왔지만,

이곳은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장화 신은 아이가 감나무 아래서

오빠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귀에 들립니다.

아해야! 오빠 믿지 마라.

다시 푸저헤이를 간다는 약속을 하지 못하겠다.

아해야! 오빠 사랑하지도 마라.

 

 

다시 너를 만나기 위해 푸저헤이에 가지 못한단다.라고 그때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는 이번에도 차이화징 마을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해야!

한국에서는 오빠라는 호칭은 연인 사이에 부르기도 한단다.

그러니 이제 더는 오빠라고 부르지 말고 정확하게 할배라고 불러라~

 

 

그곳은 차이화징(채화정:菜花菁)이라는 감이 익어가는 마을이었습니다.

사랑도 함께 익어가는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마치 고향 마을 순이와 헤어지는 그런 곳으로 생각되는 먀오족 마을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의 끝에 있는 산봉우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로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사진 속에 보이는 길과 왼쪽에 보이는

산 아래의 오솔길로 걸어가면 굴을 빠져 가게 됩니다.

 

 

주변은 봉우리 사이로 호수로 이루어졌고 습지로 보호받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습지 사이로 좁은 뚝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재미는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지요.

그래서 이곳은 무조건 천천히 두리번거리면 걸어야 즐거운 곳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더 기분이 상쾌합니다.

 

 

이제 우리는 푸저헤이 숙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비슷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은 예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지금의 모습입니다.

같은 곳을 세월이 흘러 다시 비교하며 보는 것도 좋습니다.

왼쪽 아래 보이는 사진 중 전봇대 아래 천막에는 양봉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그때

이 길을 걷던 우리 부부에게 잠시 쉬면 꿀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치우(蚩尤)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지닌 먀오족은 먼 옛날 아마도

우리와 사촌 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그리운 아이야~

이제 오빠 간다~

더는 오빠 찾지 마라~~

오빠 나이가 종심(從心)을 넘어버렸으니 다시 찾아온다는 약속은 정말 지키지 못하겠다.

 

 

치후 천왕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사는 먀오족.

그들은 치우가 다시 환생해 옛날의 영광을 다시 일으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다시 황제(黃帝)와의 리턴매치인 마지막 일전인 제2의 탁록(涿鹿) 대전을 준비하며

오랜 세월을 지냈고 그래서 죽어도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동굴 속에다 안치하는

동장(洞葬)이라는 장례방법을 취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때가 돌아오면 죽었던 먀오족은 다시 환생해 치우를 따라 황제와의

마지막 일전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나라의 기원이라는 한고조 유방도 항우와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치우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전투에 나가 승리를 이끌었다고 하니

치우는 전쟁의 신이 맞기는 맞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예전의 느낌이 너무 좋아 다시 찾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많이 변해버린 모습에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주거 개선을 위해 예전의 모습을 모두 헐어버리고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그들을 우리는 뭐라 할 수 없지만, 마음 깊숙이 간직했던 佳人의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전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랐던 佳人의 생각은 개인의 욕심에 불과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