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상전벽해와 같은 마을 푸저헤이(보자흑:普者黑).

佳人 2017. 3. 24. 09:00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죠.

오늘부터 우리가 구경할 푸저헤이를 보니 이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불과 6년이 지난 이번 여행에서 푸저헤이를 다시 찾아보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 상전벽해입니다.

 

제법 오랜 시간 좁은 버스 안에서 고생하며 겨우 치우베이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싱이를 출발해 뤄핑까지는 기차로 이동했고 기차역에서 버스 터미널로 가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만에 이곳 치우베이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작은 버스로 20여 명 정도 타는 버스였습니다.

버스도 폐차 시기를 훨씬 넘겼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버스입니다.

이제 여기서 오늘의 목적지 푸저헤이로 가려면 치우베이 버스 터미널 앞에서 출발하는 1번 버스를 타면 되네요.

버스는 경구 안으로 들어와 선인동 마을 입구에 한 번 섰다가 다시 안으로 더 들어갑니다.

 

우리는 치우베이를 출발한 지 40분 만인 3시 50분 예전에 내렸던 푸저헤이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서 내렸습니다.

예전에 내렸던 곳은 그때는 종점이었으나 지금은 버스가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갑니다.

2000년 10월에 이곳에 왔을 때 이 부근에 숙소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모든 건물이 숙소입니다.

그것도 에전과는 달리 모두 새로 지은 반듯한 숙소입니다.

 

우선 숙소부터 먼저 정해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2박을 하려고 합니다.

그다음 쿤밍으로 돌아가 며칠 쉬다가 귀국해야겠네요.

이곳에 2박이나 하는 이유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구경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 무작정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가 좋을 듯해서입니다.

 

이곳 숙소는 담합을 한 듯 비수기는 80원 공통인가 봅니다.

성수기 가격은 200원이라고 하고요.

물어본 곳 모두 같은 가격으로 그렇게 부릅니다.

 

비를 맞으며 왔기에 한기가 느껴져 전기장판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이 동네는 모두 전기장판이 없다고 하네요.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했고 오는 내내 비를 맞으며 왔기에 한기마저 느껴지는 날인데...

이런 날은 따끈한 구들에 누워 허리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지지면 얼마나 좋은데요.

 

이럴 때는 도로 옆보다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방 하나에 전기장판을 주고 70원에 준다는 집이 있어 그곳에 배낭을 풀었습니다.

이미 4시가 넘었고 오늘 이곳으로 오며 피곤했기에 그냥 천천히 동네 마실이나 나갑니다.

 

저번에 왔을 때는 푸저헤이의 많은 집이 위의 사진에 보는 흙벽돌을 쌓아 지은 집이었습니다.

오늘은 우선 먼저 위와 아래에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하고 가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번에 찍은 사진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눈에 익은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예전에 찍었던 똑같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7년의 세월이 흐른 이번에 찍은 어느 집 대문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2000년 11월의 모습입니다.

 

그때와 비교해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열쇠만 그때와 다르고 전혀 변한 게 없다고 생각되네요.

아!! 문틈이 조금 더 벌어졌네요.

그냥 무심코 지나다 찍은 사진이지만, 이렇게 두 장의 사진을 놓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푸저헤이는 세 개의 큰 마을이 있나 봅니다.

물론, 주변에 많은 마을이 있겠지만, 우리 같은 여행자가 주로 가는 그런 마을 말입니다.

가장 규모가 큰 우리가 머문 푸저헤이 촌이 있는데 이 마을은 주로 한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합니다.

 

그리고 푸저헤이 버스 종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보았던 선인동촌이 있습니다.

선인동촌은 신선이 살 듯하지만, 사실은 주로 이족(彝族)의 집성촌인 듯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인데 제일 아래 글은 이족의 상형문자입니다.

중국의 글자란 이렇게 여러 부족의 고유했던 문자가 서로 교통 하며 지금의 글자로 변했다고 봐야겠지요.

 

예전에 상나라의 도읍이었다고 하는 은허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한자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상나라의 갑골문을 보면 지금의 중국 문자와 대단히 유사함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의 고유문화 중 순장을 제대로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권력을 지닌 사람이 죽으면 그가 타고 다녔던 마차를 함께 묻어버렸는데 이를 차마갱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차마갱에는 마차만 묻은 게 아니라 마차를 끌어주던 말은 물론 사람도 함께 순장시켰고 주인을 따르며

늘 꼬치쳤던 개까지 묻어버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산 사람을 순장시켰을 뿐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 제사의 형태 중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인두제사(人頭祭祀)였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글자 그대로 산 사람의 목을 베어 머리만 구리로 만든 동제(銅制) 그릇에 넣고 삶아서 제물로 삼는

이러한 제사는 관련 유물이 발견되면서 그때까지는 그냥 떠도는 말이었지만, 사실로 확인되었답니다.

 

위의 사진을 보세요.

여기 그 실체를 보여 드립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릇 속에 담긴 게 바로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사람의 머리랍니다.

이게 문명국의 전통이라면 문명국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위의 사진은 은허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갑골문과 점을 쳤던 그런 동물뼈가 보입니다.

갑골문이란 거북이 배에다 기록했던 글자로 소뼈나 돌에도 기록한 글자라지요?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은 기원전 1천 500년 이상이 되었답니다.

처음 시작은 글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점을 치는 복골(卜骨)이었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은 얼마 전 스페인 트루히요라는 곳에 갔을 때 그 지방 출신인 콩키스타도르 중 한 사람인 피사로입니다.

남미의 멕시카 족이 태양신에게 제사지낼 때 산 사람의 심장을 이용했다는 인신공양이 상나라와 같은 방법이겠네요.

그래서 남미 문명이 콩키스타도르라고 불렀던 불과 200여 명의 스페인 정복자에 멸망한 이유가 스페인의 야만적인

침공보다는 주변 부족의 이런 반감이 작용해 스페인 군대에 협조했다는 이견도 있기는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것은 은나라라고 하는 상나라가 은허 유적이 발견되지 전까지는 그냥 전설 정도로만 알려졌는데

은허의 발견으로 중국 역사의 가장 위에 올라가게 되었다네요.

그 전의 나라라는 하나라의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 전설로만 전해오겠네요.

그러나 지금의 은허는 상나라가 수도를 이전한 곳으로 원래는 공자의 고향 곡부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중원과는 거리도 멀고 한족이 아닐 거라는 가설이 있다네요.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중원의 풍습과는 다른 순장제도와 인두 제사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이런 순장 풍습은 만리장성 너머에 있는 북방민족의 풍습이라고 하네요.

나중에는 순장제도가 세월이 흐르며 당삼채라는 것과 토용으로 대체되었지만, 문명인의 모습은 아니겠네요.

우리가 아는 병마용도 사실은 일종의 순장제도라고 봐아하겠지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만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하니까 이런 풍습이 중국 곳곳에서 성행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한자의 시작은 중원이 아니라는 이견이 있다고 합니다.

배꽃보다 아름다우면서 전갈의 독을 지녔다고 하는 달기와 함께 사라진 상나라의 유민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장사로 먹고살았기에 지금 우리가 부르는 상인(商人)이라는 말은 바로 상나라 사람이라는...

은허에 가면 당시 상형문자와 지금의 중국 글자의 유사함을 비교해두어 좋은 공부가 되지 싶습니다.

 

다시 푸저헤이 구경을 합니다.

청룡산 뒤로 돌아 한참 들어가다 보면 먀오족 생태촌이라는 차이화징(채화정:菜花菁)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먀오족은 치우의 후에라고 스스로 한답니다.

어쩌면 우리와는 먼 사촌 간이었을지도 모르는 민족이 먀오족이라지요?

 

이 작은 동네에 세 개의 민족이 모여 사나 봅니다.

물론, 각 마을은 거리를 두고 살아가기는 하지만...

물론, 세 마을 말고도 여러 마을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겠지만, 佳人이 직접 눈으로 본 곳은 세 곳뿐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이족의 선인동촌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족의 자본이 들어와 천지개벽하고

있어 돈이 보이면 원래 중국은 개발의 붐을 타고 한족이 제일 먼저 이동하며 한족의 자금이 몰려들어

지역 상권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죠.

왜 상전벽해라는 말이 생각났는지 돌아보면 아실 겁니다.

 

원래 이곳 푸저헤이의 절경은 연꽃이 필 때라 합니다.

연꽃이 만발한 호수 사이로 배를 타고 다니며 꽃구경하는 게 최고라 하지요.

그러니 비수기에 오면 묶여있는 배만 바라봅니다.

위의 사진은 푸저헤이 관광안내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그때는 이곳에 넘치는 관광객으로 물가도 비싸고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드는 많은 관광객 때문에

구경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비수기에 찾아오면 우리끼리만 아주 즐겁게 다니며 한가하고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지요.

비록 연꽃은 구경할 수 없지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부터 천천히 세 개 마을을 모두 걸어 다니며 구경하렵니다.

물론, 마차나 말을 타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다닐 수 있지만,

이런 곳은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게 좋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걸었던 곳이 바로 푸저헤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