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샹그릴라는 어디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집은 조셉 록(Joseph F. Rock:1884~1962)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집인데 이 사람은 1922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윈난과 티베트 지역 곳곳을 탐험하며
많은 책을 남긴 사람이라 합니다.
그는 탐험가이며 식물학자이기도 하고 저술가이기도 했다네요.
이 사람 덕분에 윈난과 그 주변의 모습과 풍습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네요.
그래서 지금도 이 마을을 찾는 서양인은 누구나 이곳에 들러 그분의 체취를 느낀다고
하는데 그는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으로 리장에 와서 약 27년간 거주하였다네요.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모두 보낸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지원을 받아 리장과 그 주변 지역의
지리, 식물, 민속을 고찰하여 많은 사진과 그림 그리고 저술자료를 남겼다네요.
그런 자료 덕분에 이 지역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그때 남긴 자료는 중국에서도
아주 귀한 역사자료가 되었을 겁니다.
그의 저서로는 중국서남납서고왕국(中国西南纳西古王国), 납서어영어백과전서
(纳西语英语百科全书)등이 있는데 이를 통해 쉐산(雪山)에 둘러싸인 리장 지역이
세계에 소개되었고, 리장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이 자료들이 후일
제임스 힐턴이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책을 쓰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에서도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마을 내에는
록의 옛 거주지를 박물관이라고 고 그가 살았던 옛집에는 당시 사용하던
물품과 서적, 그림, 사진 등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들어가려면 입장료 40원을 내야 합니다.
관심 없는 분은 그냥 지나치셔도 되는 곳이지 싶네요.
그는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신조어를 만든 제임스 힐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데 제임스 힐턴은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Magazine)에
실린 이 지역을 소개한 조셉 록의 글을 읽고 꿈의 마을 샹그릴라를 생각해낸 겁니다.
그러니 제임스 힐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말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제임스 힐턴은 조셉 록의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결국, 그는 조셉 록의 영향으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고 그 소설 속에 샹그릴라라는 가공의 마을을 만들어
이상향(理想鄕) 또는 유토피아를 재생산하게 되었다네요.
세상에 어디에서나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곳, 그곳에 풍요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병들거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은둔의 세상 샹그릴라를 그린 소설로 세상에
샹그릴라라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당시에 세상 어디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세상을 특별한 세상으로 만든 사람이네요.
그런 세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을 꾸는 일이지만,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지요?
물론, 이 이야기를 듣고 도연명이 얼마나 머쓱했을까요?
도 선생이 썼다는 도화원기는 너무 오래되어 유효기간이 다 되었다는 말입니까?
이 꿈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 선거철만 되면 공약으로 나오는 아주 쉬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척박하고 살아가기 만만치 않은 산악지대인 중덴(Zhongdian)을 중국 정부에서는
과감하게 힐턴의 소설에 따라서 샹그릴라(Shangri-La, Xianggelila)라고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품종의 도시를 재창조함으로 중덴은 샹그릴라로 리모델링하여 관광도시로
개발했으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번다는 말이 이 말이 아닐까요?
조셉 록의 글을 읽고 제임스 힐튼이 재주를 한번 부리고 난 후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재주를 또 부린 셈인가요?
그러니 재생산의 지존은 중국 정부라고 해야 하겠지요.
지금 널리 쓰이는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샹그릴라는 바로 이 집에 머물며
고생했던 조셉 록이라는 사람이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말이네요.
바로 이 동네에 살며 윈난과 티베트지역을 탐험했던 조셉 록이야말로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을 만든 원인 제공자라는 말이네요.
그러나 세상은 이 사람 보다는 제임스 힐턴이 더 유명하고 제임스 힐턴보다는
지명을 바꾼 중국 정부가 더 고수라는 말이 아닌가요?
그러니 야크 젖을 짜 치즈 만드는 사람보다 치즈를 운반하는 중계업자가 돈을 더 벌고
그 치즈를 받아 예쁘게 모양을 만들어 술 안주로 내어놓는 사람이
제일 많은 돈을 번다는 그런 말이 아닌가요?
이 지방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가옥구조를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이라고 부른다는데 가옥들이 모두
3면으로 2층이나 3층짜리 방을 만들고 남쪽이나 동쪽의 남은 한 방향으로
높은 해받이 벽을 지었답니다.
그 사이 동남방향으로 집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도 두꺼운 대문을 두었고요.
그 안에 대리석 돌판을 깔고 그 위에 아기자기한 정원을 꾸미고 살았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문이 다른 지방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특이한
형태로 대문에 잔뜩 힘을 준 그런 모습이 아닌가요?
이렇게 기본구조를 갖추면 세 방향으로 방을 꾸미고 나머지 한 곳은
해받이 벽으로 꾸민 건축형태를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런 건축형태는 주로 따리를 근거지로 사는 바이족의 전통양식으로 이곳 나시족도
같은 형태로 집을 짓고 살았기에 민족은 달라도 이웃이기에 가옥 형태는 비슷하네요.
마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너른 초원이 나타나고 그 초원 가운데
선녀호라는 커다란 호수가 보입니다.
호수 주변으로는 말 대신 4륜 버기카 같은 것도 있어 색다른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지만, 그냥 우리처럼 두 발로만 천천히 걸어 다녀도 좋습니다.
젊은이에게는 리장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네요.
그곳에 서서 넓은 초지를 바라보면 바로 이곳이 샹그릴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가 먼저 선수를 쳐 샹그릴라라고 했더라면 지금은 더 많은 관광객이 미어터지게 들어올 텐데...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젠장!!! 위후촌은 죽 쒀 중덴에 주고 말았네요.
이게 다 쓰팡지에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우리 눈에는 이 마을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돌로 쌓아 집을 만들고 돌로 담을 쌓고 그리고 돌로 포장한 특이한 모습의 마을일
뿐으로 완펑린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부이족의 가옥도 돌로 쌓아 집을 짓더군요.
위후춘은 조용히 걷기에는 아주 좋습니다.
골목길을 걷는 느낌도 아주 좋고요.
그리고 말 트레킹이나 버기카 등 액티비티를 즐기실 분에게도 이만 한 곳이 없지
싶은데 여러분이 어떤 상상을 하든지 이만한 곳도 많지 않겠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옥호촌은 아직까지 중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마을 입장료(2016년 당시)가
없지만, 이곳도 많은 관광객이 밀려오면 입장료를 받겠지요?
그러나 사실, 입장료를 내고 마을 안을 구경할 만한 곳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 뒤로 올라가면 옥호라는 호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별도로 입장료를 받는
모양이지만, 그러나 선녀호라는 곳은 입장료가 없으니 그곳을 구경하면 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