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엽기적인 그녀 2를 촬영했다는 위후춘
옥호촌 마을 뒤로 올라가면 옥룡설산 자락이 나타나고 그곳에 몇 그루의
고사목이 보이는데 이곳의 해발고도가 높은 편이라 큰 나무가 자라기 어려울까요?
아니면 토질이 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하지 않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잖아요.
이곳으로 가는 길은 마을 골목길처럼 예쁜 돌담도 없고 돌로 바닥을 깔아놓지도
않았고 그냥 동네 사람이나 다니는 그런 길인가 봅니다.
우리는 그냥 이런 길을 걷습니다.
가다가 길이 끊어지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요.
역시 돌밭으로 보입니다.
농사짓기가 수월하지는 않겠지요?
고사목이 주는 느낌은 황량한 들판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뒤를 돌아보면 위의 사진처럼 보입니다.
여기부터는 더는 민가가 없다는 말이겠죠?
이제 다시 돌아가 다른 방향인 옥호라는 호수 방향으로 걸어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설산을 북으로 두고 남향의 양지바른 이런 곳이 살아가는 곳으로는
더는 좋은 곳이 없겠지요?
기후도 온화하고 언제나 설산의 맑은 물이 흘러 내려와 호수를 만든 곳이라 물 걱정도 없고요.
기온이 온화해 겨울도 그렇게 춥지 않고 여름도 덥지 않아 살아가기에는 그만인 곳이라죠?
리장보다는 기온이 평균 5도 정도 낮아 여름철에는 아주 시원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전 이 지방을 다스렸던 리장 목부의 목 씨 토사는 이곳에 여름 별장을 지어
더운 여름을 이곳에서 지냈다고 하니 청나라 황제들이 무더운 베이징의 여름을 피해
임시 행궁이었던 피서 산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원한 곳은 귀신처럼 잘들 알지요.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나시족은 점차 넓고 기름진 남쪽 넓은 평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벽화로 유명한 바이샤 꾸전, 수허 꾸전 그리고 리장 꾸청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이곳 위후춘이 바로 나시족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첫 번째 마을이라는 의미일까요?
그러니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이 오히려 지금은 조용하고 작은 마을로 보이네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더 미약해진 그런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나시족은 위룽쉐산의 물이 흘러내려 간 그 물길을 따라 그렇게 터를 순서대로 잡았나 봅니다.
그 물길은 나시족의 민족 이동과 같은 줄기였나 봅니다.
사실, 지금의 리장은 그때는 사람이 살기 쉽지 않은 습지였다고 하지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 습지를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고 물을 수로를 따라 집집으로 흘려보내니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땅이 생겨나고 나시족은 이곳보다 더 살기 좋은 땅인 기름진
그곳으로 점차적으로 대규모로 이동했지 싶습니다.
지금 리장의 모습은 그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한 모습이지 싶네요.
리장의 집 대부분은 나무로 지었고 여기는 돌로 쌓았지만,
같은 것은 골목마다 흐르는 수로입니다.
역시 물 하나는 인정해야 할 지역입니다.
이렇게 생긴 리장은 이 지방에서는 가장 큰 차마호시가 열린 쓰팡지에가 생겨났고 사람이
모여들어 차마고도의 여러 길 중 가장 활발한 길이 되며 번창하게 되었지 싶습니다.
그런 좋은 시절이 끝나고 나니 리장은 퇴색할지 알았는데 이번에는 관광객이
리장으로 미어터지게 들어옵니다.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지지만, 복 터진 곳은 세월이 흘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옥호촌에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깨끗한 공중 화장실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건물입니다.
왼쪽은 말을 타는 기마장이고요.
화장실 위치를 알려드리는 이유는 마을에서는 주민이 사는 곳이라 공중 화장실이 없더군요.
위치는 시내버스가 도착하는 마을 광장 바로 건너에 입구가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건너다보면 옥호여유합작사라는 간판이 보이고 저 안으로 곧장 들어가면 됩니다.
만약, 여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푸른 초원이 화장실로 바뀔 수 있습니다. 헐!!!
이곳은 정말 예전에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마을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대대적인 작업에 착수해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나 보네요.
바로 마방을 흉내 낸 말 트레킹이죠.
그 옛날 차마고도를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던 마방 말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험준한 산하를 넘나들었던 마방의 일을 이들은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나 봅니다.
그러니 공동배차가 아니라 공동배마하는 식으로 운영하여 상호 경쟁을 자제하고
순서를 정해 아주 공평하게 운영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운영하면 서로 경쟁을 피하니 가격은 당연히 정찰제가 되겠지요.
공영제로 운영하다 보면 쉬어야 할 말도 있겠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말은 재택근무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쉬는 말이 있고 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와 말 트레킹을 하면 아주 짜릿한 경험이 되지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 안 타고 그냥 걷습니다.
그러나 말 타지 않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걷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돌담길을 걷는 일도 나쁘지 않죠?
이곳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나시족 전통 가옥을 개조한 객잔이 하나 있네요.
달빛나비객잔이라는 아주 예쁜 이름의 객잔입니다.
1박에 260원(2016년) 하는 그만한 값을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 머물며 혼잡한 리장을 떠나 며칠 보내는 것도 좋지 싶습니다.
그러나 워낙 작은 마을이라 무료할 수 있지만, 말을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말 트레킹이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을 곳이라 생각되네요.
아니면 우리처럼 무조건 걷는 겁니다.
바로 이 숙소에서 엽기적인 그녀 2를 촬영했다고 하네요.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을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자리에서 찍었나 봅니다.
그때 결혼식 장면을 찍은 사진이 보입니다.
이 위후춘 마을을 나시족은 옛날에는 우루컨(무노긍:巫鲁肯)이라 불렀다네요.
이 말은 쉐숭춘(설숭촌:雪嵩村)을 일컫는 말로 쉐산(설산:雪山)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그러니 이곳 위후춘의 원래 지명이 쉐숭춘이라는 말이겠죠.
아니면 말고겠지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 주민은 약 350여 가구에 1.300여 명 정도라 하니 아담한 곳이겠네요.
예전에는 농사를 지어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였으나
이제는 말 트레킹으로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 트레킹 비용을 보면 제법 비쌉니다.
그러나 이런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곳에서 말 트레킹을 즐기는 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추억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