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o di Bove(카포 디 보베)는 아피아 가도의 오아시스입니다.
아피아 가도를 걷다가 길가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출입문이 보입니다.
Capo di Bove라는 이름이 적힌 박물관 같습니다.
문 앞에 자유롭게 들어와 구경하라고 적어놓았기에 들어가 구경했습니다.
길만 걷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잖아요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게 집터 바닥만 보입니다.
기둥이나 벽은 사라지고 타일로 멋을 낸 바닥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역사 유적지로 2세기경 Herodes Atticus와 그의 부인 Annia Regilla의
개인 소유 온천욕장이었다고 하네요.
목욕탕집이었나요?
그러니 위의 사진에 보이는 터가 온천욕장 터였던 겁니다.
그 후 이곳은 계속적으로 개인 소유의 땅이었으나 2002년 이탈리아 정부에서
이곳의 고고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매입을 결정해 지금은 아피아 가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를 위해 무료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개인 소유의 온천장이라고 하지만, 규모가 상당히 크기에 개인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공중 온천장이라는 의미가 아닌가요?
면적이 제법 큰 풀장도 보이고 배수시설도 보입니다.
포도밭 가운데 목욕탕 시설이 중세부터 있었고 Capo di Bove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 근처 무덤 속에 새겨진 글인 “Casale di Capo di Bove e di Capo di Vacca”에서
나온 말로 영어로 바꾸면 "Hamlet of the Heads of the Ox and Cow"라는 의미랍니다.
로마의 욕장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대규모 욕장인 카라칼라 욕장이나
트라야누스 욕장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욕장을 볼 수 있는 귀중한 곳으로
욕장 형태나 바닥의 모자이크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고 위의 지도는 1853년경 지금의
카라칼라 욕장과 로마 시내 일부의 모습으로 보이며 지금 우리가 구경하고 있는Capo di Bove
욕장은 위의 지도에서는 아피아 가도 제일 오른쪽 끝이나 그 바깥이 되겠네요.
2세기부터 4세기까지 사용된 목욕탕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가 특히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곳은 온천지역으로 온탕 냉탕만 있는 게 아니라 중간 수온의 욕탕까지 갖춘 수준 높은
곳으로 당시 저런 아름다운 문양의 바닥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사용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2세기경 이들은 이미 이런 대규모 욕장을 짓고 온천을 즐겼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그 모습이 몇 년 전으로 생각될 만큼 완벽하게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타일과 시멘텀 그리고 벽돌이 만든 견고함이겠지요?
욕탕으로 물을 공급하는 두 개의 커다란 저수조도 있다고 하네요.
위에 보이는 세 장의 사진은 1958년, 1970년 그리고 2006년의 항공사진으로 세월이 흐르며
아피아 가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가운데 길게 보이는 선이 바로 아피아 가도입니다.
고맙게도 안에는 화장실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개방된 유적이 있는 박물관이네요.
간단한 매점과 식당도 보이지만, 시즌이 아니라서 매점은 열었고 식당은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길을 걷는 분이 계시면 여기에 들러 구경도 하고 잠시 앉아 쉬었다 갈 수 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장실은 빠트리지 말고 꼭 이용하고 가야겠네요.
아피아 가도가 전부 화장실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여기는 들렀다 가세요.
아피아 가도는 칸막이가 없지만, 여기는 깨끗하게 관리되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있습니다.
별로로 꾸며놓은 전시실도 아피아 가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정원을 중심으로 전시된 작품 감상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밋밋한 아피아 가도를 걷는 여행자의 쉼터며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루치오 세스티오 지하철역에서 내려 클라우디아 수도교를 구경하고 아피아 누오바를 건너
아피아 안티카로 들어와 직선으로 이어진 아피아 안티카를 걸어 카포 디 보베까지
걸어온 길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20분경이니 지하철에서 내려 걷기 시작해 정확히 3시간 걸렸습니다.
그러니 별로 먼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로마인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문화생활을 했나 봅니다.
이때가 기원 전후의 시간이 아니었나요?
나무와 풀을 주제로 만들어 생활했던 우리의 유적은 세월의 흐름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들의 시멘텀과 벽돌 그리고 돌을 주제로 한 유산은 마치 몇 년 전의 모습처럼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