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수도교에서 걸어서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ca) 찾아가기
로마 수도교를 구경하고 인쇄물에 아피아 가도가 그려진 방향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충고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걸어갑니다.
여기부터 아피아 가도까지 한 시간도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조언을 구하고자 했던 일이 오히려 불안함만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도상으로 보면 그리 멀지는 않고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아피아 가도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아피아 가도를 걸어서 찾아가기로 하고 출발합니다.
여행이란 원래 처음 가는 곳이잖아요.
클라우디아 수도교를 가로질러 왼쪽에 보이는 골프장을 끼고 기찻길을 따라 걷습니다.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기찻길입니다.
우리는 기찻길 굴다리를 지나 계속 서쪽으로 진행합니다.
이 길은 걷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굳게 믿고 우리 부부는 아들과 함께 걷습니다.
아피오 클라우디오라는 간판은 이 길 이름인가 봅니다.
날씨는 이제 비는 그치고 잔뜩 흐린 날입니다.
뭐... 이런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유여행이 주는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지도에서 보았던 신 아피아 가도가 나옵니다.
우리가 방금 걸어온 아피오 클라우디오와 아피아 누오바가 만나는 지점이네요.
이정표란 나그네에게 커다란 지표가 되는 표시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처음 걷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지 싶습니다.
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이런 이정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얼마쯤 왔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내실 있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아피아 누오바는 우리가 찾는 아피아 안티카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만든 새로운
신작로인 셈으로 예전 로마가 만든 포장도로의 시작이라는 길은
아피아 안티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걷고자 하는 아피아 가도는 이런 모습이 절대로 아니지요.
예전의 도로는 차가 다니기 불편한 길이기에 이렇게 넓게 길을 새로 닦았나 봅니다.
좌우지간, 지도상으로 아피아 안티카는 계속 조금 더 가야 나오는 길이기에
아피아 누오바를 가로질러 건넜습니다.
이제 여기부터 아피아 안티카로 찾아가는 길이 없을 수 있다고 했던 곳이네요.
일단 길가로 갈림길이 나오고 잠시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비포장으로 된 골목길이 보이길래 무조건 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피아 가도로 가는 방향이 이곳으로 가야만 만날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여기는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여행하며 이런 길을 수 없이 걸어보았습니다.
중국 정군산기슭에 있는 제갈공명의 진짜 묘까지 산을 넘어 걸어 다녀온
우리가 아니겠어요?
여기는 신길도 아니잖아요?
제갈공명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기를 읽고 방향 정도는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기에 계속 나아갑니다.
혹시 우리처럼 이 길을 찾아가실 분은 이런 사진을 눈여겨보셨다가
이 모습이 보이면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길이란 걸으라고 있는 것이 맞거든요?
그리고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하고요.
왼쪽으로 보니 저 멀리 대단히 큰 유적이 보입니다.
저곳은 무엇하던 곳이고 언제 만든 곳일까요?
직접 저곳을 찾아가보고 싶지만, 가려는 방향의 반대편에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모르기에 그냥 통과합니다.
하도 궁금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구글 지도를 통해 도대체 저곳이
어떤 곳인가 찾아보았습니다.
위의 지도는 위성지도로 대단한 유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대한 지명도 설명도 전혀 없는 그런 곳이네요.
위의 사진으로 보았을 때 반원형 로마 극장도 보이고 콜로세오 같은 검투사의
피 냄새가 나는 경기장도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허허벌판에 저런 시설이 들어서 있지요?
마치 외계인이 이곳에 머물며 예술활동도 하고 글래디에이터를 불러
검투도 즐기다 사라졌나 봅니다.
혹시 우리처럼 클라우디아 수도교부터 아피아까지 걸어보실 분이 계시면 시도해 보세요.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고 더군다나 한국인 여행자도 만날 수 없는 외진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 나름대로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죠.
혹시 아나요?
글래디에이터에 나왔던 막시무스라도 만날지...
그러다 보면 위의 사진처럼 그때 만든 유적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 유적이 어떤 유적인지 알지 못해도 좋습니다.
이런 허물어진 유적이 보이면 제대로 아피아 안티카에 도착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드디어 아피아 안티카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약도 한 장 들고 아피아 가도까지 걸어온 것을 보고 누구는 무모하다고
하지 싶지만, 그러나 이런 바보 같은 일도 다른 사람에 정보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걸었던 일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에는 우리처럼 이렇게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길이 없다면 우리가 길을 만들면 되고 그 길을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
훗날 다른 사람이 우리 사진을 보고 걸어갈 수 있잖아요.
원래 길이란 이렇게 걷는 겁니다.
왜?
그게 길의 존재 이유니까요.
맞습니다.
길의 본질은 걷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