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로물루스 신전

佳人 2016. 8. 31. 09:00

 

현재 이곳은 거의 폐허 수준입니다.

그러나 로마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느낌 정도는 함께해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는 눈으로만 보는 곳이 아니라 마음마저 동원해 보아야 할 곳입니다.

 

 

이곳은 원래 습지였던 모양입니다.

습지를 메우며 배수시설을 한 후 이곳이 당시 로마 제국의 심장이 되었다네요.

바닥을 보면 당시에 만든 배수시설을 볼 수 있지요.

버려진 땅을 이렇게 완벽한 배수시설을 한 후 공공 기관 터로 사용했다는 말이네요.

 

 

굳이 이런 터가 좋지 않은 곳에 로마의 중심으로 정한 이유는 바로 방어에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이라는데 양쪽으로 높은 언덕이 있고 서쪽으로는 테베레 강이 있어

자연적인 방어가 되기 때문에 이곳으로 정했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로마의 기원으로 믿고 있는 팔라티노 언덕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 로마의 시작과 번영을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여기로 정했지 싶습니다.

 

 

이곳이 천 년이 넘는 역사의 로마를 지탱한 힘이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황제마다 이곳에 자기를 내세울 건물 하나씩 나무를 기념식수하듯 심었다는

말이나 이렇게 강성했던 로마도 324년에 이르자 동로마 제국이라고 하는 비잔티움 제국이

지금의 이스탄불로 천도함으로 생명력이 점차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로마의 운명은 북으로부터 시나브로 내려오는 서고트족의 침입에

더는 지탱하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고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로마 제국도 이렇게 서서히 저물어 갔습니다.

원래 천하의 기가 한 곳에 모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기는 다시 흩어지려고 합니다.

 

 

바로 지금의 이스탄불로 로마 제국이 이전 신장개업하며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여기는 형식상 로마가 되어버렸으며 게다가 서로마는 도읍을 라벤나로 천도하며

이제 더는 이곳의 중요성은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니 그 후 지진이 발생하고

토사가 흘러내리며 점차 사람의 기억에서 실제로 이곳은 묻혀버렸다네요.

 

 

그리고 로마가 사라지자 개나 소나 이곳에 세운 질 좋은 석재나 청동을 가져가기

시작했으니 이곳 역시 후일 로마 시내에 다른 건축물을 짓는 채석장 역할을

한 곳이라 하니 권력 무상이라는 말이겠지요?

 

 

여기 포로 로마노는 당시 로마의 일곱 언덕에 살았던 일곱 부족의

중심이 되며 또한 중립지역으로 완충작용을 했던 곳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바로 모든 기가 이곳으로 모였다는 말이겠지요.

신성한 길이라는 사크라 길(Via Sacra)을 걸어갑니다

 

 

이 길이 지금은 여행자가 걷는 길이지만, 그때는 포로 로마노의 가장 중요한 길로

승전 후 돌아온 개선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행진했던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고 걸어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아닐까요?

 

 

위의 사진에 오른쪽에 보이는 세 개의 아치가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of Maxentius)입니다.

가운데 지붕이 돔 모양의 건물이 로물루스 신전이고 왼편에 기둥이 보이는

건물이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입니다.

 

 

사크라 길로 접어들어 우선 눈에 보이는 게 아치 모양의 건물입니다.

이 건물이 포로 로마노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입니다.

가로 65m, 세로 100m에 높이가 35m에 이르니 대단히 큰 건물이지요.

이 건물은 308년 막센티우스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다는데 그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패배하며 사망함으로 중단되었다는데 결국 그를

이긴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312년에 완성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다른 바실리카와 마찬가지로 집무실이나 재판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전임자의 사업을 중단하려고 하는데...

 

 

훗날 브라만테가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설계할 때 이 건물을 토대로 설계했다 합니다.

그냥 건물 구조에 대해 공부를 하며 참고만 하면 어떻습니까?

브라만테는 7세기 바티칸 성당의 지붕을 만들 때 금으로 된 타일로 꾸며진

천장을 죄다 뜯어갔다 합니다.

도대체 바티칸은 왜 그러는 겁니까?

 

 

이번에 보이는 건물은 로물루스 신전입니다.

4세기경 지은 신전으로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를 모신 신전은 아니라 합니다.

건물의 형태는 로마의 정통 건물 스타일은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나 다른 신전이라는 게 정설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막센티우스가 그의 아들이었던 로물루스가 어린 나이에 죽자 그를 애도해

307년에 지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같아 여행자는 오인하기 싶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막센티우스에게 봉헌된 곳이라고도 한다네요.

출입문으로 만든 청동문은 처음 모습 그대로 아직까지 사용 중이고

자물쇠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하네요.

 

 

6세기에 접어들며 산타 코스마 에 다미아노 성당의 입구 역할을 했다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가 보입니다.

 

 

예전에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으나 지금은 입장을 허용합니다.

 

 

위의 건물은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Tempio di Antonino e Faustina)입니다.

141년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죽은 황후 파우스티나를 위해 만든 신전으로

안토니우스는 죽은 후 자신도 이곳에 묻힌 곳입니다.

 

 

이들은 캄피돌리오 광장 한가운데 있는 기마상의 주인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모가 된다네요.

 

 

이후 이 신전은 11세기에 성당으로 바뀌어 산 로렌초 인 미란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601년 복원한 모습이라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원천인 셈입니다.

로마의 모든 힘은 바로 이곳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죠.

그러나 세월 무상...

세월이 흐르니 이곳 또한 파괴되고 떼어낸 석재는 다른 건축물에 사용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사라진 권력은 아무리 강했다 하더라도 구름 같은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