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佳人 2016. 8. 30. 09:00

 

로마의 기원이라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가 있다는 팔라티노 언덕을

구경하고 내려와 이제 포로 로마노로 들어가겠습니다.

포로 로마노라는 말의 

포로라는 말은 공공장소를 일컫는 말이라 합니다.

 

 

그러니 포로 로마노란 로마인의 공공장소 즉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의미지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걸었던 이야기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주 멋진 문이 딱 버티고 있네요.

이 문이 바로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입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씩 직접 구경하려고 합니다.

포로 로마노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티투스 문을 거쳐야 하네요.

그런데 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아 옆으로 돌아들어 가야 합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 그의 형인 티투스 황제와 아버지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예루살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으로 81년에 세운 개선문으로

이 부근에 보이는 세 개의 개선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쉽게 이야기하면 집안에서 세운 공덕비라는 말이네요.

위의 사진은 아치 한가운데의 모습인데 티투스가 로마 제국의 상징인 황금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보는데 역시 독수리는 로마인의 혼입니다.

 

 

68년 콜로세오를 만든 티투스와 아버지인 베스파시아누스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고 얻은 잔혹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개선문으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은 문입니다.

어느 사람에게는 자랑스러운 영광의 개선문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아픈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유적이네요.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자주 로마에 저항하게 되었고

그 저항은 점차 유대인과 로마 사이의 전쟁으로까지 비약하게 되었다네요.

처음에는 유대 총독이 2개 대대를 파견했는데 1개 대대는 궤멸당하고

나머지 1개 대대는 고립되었답니다.

진압을 위해 보낸 군대가 오히려 제압을 당한 셈이네요.

 

 

이에 유대인은 주전파가 득세하며 전면전을 대비하자 로마는 시리아에 나가 있는

군대를 파견했지만, 이마저 실패해 여기에 네로는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하여 진압하는

과정에 네로 황제가 자결하자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답니다.

이에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욕심이 생겨 이곳 예루살렘은 아들 티투스에 맡기고

떠나자 티투스는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에 성공하게 되었다네요.

 

 

 

이는 로마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진압으로 남았다네요.

이후 로마는 3명의 황제가 수개월에 걸친 집권으로 혼란한 상황에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에 올랐고 이어 그의 큰아들 티투스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2년 만에 전염병으로

죽자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가 황제에 올라 아버지와 형님 덕분에 황제가 되었으니

고마움의 표시로 개선문 하나를 만들었지 싶습니다.

 

 

문 안쪽에 보면 전투 장면과 승전하고 개선하며 사두마차를 타고 있는 티투스의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하늘의 황제인 양 네 마리의 말이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어렵게 끌어온 전투를 끝내고 돌아오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반대편에는 그들이 약탈해온 은촛대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모습도 있습니다.

이때 10만여 명의 유대인을 노예로 끌고 오게 되어 그중 4만여 명을

바로 앞에 보이는 콜로세오 건설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아 거둔 돈으로

콜로세오 건축비로 충당했다고 했지요.

 

 

승자는 이렇게 남의 유물을 자랑스럽게 가져갔으니 지금의 문명국은

모두 남의 유물인 약탈한 장물을 박물관에 모아놓고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지요.

이미 로마는 이때부터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지요.

 

 

개선문 꼭대기에는 라틴어로 "로마 원로원과 시민은 신성한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친다."라고 쓰여 있다는데 한편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되면

그 반대는 어찌 되었을까요?

세상사가 다 그런데 뭘 따지냐고요?

로마 원로원과 시민을 의미하는 SPQR(SENATUS POPULUS QUE ROMANUS)라는 말이

보이는데 우리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말이

바로 SPQR이라는 말이죠.

 

 

이 문으로 들어가면 신성한 길이라는 비아 사크라(Via Sacra)가 콜로세오로부터 이어져

포로 로마노 한가운데로 지나 캄피돌리오 언덕 유피테르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곳 신전에서 승리를 고하는 행사로 비아 사크라의 퍼레이드는 막을 내렸을 겁니다.

이 길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며 신성하다는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이어지기에

 로마에서는 가장 중요한 길이지 싶습니다.

 

 

이 길의 이름이 신성한 길이라는 의미는 많은 신전을 가로지르는 중심길이었고

이 길이 가장 제 몫을 할 때는바로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 때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로마의 개선장군과병사를 맞이할 때였을 겁니다.

이 길은 그런 상상을 하며 걸어야 제맛입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이 모두 나와 환호하는 이 길을 따라 돌로 포장된 바닥에 소리도 요란한

말을 탄 장군의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병기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진 행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무수히 많은 포로와 전쟁 노획물이 뒤따랐을 때일 겁니다.

그러니 과거 로마 병사가 전쟁하고 로마로 돌아올 때 늘 이 길을 따라 행진했을 겁니다.

이 길은 병사는 물론 장군일지라도 가장 행진하고 싶은 길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곳이야말로 로마 공공의 장소이니 심장이라는 말이지 싶습니다.

로마 제국의 상징이며 생활의 핵심지역입니다.

지금 보이는 곳은 예전 모습의 일부라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주변에 상당히 넓은 지역이 모두 포로 로마노였는데 무솔리니가 길을 낸 대가 가운데를

잘라버리므로 많은 유적이 사라지고 여기만 남은 곳이라 합니다.

자기가 일했던 근무처가 바로 베네치아 궁전이라 그곳에서 콜로세오까지를 허물고

길을 내버렸다고 합니다.

참 용감한 무솔리니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