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佳人의 이런 저런 그런 이야기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트(Antonio Gaudi Cornet)

佳人 2016. 1. 30. 08:30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트(Antonio Gaudi Cornet 1852-1926).

바르셀로나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오늘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우디에 관해 어깨너머로 잠시 구경할까 합니다.

가우디는 1852년 6월 스페인 카탈루냐 타르고나 인근 지방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어린 시절은 병약해 늘 책이나 읽고 생각에나 빠졌던 그런 나약한 소년이었던가 봅니다.

어려서부터 류머티즘으로 다른 소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외톨이로 지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입학도 다른 또래보다 늦었고 그의 어머니는 이런 가우디와 늘 함께하며

같이 시골 길을 걸으며 자연을 관찰하였답니다.

뭐 학교에 가지도 않았으면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그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접하며 유일한 친구라 생각했고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영감을 키웠나 봅니다.

그의 집안은 그리 부유하지 못했나 봅니다.

지중해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온화한 푸른색을 바라보고 낮에는 화려한 햇빛을 받고 자라는

나무, 풀, 꽃 그리고 동식물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녁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황금의 세상을 꿈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찰력이 후에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지 않았을까요?

 

후일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가우디는 화분을 보고, 올리브 나무나 포도 넝쿨 사이에 앉아 바라보고,

암탉이 둥지에 회를 트는 모습, 새들의 노래, 벌레가 내는 소리, 산들이 달리는 모습...

이런 자연의 모습이 나중에 그의 작품의 바탕을 이루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했다죠?

 

나무에서 성당의 기둥을 생각하고 야자수 잎에서 쇠를 이용한 철 대문을 만들고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도마뱀에 화려한 색을 입혀 촌스럽다고 생각한 우리를 무색하게 화려한 타일을 입은

새로운 도마뱀을 만들었을 겁니다.

사실은 악어를 만들었지만, 후세 사람은 자꾸 도마뱀이라 우기니 죽은 가우디가 해명할 기회도 없지만..

 

상상하고 꿈꾼 것에 그는 이렇게 하나씩 새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어려서부터 대대로 쇠를 다루는 철공소 주인의 아들로 아마도 두드리고 구부리고 문양을 만드는 일에 기본적으로

눈을 뜨지 않았을까요?

 

17세에 본격적으로 건축학을 공부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오게 되었다네요.

바르셀로나는 청년기에 접어든 그에게 지금까지의 고향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건축에 눈을 뜨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가 봐도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중세의 모습 맞습니다.

파리 세계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다가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구엘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며 

가우디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지 싶습니다.

구엘은 부자로 평생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지요?

누구는 평생 호구라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가우디가 구엘을 위해 구엘 공원, 구엘 별장, 구엘 궁전을 지음으로 점차 건축계에

가우디라는 이름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당시에 그의 건축물이 대단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 싶습니다.

지금의 구엘 공원은 대단위 주택단지로 분양에서 완전히 실패한 예도 있었으니까요.

 

그의 대표작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며 그 외 구엘 공원, 구엘 궁전,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 이 모든 작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19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주자였나 봅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건물 중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지 않은 게 별로 없지 싶네요.

진정 가우디는 세계문화유산 생산 공장인가 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워낙 특이하기에 우리 같은 사람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가우디의 작품을 보며 어떤 면에서 위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특이한 모습과 화려한 색깔이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반대로 기괴한 모습과 유치한 색 배합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은 佳人 유치한 사람이기는 하지요.

 

가우디를 20세기 미켈란젤로라 부르기도 하고 천재라고도 부르니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쉽게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니겠어요?

그의 작품은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고 독창적인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것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이해하라는 자체가 문제이지 싶네요.

 

시대를 대표한 여러 양식이 있지만, 가우디의 작품은 이것마저도 연관을 지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은 아닐까요?

그야말로 가우디의 자기 생각대로만 지은 게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말입니다.

 

사실 구엘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그의 작품은 시도조차 하지 못해 세상에 얼굴조차 내밀지 못하는 처지였잖아요.

그러니 천재 가우디 작품의 반은 구엘의 미래 예지 능력의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가우디의 창의적인 상상을 이해한 구엘이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역설이 성립하겠네요.

 

중국에서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는 종자기와 백아의 이야기와 같은 것 말입니다.

백아는 가우디요, 종자기는 구엘이라고...

사실 지금도 그가 만든 건축물을 바라보면 무슨 장난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시절에는 오죽했겠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직선보다 곡선을 많이 이용했고 자연의 모습을 많이 도입했다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기독교 세상과 이슬람 세상의 문화가 함께 어울린 느낌을 받기도 하더군요.

그가 했다는 말에 "자연은 신이 창조하신 건축이므로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 건축 그리고 신이 그의 작품세계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아닐까요?

 

나무, 물결, 그의 작품에는 늘 출렁이는 파도가 연상되고 숲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그가 추구한 세계가 아닐까요?

숲 속에 들어왔다는 인식을 할 때 비로소 가우디의 꿈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요?

가우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분명 듣고 싶지 않으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