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 승전 개선문

佳人 2016. 8. 25. 09:00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콜로세오를 나오면 바로 앞에 보입니다.

그러니 콜로세오와 로마의 원천인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는 팔라티노 언덕이고 로마의 영광은 콜로세오에서 시작했으니

그 사이에 있는 개선문은 무슨 의미일까요?

 

 

높이 21m 폭이 25.7m의 코린토스 양식의 기념탑이라고 합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북서쪽에 있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그의 라이벌 막센티우스 황제와 만나 

대승을 거두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로원이 세운 것이라 하네요.

말이 원로원이지 사실은 셀프 개선문은 아닐는지요.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는 로마의 통일과 기독교의 공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건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시대 상황은 20년 임기의 황제와 부황제 두 명씩 사두 체제라는

테트라르키아가 시행될 때라 후계자 계승문제가 늘 생기기 마련이지요.

 

 

원래 권력이란 나누는 게 아니잖아요.

이에 막센티우스와 콘스탄티누스 두 황제는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겨루게 되었고

 1차로 삭사 루브라 평원에서 큰 전투를 했으나 1차 쓴맛을 본

막센티우스가 패퇴하게 되었답니다.

위의 사진은 구글 위성지도로 아피아 가도 옆에 있는 막센티우스 경기장입니다.

대단한 권력을 지녔던 막센티우스였나 보네요.

 

 

막센티우스는 퇴각하다가 밀비우스 다리 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마지막으로 역공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때의 상황을 실감 나게 그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에 있지요.

환장하게도 콘스탄티누스의 머리 위로 천사가 나타나 공중전도 지휘합니다.

 

 

엄연한 반칙이지만, 역사는 이긴 자만 기억하고 정의가 되잖아요.

이때 천사를 앞세운 콘스탄티누스는 비겁하게 공중전까지 시도하며 전투에

임했고 결국, 막센티우스는 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두 사람 간

 사생 결단의 전투는 일단락 되게 되었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왕관을 쓰고 말을 탄 채 물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막센티우스입니다.

 

 

이 사건에 원로원이 아부를 위해 북부 촌놈인 콘스탄티누스의 공덕비를 세운 것이지요.

위의 그림을 보니 전혀 촌놈이 아니네요.

황금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탄 모습이 로마라는 당시 최고의 도시를 장악했던

막센티우스보다 더 세련된 모습입니다.

 

 

원로원이 자발적으로 세웠다고 하지만...

원래 권력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눈치로 다 알지 싶어요.

그리고 문 위에 이렇게 적어두었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신의 영감과 숭고한 정신으로 나라를 위해 정의의 무기로 폭군과 그 일당들에게

복수하였으므로 이에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은 승리의 증표로 이 개선문을 헌정 하노라!"

아이고~ 낯 간지러워라~

정말 지문이 사라지도록 두 손을 비빈 말이네요.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세 개의 아치가 아름답습니다.

이곳에 새긴 조각은 그의 업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전쟁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있지요.

이 개선문은 나중에 나폴레옹이 곁눈질해 파리에 세운 개선문의 조상이 되었다네요.

 

 

그 후 이민족의 침략과 방치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개선문은 1804년

드디어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때 보수를 하며 개선문을 돌아가며 빼곡히 채운 부조를 원형대로

다시 만들지 않고 로마에 있는 여러 유적에 있는 부조를 떼어와

이곳에 적당한 크기로 다시 붙이는 작업이었다 합니다.

 

 

그러니 이곳 부조는 짜깁기한 결과, 사실 개선문과는 큰 연관이 없는 게 많다고 합니다.

오히려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세 개의 아치 중 좌우 두 개의 작은 아치 위에 둥글게 원형의 부조가 있습니다.

그리스 병사의 모습이라 합니다.

 

 

그야말로 콘스탄티누스가 알면 기절할 일이 아니겠어요?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 승리했는데 웬 듣보잡이가 이곳에 새겨져 있느냐고요.

그뿐이 아니라네요.

 

 

가난한 자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도 있다네요.

좌우지간 여러 시대를 아우른 그런 개선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은 세 개의 개선문 중 가장 늦은 시기에 만든 것이지만,

가장 크고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승리의 염원을 담은

간절한 기도를 했고 승리한다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그의 기도에 응답해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천사의 도움까지?

그러니 보답을 위해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인정했기에

종교적으로도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보고 탐이나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고 파리 개선문을 보고

인도에서는 델리에 인디아 게이트를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독립문을 만들었으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많은 영감을 준 유적으로도 평가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 먼 곳에 있는 이 작은 개선문 하나가 우리나라와도 연관을 지을 수 있으니

이 또한 문명의 확산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단한 로마 제국이 아닌가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