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콜로세오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입니다.

佳人 2016. 8. 23. 09:00

개인적으로 로마에 오면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콜로세오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도착한 날 숙소에 들러 배낭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여기 콜로세오부터 달려와 야경을 보았습니다.

그 후 콜로세오는 수시로 지나다니며 보았기에 아마도 다섯 번 이상을 보았나 봅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 누구나 상상하는 일...

바로 검투사라는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아니겠어요?

영화가 주는 강한 느낌이 바로 이곳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콜로세오는 13세기 중세에는 프란지파네 가문에서 군사요새로 개조해 사용했고 15~16세기에 이르자

귀족이나 교황은 이미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곳의 석재를 떼어내 성당과 궁전 건축에 열을 올리며

돌산도 아닌 세계적인 유적이 로마의 채석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좌석은 당시 모습을 일부 복원한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니 저렇게 대리석으로 스탠드를 만들었다는 말이잖아요.

이 모든 곳을 저런 대리석으로 마감을 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위의 사진처럼 이곳 모든 곳은 대리석으로 장식했을 겁니다.

밖에서 경기장 좌석이 있는 안으로 드나드는 통로에 옛날에 만든 대리석 바닥이 여기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벽돌과 시멘트로 어지럽고 폐허로 보이지만,

그때는 이렇게 대리석으로 모든 벽과 바닥을 장식했지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석재로 만든 콜로세오이기에 채석장이라는 이름이 생겼을까요?

그런데 말이죠.

이 거대한 콜로세오를 짓는 데 단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불가사의하지 않나요?

 

지금의 콜로세오 있는 자리는 네로가 짓던 황금 궁전의 늪지대였다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대한 네로 황제의 동상이 세워졌다 합니다.

그곳을 지반을 다져 지금의 콜로세오를 짓기 시작했다네요.

발굴 당시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보입니다.

 

네로는 늪지대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도무스 아우레아(황금 궁전) 정원의 늪지대를 채워 인공 호수로 만들고

그곳에서 모의 해전인 나누마키아가 펼쳐지기도 했다네요.

 

이런 이유로 콜로세오가 완공된 후에도 콜로세오 안에 물을 채우고 모의 해전을 하기도 했다네요.

그러나 이런 일은 번거롭기에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나 보네요.

 

콜로세오 안에 물을 끌어들였다는 말이 사실이냐고요?

여기 물을 흘려보내던 수로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아직 남아있으니 사실이라는 게 정설이라고 합니다.

반나절 정도면 물을 채우고 또 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황제는 아들 티투스에게 군사를 주어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여 무자비한 살상과 그곳에 있던

값나가는 많은 물건을 약탈하고 그곳에 살던 유대인을 노예로 잡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잡아온 노예의 숫자가 10만여 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가 아닌가요?

 

당시 로마는 향락에 빠져 노예를 거느리고 호화롭게 살았기에 잡아온 포로 중 6만여 명은 노예로 팔아

재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포로는 콜로세오를 짓는 인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콜로세오는 이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거대한 유적인 셈입니다.

위의 그림은 실제 당시의 모습을 그린 것인가 봅니다.

이게 벽에 그렸던 그림이라 하니...

몇 사람의 생각으로 또 다른 많은 사람은 생명을 담보로 싸웠던 것입니다.

바닥에 이미 기력을 잃고 쓰러진 검투사도 보입니다.

여기가 바로 생생한 삶의 현장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콜로세오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었습니다.

오래된 로마 제국의 건축물의 하나라지만, 그 안에 들어가 구경하니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역사적 위대한 건축물일수록 더 많은 사람의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피와 땀으로 지금 우리는 이런 거대한 유적을 구경하며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