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아! 검투사 글래디에이터여~

佳人 2016. 8. 22. 09:00

당시 콜로세오 객석의 부산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곳에 운집한 로마인의 다양한 행동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들의 경기장 안에서 생명을 걸고 살기 위해 싸웠던 검투사들을 웃으며 즐겼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저기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아주 식당을 차리는 게 낫지 싶어요.

직화구이 맛을 알아버렸나 보네요.

 

이렇게 고기가 있으면 꼭 실과 바늘같이 따라다니는 게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음주와 가무입니다.

 

그런데 술만 먹으면 반드시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사내들의 객기인 주먹 다툼이지요.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라 로마도 그랬습니다.

혹시 이렇게 주먹 다툼이나 하는 사람을 잡아다 저 아래 글래디에이터에게 던져주면 어떨까요?

 

가끔은 우리가 예전에 즐겼던 고누놀이나 윷놀이 같은 것도 있습니다.

주사위면 어떻고 공기놀이면 또 어떻습니까?

벽에 낙서하는 어른도 보입니다.

 

세상 사는 방법은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같은 가 봅니다.

그때 저들이 그렸던 낙서가 위의 사진에 보듯이 남아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그린 생생한 그림입니다.

 

검투사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우가 나쁘지는 않았다 합니다.

당시 검투사들은 경기당 등급에 따라 1.000에서 5.000 sesterces(로마의 화폐단위)씩 받았다 합니다.

경기에 승리하면 승리한 자만 나갈 수 있는 문이 따로 있어 자랑스럽게 그 문을 통해 나가도록 배려했다네요.

잘 나가는 이들은 당시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인이었다고 합니다.

 

운동장에 등장할 때부터 범상치 않게 등장했다고 하지요.

바로 사람이 돌리는 수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운동장 가운데로 등장시켜 극적인 효과를 누리게 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시설이 바로 손으로 돌려 줄을 감아올리는 방법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이들은 이때부터 뭣이 중헌지 어떻게 등장하면 더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검투사는 지하에 마련된 방에서 대기하다가 차례가 오면 이렇게 멋지게 경기장 한가운데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과 싸울 맹수도 마찬가지로 지하에 마련된 방에 대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경기장 아래는 무척 많은 방이 보입니다.

 

승자에 대한 예우 또한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러면 죽은 자는?

제사 지내줄 사람도 변변히 없을 텐데 거적에 둘둘 말아 그냥 버렸을까요?

 

그 시절 군단의 병사가 받았던 돈이 연간 375 sesterces였다고 하니 검투사가 한 경기당 받는 돈과 비교하면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놀이기에 엄청난 돈을 받았지 싶습니다.

인생역전의 방편이 되었을 듯합니다.

 

그러나 죽고 나면 그 돈은 누가 챙겼을까요?

그들은 대부분 노예 출신인걸요.

물론, 짧은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자청해 검투사가 된 사람도 있을 겁니다.

 

검투사 생활을 하며 살아남은 승리자는 5년이 지나면 노예일지라도 자유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동시에 나무로 만든 검인 RUDIS라고 이름 붙여진 기념품을 새로운 신분의 상징으로 받았다 합니다.

이렇게 5년을 마친 은퇴한 검투사는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 또한 남다르게 존경받았다 합니다.

 

터키에 가면 목화의 성이라고 하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파묵칼레라는 곳이 있습니다.

파묵칼레 뒤로 가면 히에라폴리스라고 성스러운 로마 고대도시가 있습니다.

온천이 유명한 이곳은 휴양을 위해 로마 시대에 권력자나 돈 많은 자가 많이 모여든 곳이지요.

 

클레오파트라도 휴양을 위해 찾았던 곳이라고 하니까 최고의 휴양지였나 봅니다.

휴양지 뒤로 올라가면 1.500기가 넘는 많은 무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유가 이곳 온천에 치료받다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 합니다.

이런 곳에서 치료받았다고 하면 권력을 가진 자나 돈이 많은 사람 등 사회적인 지위가 무척 높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글래디에이터의 무덤도 있습니다.

석관 가운데는 평소 그가 즐겨 사용했던 무기가 보이고 왼쪽의 항아리는 검투 경기에 승리한 자에게 하사한

항아리 모양의 상패이며 오른쪽은 검투사의 방패입니다.

 

이 묘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한 검투사가 하층계급이 아니라 은퇴 후에도 이런 부유층이나 권력자만이 머물며

휴양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렸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바로 계급상승의 목적으로도 검투사가 되려고 했지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노예가 검투사가 되기 위해 훈련받고 계속 싸우기를 희망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비참한 노예생활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면천을 바라는 자는 5년만 버티면 되고 돈이 필요한 자도 그랬나 보네요.

 

그래도 그렇지요.

목숨을 건 도박이 아닌가요?

따라서 승리한 검투사들의 통로는 위로 올라가 노예나 가난한 자들이 구경하는 좌석 바로 앞을 지나게 했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혹시 많은 노예가 그들 앞으로 지나가는 승리자의 당당한 모습을 보게 함으로

꿈을 키우도록 했지 싶습니다.

 

맹수나 검투사는 지하 12m의 공간에 있다가 사람의 힘에 움직이는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기장으로 올라왔답니다.

지금은 덮개가 사라져 아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맹수를 철창 속에 가둔 모습도 보이네요.

 

그곳에 맹수나 검투사만 둔 게 아니라 이들이 싸울 때 필요한 무기류도 보관했을 겁니다.

발굴된 검투사의 모자와 무기도 보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404년과 523년 두 차례에 걸쳐 로마에서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이 금지되기 시작했답니다.

그 후 콜로세오는 608년까지는 일반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지요.

서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멸망하며 로마의 자존심인 콜로세오도 그 운명을 다 하게 되었지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단한 유적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비록 건물은 폐허처럼 낡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얻어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명품 유적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