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오(Colosseo)는 기적의 건축물이지요.
콜로세오(Colosseo) 2층에 올라 내려다본 콜로세오의 경기장 모습입니다.
지금은 흉물스럽게 보이지만, 지금 아래 보이는 저곳을 모두 덮어 끝에 조금만
보이는 것처럼 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대규모 시설을 로마는
그때 이미 만들었다는데 놀라울 뿐입니다.
콜로세오는 모두 4층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층마다 80개의 아치를 둘렀습니다.
1층 아치의 위를 보면 번호가 새겨져 있는데 그때는 자신의 좌석을 찾아가는 방법이
좌석 번호에 적혀있어 쉽게 그 번호가 새겨진 문으로 찾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직 하나의 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가게 했으니
당연히 혼잡해질 수밖에 없겠네요.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건축 기술이었지 싶습니다.
그 하나가 아치 공법입니다.
그 공법으로 무게는 줄이고 강도는 더 강하게 함으로 더 높이 건물을 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다음으로는 벽돌일 겁니다.
벽돌과 짝을 이룬 시멘트는 일대 혁신을 이루었지요.
당시 로마의 건축은 바로 현재 우리가 말하는 시멘트의 발견이지 싶습니다.
그들은 시멘텀이라 부르는 석회석에 돌과 모래를 섞고 화산재와 섞어
견고하고 오래 지속하는 튼튼한 건물을 지었다고 하며 사실 철근만 들어가지 않았지
그야말로 단단한 콘크리트가 2천 년이나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시멘텀이라고 부르는
시멘트로 당시 이들의 건축자재는 세상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는 최첨단의 자재였지요.
덕분에 아직도 원형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건축 건설 장비의 발달이겠지요.
우리도 조선 시대에 다산선생이 개발했던 거중기가 이들은 이미
이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콜로세오 지하에 가두어 두었던 맹수와 검투사 대기실에 있던 글래디에이터가
경기장으로 들어설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오게 했답니다.
이렇게 무대에 등장한다면 마치 슈퍼스타가 무대에 등장하듯 정말 극적인 등장 아닌가요?
지금의 엘리베이터와 같은 방법으로 올라왔는데 동력이 바로 인간 노예들의 힘으로
끌어올렸다는데 위의 사진이 바로 당시의 수동 엘리베이터의 작동 원리를
알려주는 모형입니다.
로마인은 이때 이미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네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뭣이 중헌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나 지금의 이탈리아 엘리베이터는 우리나라의 엘리베이터에 비해
구석기시대에 사용했던 오래된 고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건축물이 세워지게 된 이유로는 예루살렘에서 전쟁을 통해 데려온
노예의 힘으로 당시 티투스는 10만이 넘는 사람을 노예로 데려왔으며 4만 명을 이곳 콜로세오
건축에 동원했고 나머지는 로마 시민이나 권력가에게 노예로 팔아
그 돈으로 건축비를 충당했다고 하니...
콜로세오는 노예의 노동과 노예를 판 돈으로 지어졌다는 아픈 이야기입니다.
AD 72년부터 8년 동안 대역사를 거쳐 만든 원형극장으로 우리가 역사적인 유적을
꼽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바로 이 건축물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위대한 건축물이 완공되었다는 의미는
정말 많은 노예의 희생이었지 싶습니다.
콜로세오는 노예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유산입니다.
지금은 고대 로마인의 탁월한 건축술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죠.
라틴어 거대하다는 Colossus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며 원래 이름은
플라비오 원형극장이라 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영어식 표기인 콜로세움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지도에 표기된 이름이 이 두 가지 이름을 함께 적어
Anfiteatro Flavio - Colosseo라고 한다네요.
이는 티투스 플라비우스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지요.
이 거대한 역사가 시작된 이유는 민심을 잡기 위한 프로젝트라 합니다.
이전 황제였던 네로는 시내 한가운데 자신의 황금 궁전을 짓고 싶었으나 마땅한 땅이
없자 불을 지르는 묘수를 생각해 내고 그 누명을 유대인과 기독교도에게 씌워버립니다.
그래서 네로가 욕을 먹고 욕을 먹어도 싸다고 하지요.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네로궁불이라고 해야겠네요.
네로가 궁전을 짓기 위해 불을 질렀으니까요.
이어 높은 세금을 걷어 궁전을 짓자 민심은 네로에게 떠나게 되고 네로가 죽은 후에도
좀체 황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로마 시민의 민심을 되돌리고 황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후임 황제였던 베스파시아누스 시작한 일이랍니다.
위의 사진은 당시의 상상도입니다.
콜로세오 위로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포로 로마노로 로마의 핵심지구가 되겠네요.
콜로세오의 건설목적은 표면적으로는 로마 시민의 단결을 외부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치가들이 자기의 야심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합니다.
대규모 공사라는 게 가끔은 바로 그런 면이 강하지 않나요?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국민을 위함이라고 하면서
자기 잇속이나 채우는 그런 집단이지요.
그 이유로는 콜로세오 안에서 벌어진 이런 잔인한 경기인 검투사와 검투사
그리고 검투사와 맹수의 처절한 싸움에 흘린 피 맛에 빠진 로마 시민은 정치적인
사안에 무감각해지기에 정치가로서는 그들 마음대로 끼리끼리 모여
정사를 논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콜로세오는 검투사와 맹수의 피 위에 쓴 역사입니다.
오늘은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우리도 삼겹살 구워 먹으며 그들과 함께 즐겨볼까요?
그때 로마 시민은 이곳 콜로세오 안에 들어와 위의 사진처럼 숯불을 피워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지 싶습니다.
로마인은 삼겹살이라는 것을 모르겠네요.
그러나 직화구이 맛은 알았지 싶습니다.
통행로를 따라 돌다 보니 어느 지점에 십자가 하나가 보입니다.
콜로세움이 건설될 때 기독교와는 무관한 일이 아닐까요?
이곳에서 기독교 박해를 위해 처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더군다나 공포의 대상이었던 네로 황제는 이 콜로세오를 생전 본 적도 한 번도 없었을 테니까요.
사실 네로는 이런 잔인한 모습을 즐기기보다는 시와 음악을 즐긴 로맨티시스트 아닌가요?
그런데 왜 십자가를 여기에 두었을까요?
1874년 콜로세오를 발굴하기 이전부터 위의 사진에서 보듯 십자가가 있었답니다.
그때는 경기장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이곳에서 대중의 즐거움을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수많은 검투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은 아닌가 생각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당시의 기술이나 건설자재로 보았을 때 이런 대규모의 건축물을 8년 만에 짓는다는 일은
불가사의한 일로 이게 가능했던 것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잡아온 노예 4만 명을
동원해지었기 때문이죠.
콜로세오는 기적의 건축물이지요.
그러나 콜로세오는 그들의 피 위에 세운 건축물이기에 이렇게 단시간에
거대한 콜로세오를 지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더 불가사의한 것은 佳人이 예전에 책을 통해서만 보았던 그런 이야기를
지금 이곳에 직접 서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