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아라치(Arazzi)의 갤러리 태피스트리

佳人 2016. 7. 27. 09:00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직물로 짠 양탄자처럼 생긴 벽걸이입니다.

그 크기를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걸개입니다.

오늘 구경할 것은 태피스트리부터 시작합니다.

위의 작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태피스트리입니다.

 

 

촛대의 갤러리를 지나 아라치의 갤러리로 갑니다.
아라치(Arazzi)라는 이탈리아어가 영어로는 태피스트리라 합니다.

그러니 태피스트리가 있는 방 이름이 아라치의 갤러리라고 하나 보네요.

 

 

방이라기보다는 길게 이어졌기에 복도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복도 양쪽으로 위의 사진처럼 성화로 장식한 태피스트리가 걸려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그리스도에 경배'라는 작품이네요.

 

 

천장에는 그림이 그려졌는데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조각을 만든 듯 그렸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트롱프뢰유라고 하는 일종의 눈속임 그림이지요.

 

 

정말 평면이 아닌 입체의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정말 먼 이야기처럼 생각됩니다.

예술가란 정말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되네요.

 

 

태피스트리란 어려운 말도 벽에 걸린 양탄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옛날에는 덮개로 사용하거나 바닥에 까는 양탄자였으나 그냥 밋밋한 것보다는

아름답게 문양을 넣으며 태피스트리라는 하나의 예술 분야로 발전했지 싶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릇도 처음에는 생활을 위한 용기였으나 밋밋한 표면에

문양을 넣고 그림으로 장식해 모양을 다듬으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예술작품으로 변신하듯 말입니다.

위의 작품은 '무고한 어린이의 학살'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태피스트리를 색실로 짠 모자이크에 비유하기도 하나 봅니다.

사실, 색깔이 다양한 돌을 이용 하나씩 심어 만든 모자이크 예술이나 다양한 색실을

이용해서 한 땀 한 땀 짜서 만든 장인의 솜씨는 예술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둘둘 말아서 필요한 장소에 걸기만 하면 되기에 이동이 쉬운 벽 장식물이라고도 한다네요.

보관도 쉽고 이동 전시도 쉬우니 정말 다용도로 사용 가능한 게 태피스트리네요.

위의 작품은 '카이사르의 살인'이라는 작품입니다.

 

 

태피스트리는 원래 아랍 상인에게 산 카펫을 이탈리아 사람은 너무 아름다워

바닥에 깔지 않고 벽걸이로 장식했다네요.

이런 엉뚱한 일로 새로운 예술 분야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태피스트리라는

분야가 되었고 더군다나 성서에 나온 이야기를 수놓으며 이곳 바티칸 박물관의

어엿한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가운데 차린 음식은 새끼 돼지입니다.

그것도 한 마리 통째로 올렸습니다.

양쪽으로는 생선이고요.

 

 

이 작품은 유다의 입맞춤이네요.

한때의 잘못된 생각으로 한 행동이 배신의 아이콘으로 세월이 2천 년이나 흘렀어도

잊히지 않고 사골 끓이듯 이렇게 오래도록 우려먹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유 서방이 저지른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이 아니라 지구 멸망 전까지 끌고 가려나 봅니다.

 

 

이번에는 지도의 갤러리입니다.

양쪽 벽에 전시된 지도보다 천장의 화려함이 더 눈길을 끄네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왜 佳人은 왜 달을 바라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나 모르겠습니다.

천장에 그린 그림을 몇 장 더 보고 갑니다.

 

 

교황 중 천문학에 열광했던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만든 갤러리입니다.

 

 

6m 폭에 길이 120m의 복도에 이탈리아 각지의 지도로 지역별로 채웠습니다.

 

 

위의 지도는 캄파니아주의 모습인가 봅니다.
지금의 앙코나와는 많이 바뀌었을까요?

아드리아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죠?

 

 

여기에는 옛 이탈리아의 지도와 교회 재산을 그려놓았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취미가 천문학이라 교황의 취미에 따라

수집하는 게 달랐나 봅니다.

그랬기에 우리가 이런 지도를 구경할 수 있네요.

 

 

위의 그림은 소비에스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입니다.

당시 이슬람의 침공에 풍전등화 같은 유럽을 구한 내용을 그린 그림입니다.

폴란드 출신 화가 얀 마테이코가 그린 그림으로 1683년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맞닥뜨린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투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네요.

 

 

워낙 대작이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파죽지세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15만 대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하며 전쟁에 패하면 십자군 전쟁 이후 두 세력의 대결에서

이제 가톨릭은 머지않아 무슬림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튀르크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이끄는 용맹한 이슬람군은

비엔나까지 들이닥칩니다.

 

 

두 세력이 대치하던 중 저녁을 틈타 선제공격을 가해 중앙을 뚫어버리니

전투 시작 한 시간 만에 튀르크 진영은 우왕좌왕, 싱겁게 적은 궤멸하여

 버림으로 이제 가톨릭은 더는 모슬렘의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되었다네요.

그는 군인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국민의 인기를

얻어 결국 선거를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으로 선출된 능력도 있고

인기도 많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랍니다.

 

 

한때 젊은 시절 오스만 제국에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그였기에 적을 너무도 잘 알았을까요?

그때 오스만 제국의 언어를 배우고 오스만 군의 군사 전술을 공부했다 합니다.

얼마나 뛰어난 왕이었으면 적이었던 오스만 튀르크에서도

그를 레흐스탄의 사자라고 불렀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예술에 대한 상식이 없는 佳人이기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 적힌 내용을 대강 눈치로 읽어보고 쓴 이야기이기에 순서가 맞지 않을 수 있고

다른 내용을 잘못 옮겨적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런 곳은 직접 그 앞에 서서 여러분의 눈으로 보셔야만 그 가치를 알 수 있고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